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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마음의 모양

내가 오래 바라보았던 건

by 백소현 에디터
2026.07.24 19:00

 

 

내가 가진 고약한 버릇 하나를 고백한다. 나는 사람을 마주할 때마다 그 사람의 단점을 먼저 발견하려 한다. 돋보기를 들고 유심히, 뚫어져라 관찰하면서 기어코 그 사람의 흠을 찾아내고야 만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한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그 사람에게서 ‘내가 되고 싶지 않은 모습’을 미리 찾아내는 것이다.


처음 들어간 회사에서도 주변 사람들의 단점부터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늘 그래왔듯이, 나는 저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마음이 비집고 들어왔다.


‘다들 저러고 사는데, 나만 그러지 않으면 손해 보는 거 아니야?’ 손해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내가 세웠던 원칙을 조금씩 깎아내렸다. 그렇게 내가 오래 쥐고 살아온 기준에 금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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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1년 뒤 나는 어떤 모습일까? 5년 뒤, 아니 10년 뒤는? 파티션 너머로 사람들을 하나둘 바라보다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까만 배경 화면 위에 아무렇게 흩어진 파일과 폴더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쁘다는 핑계로 정리를 미루다, 정작 필요할 때는 어디 있는지 몰라 한참을 헤매던 모습. 이상하게도 꼭 내 모습 같아 보였다.


처음 이곳에서 느꼈던 낯설고 불편했던 태도들이 어느 순간부터 익숙해졌다. 누군가의 실수를 대하는 방식이라든가, 듣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공격적인 화법, 쉽게 짜증과 불만을 늘어놓던 태도들. 분명 내가 싫어하는 그들의 모습이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모습이 내게도 조금씩 스며드는 것만 같았다.


 

여기에 계속 있다 보면, 저런 사람과 마주하며 살다 보면 나도 어느새 저런 모양이 되어 있겠지.

 

(…) 나는 무시할 수가 없어. 편한 대로 생각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가 않아. 그 사람은 살아서 움직이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자기 모양을 바꿀 때마다 내 마음의 모양도 바뀌어. (…) 그게 너무 힘들어. 다른 사람이 내 모양을 바꾸는 걸 더 보고 있을 힘이 이제 나에게는 없어.

 

 <나주에 대하여> '근육의 모양', p.132


 

원래 나는 어떤 사람이었더라. 내가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 남에게도 먼저 친절해지려고 애쓰던 사람. 설령 척일지라도 앞에서만큼은 다정해지려 했고, 척으로 시작해도 그렇게 계속 살다 보면 그 모습이 진짜 내가 된다고 믿던 사람. 그런데 내가 알던, 내가 되고 싶었던, 내 모습이 점점 옅어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무르고 물컹한 사람이었다. 누군가 나를 세게 누르면 누른 대로 푹 들어가 버리고, 거친 말 한마디에도 쉽게 멍이 드는 사람. 오래 머문 환경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는 사람이기도 했다.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에서 내가 닮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부딪히다 보니, 어느새 나 역시도 그들의 모양을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내 마음에 쌓아둔 이름 모를 무언가가 자꾸 소진되는 것 같았다. 이러다 조만간 내가 지닌 보따리 속이 텅 비어버리면 어쩌지.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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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나는 나의 이 오래된 버릇을 들여다봤다. 보다 근본적으로 내가 남들의 결점을 기어코 찾아내려 했던 이유가 궁금해졌다.


내가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않는 사람. 그게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기준 중 하나였다. 얼마나 단순하고 명쾌한가.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나와 비슷한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사람들의 단점을 재빨리 찾아, 타산지석 삼자는 것이 나의 이유였다.


그런데 뒤늦게 깨닫고야 만 것이다. 나는 그들의 단점을 피하고 있었던 게 아니라, 단점을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계속 생각하다 보니, 정작 내 시선은 늘 부정적인 모습에 머물러 있었다는 걸.


이제 사람들과 만나면 그의 단점보다는 닮고 싶은 모습을 먼저 찾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타인의 모습. 사소하지만 확실한 배려와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다정함,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태도 같은 것들. 내 시선이 오래 머무는 곳이 곧 내 마음의 모양을 빚고, 그 모양이 결국 내가 될 테니까.


자신이 오래 바라보는 것들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면, 이제 나는 내가 닮고 싶은 사람들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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