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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허상의 공포가 모여 실체를 가진다면 - 지느러미 [영화]

검은 빗방울이 입 안으로 떨어졌다. 뚝. 뚝. 뚝.

by 장수정 에디터
2026.07.1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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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느러미’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SYNOPSIS


"난 푸른 바다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검은 빗방울이 입 안으로 떨어졌다. 뚝. 뚝. 뚝."


오염된 바다를 막고 있는 4,000km 장벽에 둘러싸인 근미래 통일 대한민국. 유전적 돌연변이로 인해 지느러미가 생겨난 '오메가'. 오메가를 감시하고 노동을 착취하는 '인간'. 어느 날 오메가 한 명이 구역을 이탈하고, 공무원 '수진'이 뒤를 쫓게 되는데…

  

    

영화가 끝난 후 코로나19가 한창 대한민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단상이 떠올랐다. 모든 기억이 선명한 건 아니지만, 우리 동네에 처음으로 코로나 확진자가 떴다는 알람이 올라왔을 때의 그 분위기만은 또렷하다. 세상에, 코로나에 걸렸다고? 대체 어딜 갔길래?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그가 누구인지, 동선이 어떻게 되는지, 무엇을 했는지, 이름이 뭔지를 캐내려 했다.

 

그때의 혼란스러운 정서가 이 영화 안에 근미래 디스토피아의 풍경으로 담겨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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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느러미'는 유전적 돌연변이 ‘오메가’와 인간이 공존하는 근미래 통일 대한민국을 그린 디스토피아 SF 독립영화다. 박세영 감독은 코로나로 인한 정서의 흐름을 시각화하고자 이 영화를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오메가들은 유전적 돌연변이로 인해 길쭉한 세 발가락을 갖게 되었고, 지느러미가 돋았다. 이들 중 일부는 자신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발가락을 절단하거나 가짜 발 모형을 쓰고 숨어 산다. 오메가를 잡으러 다니는 이들은 노란 작업복을 입은 청년 공무원들이다. 물 사용이 제한적인 사회이기에 이들은 자원을 아끼려 더러운 얼굴을 항시 유지한 채 오메가를 쫓는다. 잡힌 오메가들은 강제로 오염된 바다를 청소하며 노동력을 착취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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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는 그렇게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오메가 중 하나다. 고우는 몰래 현장에서 탈출해 '미아'라는 여성을 찾아 한 장의 사진 속 장소를 찾아간다. 미아의 아버지는 노역 현장에서 사망한 오메가였고, 자신의 잘린 지느러미를 딸이 묻어주길 바랐다. 고우는 미아를 찾아가 지느러미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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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 또한 아버지와 같이 오메가다. 하지만 정작 미아는 오메가라는 존재 자체에 혐오를 가진 인물이다. 자신과 같은 존재를 스스로 밀어내며 살아온 셈이다. 그런 미아에게 갑작스레 지느러미를 건네러 온 고우는 더럽고 불편한 존재였고, 결국 미아의 신고로 고우는 다시 노역장에 잡혀간다.


그렇게 고우가 퇴장한 뒤 이야기를 이어받는 건 신입 청년 공무원 '수진'이다. 수진의 어머니는 방 안에 틀어박혀 오메가를 증오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수진은 그런 어머니를 돌본다. 수진이 업무를 통해 배운 오메가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다. 유전적 돌연변이로 세 발가락과 지느러미가 생겼고, 그 지느러미에는 독성이 있어 매우 위험하다는 것. 수진은 미아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뒤를 밟고, 미아가 일하는 낚시터를 찾아가고, 몰래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 그러다 미아가 페달을 밟는 모습을 보고 그가 오메가임을 눈치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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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불친절하다. 설명 대신 장면의 묘사에 집중한다.


어쩌다 오메가가 처음으로 생겨났는지에 대해, 어쩌다 수진의 어머니가 오메가를 그리도 증오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어쩌다 아버지는 잡혀가고 미아 홀로 낚시터에서 일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어쩌다 대한민국이 모두가 얼굴에 얼룩을 묻히고 다닐 만큼 강압적인 분위기의 나라가 되었는지에 대해 긴 대사로 설명하는 대신 세피아 톤과 어두운 노출로 화면 전체를 탁하고 진득하게 가라앉혀 '이 영화의 세계관은 이런 공간입니다' 하고 보여준다.

 

물 사용이 제한된 세계답게 인물들의 얼굴에는 항상 까만 얼룩이 묻어 있고, 오염된 바다를 청소하는 오메가들의 몸짓은 반복적이고 지쳐 있다. 사건을 따라가기보다 화면의 질감-찝찝함, 불쾌감, 비린내가 나는-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볼 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정서는 더 분명하게 다가온다. 낡고 불안한 공간감이 곧 이 사회가 오메가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갖는 태도를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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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오메가들이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위험을 지녔는지를 반복해서 보여주며 신입 공무원들과 관객 모두에게 오메가의 위험성을 주입한다.


그러나 정작 오메가가 소리를 지르면 사람이 죽는다는 말이 사실인지는 영화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그건 그저 청년 공무원과 관객에게 주입되어 온 정보일 뿐이다. 영화의 초반, 탈출하던 고우가 공무원에게 잡힐 위기에 놓이자 생존본능으로 소리를 지르려 하고, 공무원은 공포에 질려 도망간다. 고우조차 순간 어리둥절해한다. 이 장면으로 위험은 증명된 적 없으며 오직 두려움으로만 유통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아가 같은 오메가를 밀어내고 고우가 건넨 지느러미를 신고로 갚은 것도 같은 두려움의 결과다. 자신이 속한 존재 자체를 증오하도록 학습된 사람은 그 존재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가장 먼저 밀어내는 쪽을 택한다. 코로나 시기에도 확진자를 욕하던 사람 중 일부는 정작 자신이 감염되고 나서는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숨기려 했다. 혐오는 언제나 바깥의 대상을 향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 혐오를 학습한 사람의 내부에서 먼저 작동한다.


수진이 미아를 신고하는 것도 같은 구조다. 미아는 실제로 위험한 행동을 한 적이 없다. 그저 낚시터에서 일을 하고 학원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지냈을 뿐이다. 하지만 페달을 밟는 것으로 오메가임이 들통나고, 무장한 공무원들이 미아를 찾아온다. 그렇게 실체를 본 적 없는 공포는 폭력으로 실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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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다 보고 나서 다시 떠오른 건 확진자가 누구인지, 어딜 갔는지, 이름이 뭔지 캐묻던 목소리들이었다. '지느러미'는 허상의 공포가 켜켜이 쌓이면 결국 총격이 되고, 신고가 되고, 한 사람을 노역장으로 되돌려보내는 손짓이 된다는 걸 보여준다. 지느러미도, 독성도, 소리를 지르면 사람이 죽는다는 말도 이 영화 안에서 제대로 증명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이미 실체를 가진 것처럼 작동한다. 허상의 공포가 모이면, 정말로 실체를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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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느러미'는 첫 장편 '다섯 번째 흉추'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3관왕,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거머쥔 박세영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다. 증명되지 않은 것들이 실체를 갖게 되는 순간을 집요하게 좇아온 그의 다음 걸음이 벌써 궁금해진다. '지느러미'는 다가오는 7월 22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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