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무심코 한 사소한 선택이 현재와 미래를 바꾸고, 운명을 흔들고,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갈라놓는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떠밀리는 경우가 더 많지만, 결국 최종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인생은 그래서 더 잔인하고, 선택은 지독하게도 아이러니하다.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도 선택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한 인간이었다. 라이오스 왕과 이오카스테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저주받은 아이였다. 그리하여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오이디푸스는 친부모가 누군지, 어떤 운명을 타고났는지 전혀 모른 채 양부모 아래서 성장한다. 훗날 진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저주받은 미래에서 벗어나기 위해 양부모를 떠난다.
신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리 노력했어도 오이디푸스는 운명의 덫에 걸리고 만다. 갈림길에서 친아버지 라이오스와 만난 오이디푸스는, 결국 신탁대로 아버지를 살해하기 때문이다.
수컴퍼니가 제작한 연극 <오이디푸스>가 7월 4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성공적으로 개막했다. 연극 <오이디푸스>는 그리스 비극의 원형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동시대적 시선을 담아내 현대적으로 재창작됐다. 섬세한 극작과 밀도 높은 텍스트 해석을 선보이는 한아름 연출과 날카로운 시선과 독창적인 무대 미학으로 작품 완성도를 인정 받아온 서재형 연출이 힘을 합친 작품은 ‘인간’ 오이디푸스가 어떤 사람인지 치열하게 그려냈다.
작품은 생동감 있는 코러스의 활용으로 관객에게 풍성한 볼거리와 들을 거리를 제공했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핵심 장치인 코러스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한 연극 <오이디푸스>는, 해설자를 넘어 사건의 흐름과 감정을 이끄는 적극적인 존재로 코러스의 존재감을 부각했다. ‘코러스장’을 중심으로 구현되는 집단의 시선은 인물과 사회의 시각, 내면을 보여주며 극의 리듬감을 더욱 밀도 높게 만들었다.
다수의 드라마에서 오랫동안 여러 왕을 연기해 온 최수종이 이번엔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로 캐스팅돼 화제다. 2017년 연극 <하늘로 가지 못한 선녀씨 이야기> 후 9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최수종은 <오이디푸스>에서도 묵직한 존재감과 국보급 연기력을 증명하고 있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지킬 앤 하이드>, <영웅> 등을 섭렵하며 ‘레전드’가 된 배우 양준모 또한 오이디푸스를 연기한다. 폭발적인 에너지와 밀도 높은 감정 연기를 선보이는 양준모의 오이디푸스는 최수종과는 다른 색깔을 연출하며 관객을 만나고 있다.
라이오스와 오이디푸스의 왕비, 비극의 또 다른 축인 이오카스테 역엔 서영희와 임강희가 캐스팅됐다.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독보적인 연기력과 존재감을 선보여온 서영희와 대형 뮤지컬 및 연극 무대에서 실력을 입증한 임강희가 완성하는 이오카스테는 작품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작품의 중심축을 구성하는 코러스장 역엔 임병근과 이형훈이 이름을 올렸다. 2년 만에 복귀하는 무대로 연극 <오이디푸스>를 선택한 임병근, 여러 뮤지컬과 연극에서 꾸준히 실력과 존재감을 이어온 이형훈이 연기하는 코러스장은 극의 밀도를 더욱 촘촘하게 구성하고 있다.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두 거장, 남명렬과 박정자 또한 연극 <오이디푸스>에 출연한다. 남명렬은 코린토스 사자를, 박정자는 테레시아스를 연기한다. 남명렬과 박정자가 오랫동안 무대에서 축적해 온 깊이와 존재감은 극을 더욱 묵직하게 해주며 객석에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또한 크레온 역엔 강성진과 최수형, 또 다른 테레시아스 역엔 나자명, 마찬가지로 또 다른 코린토스 사자 역엔 오찬우가 합류해 빈틈없는 라인업을 완성했다.
연극 <오이디푸스>는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력과 캐릭터 해석,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한 몰입감 높은 서사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무대 언어를 결합한 작품이다. 이에 개막 후 “화려한 볼거리와 정통 연기로 비극을 오롯이 느꼈다”, “올여름 꼭 봐야 할 작품”, “압도적인 몰입감에 다른 캐스팅으로 n차 관람을 하고 싶다”란 호평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고전의 가치에 오늘날의 시선과 동시대적인 감각이 담긴 극작과 연출,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가 더해져 작품은 매 회차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압도적인 무대 스케일과 정극의 품격을 완성하는 배우들의 ‘연기 차력쇼’도 큰 볼거리이지만, 고전의 깊은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연극 <오이디푸스>는 관객이 오랜만에 접할 제대로 된 정극일 것이다. 운명의 갈림길 앞에 선 비극적인 인간의 담대한 여정을 그린 연극 <오이디푸스>는 8월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