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마음을 끝낼 때 ‘접는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접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종이를 접었다 펼친 뒤에도 자국이 남듯, 사랑한 것이 사라진 뒤에도 사람은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
임선우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지상의 밤』에는 각기 다른 상실을 통과하는 일곱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연인과의 이별부터 가족의 죽음, 반려동물과의 작별, 멀어진 친구와 끝나버린 사랑까지. 인물들은 저마다 마음이 끝난 자리에 홀로 남겨진다. 그러나 이 책이 향하는 곳은 순간이 아닌, 그 이후의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아주 작고 귀여운 용기다.
의외로 이 책은 좀처럼 슬프지 않았다. 분명 죽음과 이별,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인데도 감정은 좀처럼 격렬하게 터져 나오지 않는다. 인물들은 남겨진 자리에서 울부짖기보다 밥을 먹고, 일을 하며 자신에게 남은 일상을 살아낸다. 그래서 그들을 가엾게 바라보기보다 조용히 응원하고 안아주고 싶어진다. 이 소설집은 상실을 잘 떠나보내는 방법을 차분하게 가르쳐준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작품 「프랑스식 냄비 요리」에서 연인 단은 어느 날 갑자기 물이 된다. 죽음을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바로 그 비현실성이 오히려 공백을 현실로 끌어온다. 물이 된 연인은 버릴 수도, 붙잡을 수도 없는 존재다. 남겨진 사람은 그 물을 담고, 끓이고, 결국 자신의 몸 안으로 받아들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품게 되는 것이다.
이어지는 「사랑 접인 병원」은 사랑을 몸의 문제로 옮긴다. 서로의 일부를 나누며 완전한 사람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관계가 끝난 뒤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보여준다. 사랑은 기억 속에서만 남는 것이 아니라 몸에도 새겨진다는 상상은, 이별이 얼마나 오래 안에 머무는지를 낯설게 보여준다.
표제작 「지상의 밤」의 수는 직장 내 괴롭힘을 겪은 뒤 세상과 단절되고, 의지하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해파리가 되기로 결심한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이 버거워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어 바다로 도망치려는 것이다. 수는 해파리로 변신하도록 돕는 강과 희조를 만나고, 변신을 기다리는 동안 그들과 짧은 생활을 함께한다.
수가 해파리가 되려 했던 것은 단순히 삶을 포기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지금의 몸으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상에서의 시간을 더 보내고 싶게 만드는 건 거창한 조언이나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집안일하고, 함께 음식을 먹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단순한 감각일 수 있다. 그렇다면 회복은 이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다시 살아볼 수 있는 몸과 마음을 얻는 일이다.
「만두 가게 앞에는 싱크홀이 있다」에서는 갑작스럽게 생긴 싱크홀을 보는 이야기다. 누군가에게는 삶을 무너뜨리는 재난이고, 누군가에게는 오래 바라보고 싶은 풍경이다. 싱크홀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구멍이다. ‘나’는 싱크홀을 보며 공포와 해방감, 지루한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선명한 감각을 동시에 경험한다. 같은 싱크홀을 바라보면서도 전혀 다른 감정을 품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그것을 바라보는 각자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동네 친구」는 끝난 관계를 쉽게 놓지 못하는 사람의 모습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남겨진 사람은 사소한 물건 하나에도 미련을 남기고, 이미 지나간 시간을 붙잡으려 한다. 마음을 접기 위해서인지, 혹은 조금이라도 남겨두기 위해서인지 그는 끝내 상대의 물건을 훔친다. 끝난 관계는 물건이라는 실체를 얻고, 손에 잡히는 형태로 남는다. 이 작품은 이별이 언제나 아름답고 성숙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여섯 번째 작품 「한겨울 따뜻한 실내에서」과 마지막 작품 「유령 개 산책하기」은 반려견의 죽음을 다룬다. 「한겨울 따뜻한 실내에서」의 희재는 반려견 묵을 떠나보낸 후 깊은 슬픔에 잠긴다. 죽음과 나이 듦을 생각하며 굳게 닫혀 있던 희재에게 가사도우미 해영과 오랜 친구 유자가 들어오며 비어버린 관계를 새롭게 채우고 넓혀나간다. 「유령 개 산책하기」 역시 죽은 반려견 하지가 한 달 만에 유령이 되어 돌아오는 이야기를 그린다. 생전에 하지를 충분히 사랑해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진 ‘나’는 유령이 된 하지와 다시 산책하고 일상을 나누지만, 이 유령 개와도 다시 한번 이별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사랑하는 존재가 돌아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를 붙잡아두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때때로 붙잡기보다 놓아주는 마음에 가까워야 한다. 하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영원히 자신의 곁에 두고 싶은 생각과, 하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가 원하는 곳으로 떠나기를 바라는 생각 사이에서 ‘나’는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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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편의 작품 어디에도 인물들이 감정에 압도되지 않는다. 물론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애도의 감정을 사물과 동물, 환상 속 존재에게 ‘외주화’한다. 회피하기 위함이 아닌 마음 안에 뭉쳐 있던 감정을 자신과 조금 떨어진 곳에 놓고 바라보려는 방법이다. 고통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물, 해파리와 유령 개 같은 둥근 형상으로 바꿔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상실은 여전히 아프지만, 이제 바라볼 수 있고 어루만질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래서 『지상의 밤』은 이별을 이야기하면서도 이상할 만큼 다정하다. 독자를 눈물짓게 만들기보다, 상처 입은 사람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는 쪽을 선택한다. 슬픔을 극복하라고 말하지도,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위로하지도 않는다. 그저 오늘 하루만 더 살아보자고, 함께 했던 순간을 추억하며 남겨진 흔적을 조금씩 정리해 보자고 말하는 듯하다.
『지상의 밤』에서 이별은 소멸보다 변형에 가깝다. 사랑했던 존재는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지만, 다른 형상이 되어 남겨진 사람의 삶 안에 머문다. 그리고 인물들은 그 흔적을 없애는 대신, 그것과 함께 살아갈 새로운 방법을 배운다.
김화진 소설가는 임선우 작가를 두고 ‘저승사자’같다고 표현한다. 처음에는 다정하게 안아주는 소설과 ‘저승사자’라는 비유가 낯설게 느껴졌지만, 책을 덮고 나면 그보다 적절한 비유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니라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존재처럼, 그녀의 소설 역시 그리움을 끝까지 동행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작가는 슬픔의 공포를 무서운 얼굴 대신 조금 둥근 얼굴을 한 환상으로 바꾸어 자신을 돌볼 수 있게 만든다.
지상의 낮과 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어지럽다고 중얼거리자
이제 갈 시간이야. 네가 말했지.
- 작가의 말에서
밤은 어둡지만 영원하지 않다. 『지상의 밤』의 인물들은 밤을 단숨에 빠져나오지 않는다. 다만 물이 된 사랑을 삼키고, 깊은 구멍을 들여다보고, 유령과 마지막 산책을 하며 조금씩 밤의 끝으로 걸어간다. 그 느린 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알게 된다. 접은 마음이 자국을 남긴 채 오래 우리 안에 머무는 것처럼, 애도의 끝은 완전히 잊는 데 있지 않다. 사랑이 남긴 흔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침내 잘 배웅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