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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폐관 후의 박물관에서, 이머시브 연극의 한계를 실험하다 [공연]

압도적인 스케일 속에서 확장되는 관객의 자유

by 김지현 에디터
2026.07.13 14:47

 

 

이머시브 연극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관객이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넘어 이야기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 정해진 자리에서 공연을 바라보는 대신 직접 공간을 이동하고 배우와 소통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객이 이야기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추상적이다.

   

배우와 가까운 거리에서 연기를 보는 것일 수도 있고, 공연 도중 간단한 역할이나 임무를 부여받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관객의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과 이야기를 경험하는 것일 수도 있다.


롯데월드 민속박물관에서 진행되는 <스테이 얼라이브 인 뮤지엄>은 이머시브 연극이 관객에게 얼마나 많은 자유를 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자유를 통해 어디까지 몰입을 끌어낼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작품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말하는 ‘한계’는 부족함이라기보다 경계에 가깝다. 관객을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넘어, 한 사람에게 주어진 공연 경험을 얼마나 개인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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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이 끝난 박물관이 무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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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 얼라이브 인 뮤지엄>은 롯데월드 민속박물관의 정식 운영이 끝난 뒤 시작된다. 공연은 박물관의 일부 공간만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민속박물관 전체를 하나의 무대로 활용한다. 공식적으로도 박물관 전체를 무대로 사용하는 체험형 이머시브 호러 공연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본 공연에 앞서 배우들과 직접 소통하는 20분간의 프리쇼가 진행된다.


낮 동안 수많은 관람객이 오가던 박물관은 운영이 끝난 순간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불이 꺼진 전시실과 비어 있는 통로, 사람의 움직임이 사라진 곳은 평소보다 훨씬 낯설게 느껴진다.


그 음산함은 공연을 위해 새롭게 만들어낸 세트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던 장소가 시간의 변화만으로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더 강하게 다가온다. 민속박물관의 전시물과 공간은 공연의 배경에 머무르지 않고, 작품의 분위기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공간의 규모도 인상적이다. 50인의 관객과 10인의 배우가 넓은 박물관 곳곳으로 흩어지기 시작하면, 내가 보지 못하는 장소에서도 분명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반적인 공연에서는 무대 위의 장면이 곧 공연의 전부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내가 서 있는 곳 바깥에도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다. 그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관객은 공연 전체를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거대한 사건의 일부만을 목격하는 사람이 된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본격적인 공연에 앞서 약 20분간 진행되는 프리쇼는 단순한 대기 시간이 아니다. 배우들은 자신의 역할과 성격에 맞게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몇 개의 그룹으로 관객들을 나누어 이끌어간다. 관객은 한 배우 곁에 계속 머물 수도 있고, 주변을 돌아다니며 다른 배우들의 행동과 대화를 살펴볼 수도 있다.


아직 본 공연이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모든 배우는 이미 자신의 역할로서 존재한다. 누군가는 관객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누군가는 다른 배우를 경계한다. 같은 장소에 모여 있지만 배우들은 서로 다른 감정과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다.


이 시간 동안 관객은 공연의 규칙을 자연스럽게 익힌다. 배우에게 가까이 다가가도 된다는 것, 한곳에 가만히 서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 모든 장면을 동시에 볼 수 없다는 것. 공연은 별도의 설명 대신 관객이 직접 움직이도록 만들며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경험하게 될지를 알려준다.


그래서 프리쇼는 세계관을 소개하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관객을 준비시키는 시간이다. 객석에서 누군가 공연의 시작을 알려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이미 시작된 이야기 속으로 스스로 한 걸음 들어가게 만든다.

 

 

 

누구를 따라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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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쇼가 끝나고 본 공연이 시작된 이후에도 관객은 특정 배우를 따라 공간을 이동한다. 10명의 배우 중 누구를 따라갈지, 한 배우를 끝까지 따라갈지, 이동 도중 다른 배우에게 갈아탈지는 관객의 선택이다. 배우마다 움직이는 장소도, 만나는 인물도, 관객에게 전하는 정보도 다르다.


때로는 따라가던 배우가 갑자기 자리를 떠나면서, 넓고 어두운 박물관에 홀로 남겨지는 순간도 생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관객이 직접 판단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동의 자유는 곧 긴장감으로 이어진다.


나는 지인들과 함께 공연을 관람했지만, 모두 같은 배우와 동행하진 않았다. 내가 함께한 배우는 지인들이 따라간 배우를 나무라고 경계하는 인물이었다. 반대로 지인들이 함께한 배우는 내가 따라간 배우를 믿지 말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


공연을 보고 있는 동안에는 내가 따라가는 인물의 말이 가장 가까운 진실처럼 느껴진다. 그 인물의 두려움과 의심을 함께 경험하고, 그가 바라보는 방식으로 다른 인물들을 판단하게 된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뒤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가 알고 있던 것이 전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누구를 따라갔느냐에 따라 믿게 되는 인물이 달라지고, 사건을 이해하는 방향도 달라진다. 관객은 단순히 여러 갈래의 동선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전체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점을 선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유롭게 선택하는 대신, 반드시 놓치는 것이 있다



<스테이 얼라이브 인 뮤지엄>이 흥미로운 이유는 관객에게 많은 자유를 주면서도, 동시에 모든 것을 볼 수 없게 만든다는 데 있다. 한 배우를 따라가는 동안 다른 아홉 명의 배우에게는 또 다른 일이 벌어진다. 흥미로운 소리를 듣고 뒤늦게 다른 장소로 이동하더라도, 이미 지나가 버린 장면은 다시 볼 수 없다. 새로운 배우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지켜보던 인물을 놓아야 한다. 선택에는 항상 포기가 따라온다.


관객의 자유도가 높아질수록 한 번의 관람으로 볼 수 있는 공연의 범위는 오히려 좁아진다. 모든 장면을 빠짐없이 보여주는 대신, 관객이 직접 무엇을 보고 무엇을 놓칠지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것이 조금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다. 넓은 공간 곳곳에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그중 일부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불완전함이야말로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다.


모두가 같은 공연을 관람하고도 서로 다른 기억을 갖게 된다. 누군가는 내가 전혀 만나지 못한 배우와 긴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는 내가 보지 못한 사건의 단서를 발견한다. 각자가 가진 조각을 맞춰보아야 비로소 더 큰 이야기가 드러난다.


이 공연에서 관객의 선택은 단순히 재미를 위한 장치가 아니다. 내가 어떤 인물을 믿고, 무엇을 보았으며, 어떤 장면을 놓쳤는지까지 포함하여 나만의 공연을 만들게 하는 방식이다.

 

 

 

공연이 끝난 뒤 완성되는 이야기



지인들과 공연장을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각자가 무엇을 보았는지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어떤 배우를 따라갔는지, 무슨 말을 들었는지, 어느 장소에 들어갔는지. 같은 순간에 서로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했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보았던 장면의 의미도 조금씩 달라졌다.


일반적인 공연에서도 감상을 나누는 일은 즐겁다. 하지만 대개는 함께 본 하나의 장면을 두고 서로 다른 해석을 이야기한다.


<스테이 얼라이브 인 뮤지엄>에서는 그보다 앞선 단계부터 다르다. 해석만 다른 것이 아니라, 애초에 본 장면 자체가 다르다. 그래서 공연이 끝난 뒤의 대화는 감상을 나누는 일을 넘어, 자신이 보지 못한 공연을 서로에게서 듣는 시간이 된다. 각자의 경험이 합쳐지며 비어 있던 부분이 채워지고, 공연은 극장을 나온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된다.


같은 작품을 다시 관람하더라도 완전히 같은 경험을 반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 번의 관람으로 공연을 모두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재관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진다.


*


이머시브 연극에서 관객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무리 자유로운 공연이라 해도 관객이 작품의 모든 것을 결정할 수는 없다. 공간과 이야기, 배우들의 동선은 미리 설계되어 있고, 관객의 선택 역시 그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스테이 얼라이브 인 뮤지엄>은 그 경계를 상당히 멀리까지 넓힌다. 넓은 박물관을 직접 돌아다니고, 여러 배우 중 한 사람을 선택하고, 때로는 그 인물을 떠나 다른 이야기를 쫓는다. 관객은 공연의 결말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면을 자신의 공연으로 삼을 것인지를 선택한다.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없다는 한계도 분명해진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한계를 감추는 대신, 놓친 장면과 알지 못하는 이야기까지 공연의 일부로 만든다.


결국 이 작품에서 관객에게 주어진 자유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자유가 아니다. 수많은 이야기 중 자신이 경험할 하나를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은 장면은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자유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 때문에, 같은 공연을 본 관객들은 저마다 다른 한 편의 공연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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