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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메리 카삿과 베르트 모리조 작품으로 본 모더니즘 시선의 성적 정치학 [미술/전시]

근접성과 거리두기: 모더니즘 시선의 성적 정치학과 그 균열

by 서연화 에디터
2026.07.13 14:47

 

 

그리젤다 폴록(Griselda Pollock)은 『Vision and Difference: Femininity, Feminism and the Histories of Art』의 「Modernity and the Spaces of Femininity」에서, 모더니즘 시선의 성적 정치학 속에서 여성 모더니스트 화가인 메리 카삿(Mary Cassatt)과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가 여성을 대상화하는 기존의 관음적 시선에서 벗어나 여성성을 바라보고 재현하는 대안적 방식을 어떻게 열어냈는지를 논한다.

   

이러한 폴록의 논의는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 이론가 메리 켈리(Mary Kelly)의 시각 이론에 근거한다. 켈리에 따르면, 서구 시각문화, 특히 모더니즘에서 시선의 성적 정치학이 능동/수동, 보는 자/보이는 자, 주체/객체와 같은 이분법적 구분을 통해 조직되어 왔다고 본다. 이 구조 속에서 남성은 시선의 주체로서 권력을 가진 위치에, 여성은 시선의 대상이 되는 객체화 된 위치로 고정된다. 이러한 비대칭적 관계는 시각문화 전반에 걸쳐 반복되고 재생산됐으며, 모더니티에서 ‘본다’라는 행위 자체가 역사적으로 구성된 권력관계로 기능해왔다고 할 수 있다.

 


An oblique look.jpg



프랑스 사진가 로베르 드와노(Robert Doisneau)의 사진 <비스듬한 시선>(1948)은 당시 여성 관람자가 모더니즘의 비대칭적인 성적 시각 체계 속에서 ‘보는 주체’로 자리 잡기가 어려웠음을 보여준다. 즉, 여성은 능동적으로 시선을 행사하는 주체라기보다 구조적으로 ‘보이는 대상’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 작품에서는 세 가지 시선이 교차한다.

 

첫째. 그림을 바라보는 여성의 시선, 둘째, 화면 속 비스듬히 배치된 여성의 벗은 신체를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 셋째, 이 장면 전체를 은밀하게 엿보는 것 같은 관람자의 시선이다. 이 시선의 삼각 구조 속에서 관람자는 남성의 관음적 시선에 끌려 들어가며, 여성의 신체는 자연스럽게 대상화된다. 반면 그림 속 여성의 시선은 대상화된 여성 신체와 대비되며 구체적인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 채 텅 비어 있는 공허한 시선으로 남게 된다. 결과적으로 여성의 시선이 모더니즘의 시선의 권력 구조 속에서 구조적으로 무력화되고 주변화되는 방식을 드러내며, 여성이 보기를 욕망하는 것은 이러한 구조 속에서 나타낼 수 없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여성 예술가는 이른바 ‘페미니스트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 여성은 사회적으로 ‘보이는 대상’으로 위치 지워지는 동시에, 예술가로서는 작품을 생산하는 ‘보는 주체’의 위치를 점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치 속에서 메리 카삿과 베르트 모리조는 기존의 남성 중심적 시선 구조를 단순히 반복하지 않는다. 이들은 여성성의 장소라고 간주해 온 사적인 공간을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들의 회화에서 가정이나 실내 공간은 더 이상 여성을 수동적으로 보이는 대상으로 고정하는 ‘보는 공간’이 아니라, 인물들 사이의 관계와 상호작용이 형성되는 장으로 전환된다. 이와 관련해 어떻게 전환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지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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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카삿의 <목욕하는 여인>(1891) 작품이다. 카삿은 주로 친밀한 가족의 일원을 그렸는데, 그 일원에는 그림의 모델이 된 인물처럼 하녀나 유모 같은 집안일하는 노동 계급의 여성들도 속했다. 같은 모더니스트 화가이자 동료였던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욕조>(1886)와 달리, 카삿은 친밀한 시선 속에서 여성의 몸을 성적으로 대상화하지 않고 일상적이고 노동적인 맥락 속에서 재현해 냈다. 반면, 드가의 그림은 오른쪽을 가득 채우는 비스듬한 선반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점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몰래 훔쳐보는 관음적 시선을 구성하며, 그 속에서 나체인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구도를 만들어낸다.

 

 

The tub.jpg

 

 

이러한 두 그림의 차이는 바로 근접성거리두기로 이뤄지는 공간 구성과 관람자의 위치 설정에서 발생한다. 카삿은 일본 우키요에 판화의 영향을 받은 판화 화풍을 통해 기하학적 원근법을 약화시키고 공간을 평면화시킨다. 바닥의 양탄자 패턴과 벽지가 화면 앞쪽으로 바짝 당겨져 있는, 얕고 압축된 회화 공간을 구성함으로써 인물과 관람자 사이의 관습적인 거리감이 사라지게 된다. 그 결과, 관람자는 인물을 멀리서 관찰하거나 드가의 그림에서처럼 관음적으로 훔쳐보는 위치가 아니라, 그녀가 몸을 씻고 있는 이 비좁고 사적인 세면대 바로 앞에 함께 서 있는 듯한 근접성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 여성은 관람자를 응시하지 않고 씻는 일상적인 행위에 몰두해 있는데, 이는 그녀가 독립적인 내면세계를 갖고 있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따라서 관람자는 인물과 지극히 가깝게 설정된 거리에서 그녀의 섬세한 피부결과 미묘한 몸짓을 시선의 부드러운 궤적을 따라 더듬어 가며 내면을 감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관람자는 인물과 심리적으로 교감하며, 일방적으로 대상을 응시하는 주체가 아니라 그림 속 여성과 동등한 시선 속에서 ‘상호 주체적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근접성과 거리두기의 균형이다. 미술사학자 전영백에 따르면, 이 거리감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이 정신분석학자 브라하 에팅거의 ‘매트릭스 이론’이다. 여기서 그림 속 여성과 관람자 간의 상호 주체적인 관계는 정신분석학에서 언어계 이전, 모성과의 분리가 일어나기 전의 친연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기존의 남성 중심의 정신분석학에서와 달리, 브라하 에팅거는 이미 탄생의 순간에 태아가 모성으로부터 분리되는 상실을 겪는다고 본다. 그러므로 상징계 진입 전의 단계에서 아이는 모성과 아무리 깊은 친밀감을 느끼더라도 완전한 하나로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친밀성 속에서도 늘 최소한의 분리를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관람자는 그림 속 여성과 매우 가깝게 연결되지만, 매트릭스적 관계성 속에서 대상과 일방적으로 합일되지 않는 최소한의 분리와 거리감을 담보하는 친밀성을 갖게 된다. 카삿은 모더니스트 화가로서 판화 특유의 2차원적인 평면성과 장식적 패턴 등을 이용해 표면의 물질성을 강조함으로써 이러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따라서, 관람자는 이미지에 환영적으로 빠져들지 않은 채 인물과 매트릭스 이론상의 상호주체성 속에서 만나며, 이 친밀한 시선 속에서 그림 속 여성은 어떠한 대상화도 되지 않은 그저 단순히 한 노동 계급의 여성이라는 인격적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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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메커니즘은 모리조의 <프쉬케>(1876)에서도 나타난다. 거울 앞에 선 젊은 여성은 사춘기를 지나며 자아를 형성해 가는 존재로, 자기 모습을 바라보며 내면을 탐색하는 듯이 보인다. 제목이기도 한, 프랑스어로 전신거울을 뜻하는 ‘프쉬케Psyché’는, 신화 속 여인 프쉬케를 연상시키며 여성의 내면적 성숙과 성적 일깨움을 상징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여성이 사춘기를 거치며 자신의 성을 점차 깨달으며 성장해 가는 과정을 그림을 통해 나타낸 것으로, 모리조는 근접성과 거리두기를 통해서 인물을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사려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했다.

 

모리조 또한 기하학적 원근법에서 벗어나 얕은 회화 공간을 구성함으로써, 관람자는 마치 이 여성의 사적이고 좁은 방 안에 함께 존재하는 것 같은 근접성을 경험하게 된다. 반면, 모리조 또한 유화 물감의 두터운 붓질의 질감과 물질성의 표현을 통해 2차원적인 평면임을 드러냄으로써 관람자가 이미지의 환영에 사로잡히는 것을 막아 최소한의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다. 관람자는 이러한 ‘매트리스적 경계공간’ 속에서 자아를 탐구하는 데 몰두하고 있어 보이는 젊은 여성과 심리적으로 친밀하게 연결되면서도 완전히 동화되지는 않는다. 이로써 그녀를 대상화하는 시선이나 관음적인 시선으로부터 해방시켜, 상호 주체적인 만남을 바탕에 둔, 성장 과정 속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지니는 한 여성을 보는 그러한 사려 깊은 시선이 가능해진다.

 

결론적으로, 카삿과 모리조의 회화에서 나타나는 근접성과 거리두기는 회화 속 사적이고 가정적인 공간을 남성의 시선이 지배하는 보는 공간이 아니라, 관계가 형성되는 공간으로 전환된다. 여기서 그림 속 여성들은 일방적으로 보이는 대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시선과 행동을 통해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주체, 즉 스스로 보고 행동하는 주체로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관람자의 관음적이고 지배적인 시선은 약화되며, 기존의 단일한 권력적 시선 구조 역시 균열을 보이게 된다. 따라서, 근접성과 거리두기는 기존 시선의 성적 정치학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그 내부에서 다른 시선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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