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화를 '본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눈을 감고도 영화를 볼 수 있을까.
나는 좋은 영화를 떠올리면 장면 자체보다도 그때 처음으로 느꼈던 전율과 감동을 기억한다. 빗소리와 함께 밀려오던 불안, 한동안 침묵이 흐르던 공기의 무게 같은 것들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결국 이미지가 아니라 경험이고, 그때 느꼈던 감정이다.
도서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은 그 감각을 최대한 언어라는 기호로 풀어낸 서수연 작가의 경험을 담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음성해설 작가인 저자는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영화, 드라마, 공연, 미술관 전시, 무용 등 수천 편의 예술작품에 음성해설을 달았다.
음성해설은 저자가 말하듯, 단순히 화면을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작가가 후술하듯 ‘번역’해내는 일이다. 음성해설은 언어에서 언어를 번역하는 게 아니라 이미지를 언어로 번역해 내는 일이다. 카메라의 움직임을 문장으로 바꾸고 배우의 몸짓을 언어로 바꾼다. 화면 속 여러 기호들을 시간 안에 담아내는 일이다. 마치 몽타주를 그리는 느낌이기도 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번역가를 '제2의 창작자'라고 생각해왔다. 같은 외국 소설이라도 번역본마다 전혀 다른 작품처럼 읽힐 때가 있다. 우리는 원작자의 문장만 읽는 것이 아니라, 번역가가 다시 빚어낸 언어를 함께 읽는다. 음성해설 역시 그렇다. 화면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장면이 다시 살아 움직일 수 있는 문장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묘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는 리듬이 있고, 긴장이 있으며, 여백이 있다. 배우의 대사를 침범해서도 안 되고, 음악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를 덮어서도 안 된다. 설명은 최소화하면서도 장면은 놓치지 않아야 한다.
실제로 저자는 시각장애인들에게 특히 사랑받았던 외화 드라마 CSI의 음성해설을 맡으며 사건보다도 화면 연출을 어떻게 언어로 바꿀 것인지 더 많은 고민을 했다고 회고한다. 공포영화를 작업할 때는 모두가 눈을 감고 싶어 하는 순간, 영상을 멈춘 채 가장 무서운 장면을 가장 생생한 언어로 다시 써야 했다. 반대로 역사적 비극을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는 한 장면 한 장면을 반복해서 읽어내야 했기에 가장 힘든 작업이었다고 말한다.
결국 음성해설은 무엇을 설명할 것인가 보다 무엇을 설명하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농담을 설명하면 재미가 사라지듯이, 좋은 설명은 설명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좋은 음성해설은 이해를 강요하지 않는다. 관객이 영화와 같은 속도로 놀라고, 웃고, 슬퍼하도록 돕는다.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이 일어나도록 설계하는 것에 가까웠다.
책의 중반부부터는 저자의 유학기가 이어진다. 그녀는 영국에서 접근성을 공부하며 예상치 못한 실패를 겪고, 귀국 후에는 이전과 달라진 업계를 다시 마주한다. 저자는 그 시간을 도피처럼 이야기하지만, 내게는 오히려 준비처럼 읽혔다. 충분히 공부하고, 사색하고, 자신의 일을 다시 정의하는 시간이었다. 이후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음성해설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는 무려 19개 언어의 음성해설이 제작되었고, 이에 따라 접근성 역시 하나의 콘텐츠 경쟁력이 되어간다.
그래서 책의 후반부는 자연스럽게 접근성이라는 주제로 나아간다. 우리는 접근성을 장애인을 위한 배려 혹은 복지의 개념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가 보여주는 접근성은 조금 다르다. 접근성이란 그저 더 많은 사람이 예술을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생각해 보면 예술은 늘 누군가와 경험을 나누려는 시도였다. 소설은 자신의 상상을 타인의 머릿속으로, 영화는 자신의 시선을 관객에게 건넨다. 음성해설 역시 그 연장선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누군가가 만든 세계를, 또 다른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일. 장면을 문장으로 바꾸고, 문장이 다시 영화가 되도록 만드는 일.
책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은 읽을수록 내게 ‘언어란 무엇인지, 그리고 예술은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질문했다. 마침 오는 7월 15일, 배리어 프리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처음으로 음성해설과 함께 관람하게 된다. 이어지는 관객과의 대화에는 서수연 작가와 이다혜 기자가 감상을 나눌 예정이다.
그날 나는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 어떻게 또 하나의 영화를 만들어내는지 듣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