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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털북숭이 다리의 무게 - 시크릿 에이전트 [영화]

'그 시절'을 미화하는 이들에게

by 조현정 에디터
2026.07.10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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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브라질, 모종의 이유로 이름을 버리고 사라졌던 마르셀루는 아들과 재회하기 위해 고향 헤시피로 돌아온다. 1977년의 브라질은 군사독재가 한창인 시기로, <시크릿 에이전트> 역시 권력의 부패와 그 속에서 평범한 시민이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를 그려내고 있다.

 

 

 

털북숭이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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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을 입은 형사들이 굳은 표정으로 한 대학에 도착한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상어의 시체 안에서 발견된 사람 다리. 이 신원 미상의 다리는 신문에도 보도되며 부검에 들어가지만 부패한 경찰들은 뇌물을 주고 다리를 바꿔치기한다. 결국 다리는 그 주인을 가리지 못한 채 다시금 물속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그다음 장면이 특이하다.

 

물에 가라앉은 줄 알았던 다리는 어느 공원에 버려져있다. 이윽고 다리는 살아 움직이더니, 쿵쿵 소리를 내며 뛰어다니질 않나 공원에 있는 온갖 사람들을 발로 차기까지 한다. 현실에 발붙이고 있는 이 영화에서 유독 도드라지게 환상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부분이다.


이렇게 살아움직이는 ‘털북숭이 다리’는 헤시피에 있는 일종의 도시 전설로, 군사독재 시기 검열을 피하기 위해 쓰이던 표현이다. 신문에서 털북숭이 다리가 등장했다고 말하면 경찰과 관련된 나쁜 일이 있었음을 은유적으로 알리는 것이었다. 즉, 털북숭이 다리는 권력의 폭정을 나타내는 일종의 상징인 셈이다.


경찰이 ‘카니발 기간 중 사상자 91명’이라는 기사를 두고 카니발이 끝날 쯤엔 100명을 넘길 거라고 말한 것은 단순히 카니발의 광란 속에서 사상자가 늘어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다리를 다시 버리고 오던 그들의 대화 속에서 관객은 경찰들이 사람을 납치했으며 앞으로 성범죄를 저지를 것임을 알 수 있다. 기사에 등장하던 ‘사상자’가 정말 혼란한 축제 속에서 사고를 당한 이들인지, 경찰에게 폭력을 당하고 버려져 다리 한쪽으로 돌아온 이들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기억의 발굴


 

마르셀루의 이야기를 따라가던 영화는 돌연 시야를 완전히 바꿔버린다. 1977년이 아닌 현대의 브라질로 들어와 마르셀루의 이야기를 탐구하고 있는 대학생을 비춰주는 것이다.

 

일종의 액자 형식을 취하며 중간중간 시점을 달리하던 영화는, 가장 극적인 순간에 들어서는 아예 1977년을 빠져나온다. 이러한 전환들, 특히 마르셀루의 죽음이 현대에서 신문 기사로 전달되는 것은 영화의 흐름을 끊어놓거나 맥빠지는 전개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는 기억이 어떻게 후대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사건을 조사하던 대학생은 장성한 마르셀루의 아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어려서 마르셀루를 잃은 그에게 아버지는 아주 먼 존재일 뿐이다. 학생에게 아마 자신보다 당신이 아버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을 거라 말하는 장면은 아이러니하다.

 

그 시대를 직접 살았으나 기억이 없는 존재. 승자의 기록이라던 역사 속에서 평범한 이들이 승리할 방법은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기록을 물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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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마르셀루는 신원 확인소에서 일하며 엄마의 기록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추격으로 인해 도망치는 순간까지도 그는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한다.

 

아들이 전해주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의 할아버지는 부유한 집안이었고 할머니는 그 집안에 살던 일종의 시녀 신분이었다. 어린 나이에 임신하게 된 그는 아들(마르셀루)을 부유한 집안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알 수 없다.


마르셀루의 이야기는 인터뷰 내용이 담긴 카세트테이프와 현대의 대학생에 의해 다시금 기억될 수 있었다. 그의 죽음은 기사에 쓰인 것처럼 불법을 저지른 교수의 죽음이 아니라 거대 기업에 의해 누명을 쓰고도 삶을 살려 애쓰던 한 사람의 죽음이었다고 말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누군가의 노력이나 운 좋게 남아 전달된 증거 없이 잊혀버린 진실들이 무수히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르셀루의 엄마처럼.

 

*

 

<시크릿 에이전트>는 '군사독재'와 '도망자'라는 키워드를 두고 떠올렸던 그런 유형의 영화와는 조금 다른 영화였다. 중간중간 흐름이 끊기기도 하고 영화가 살짝 불친절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러나 “독재를 다룬 익숙한 영화적 관습을 반복하기보다, 그 시대를 지배하던 논리와 공기, 잔향 자체를 포착하고 싶었다”라는 감독의 말을 생각해 보니 이 영화를 왜 이런 구조와 느낌으로 연출했는지 알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브라질의 역사는 한국의 역사와 닮은 구석이 있다. 70년대의 한국 또한 독재 정권의 한 가운데에서 누군가 이유 없이 잡혀가고 고문 받고 죽는 일이 많았으리라. 영화를 보다 보면 일상적인 장면에서도 배경에 깔려있는 듯한 미묘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권력에 저항했든 순응했든,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느꼈을 시대의 공기가 얼마나 숨 막혔을지 엿볼 수 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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