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회에 브라질 대사가 왔다. 그는 ‘이 영화를 한국 관객들과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브라질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과 같은 내용의 인사를 나눴다. 뜻밖의 일이다.
한국은 내수시장이 비교적 탄탄한 편이라 외국영화에 대한 수요가 크지 않다. 할리우드 대작조차 한국에 오면 기대보다 아쉬운 성적을 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물며 브라질 영화라니!
게다가 러닝타임이 161분이다. 2시간을 넘기고도 40분가량을 더 앉아 있어야 크레딧이 올라간다. 3분짜리 음악도 길어 2분대로 줄어드는 시대에, 2시간 반이 넘는 브라질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을 관객이 얼마나 될까.
올해 상반기 영화관 매출액이 코로나19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지만 그렇다고 해도 브라질 영화라니. 나조차도 브라질하면 삼바 정도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무지한 관객이다.
‘브라질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하는 일 자체가 특별하니까 대사가 찾아온걸까?’라는 의문을 가진 것도 잠시 영화를 보고 나니 알 것 같았다. 이 영화가 브라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다른 나라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샛노란 전화부스
처음 눈길을 끈 것은 포스터 속 샛노란 전화부스였다. 헬멧을 연상시키는 둥글고 깊은 모양의 공중전화 박스. 브라질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던 내 눈에 그 물건이 어쩐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한국의 회색 공중전화나 런던의 빨간 전화부스처럼 브라질 거리의 익숙한 풍경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 노란 물체 하나만으로도 흥미가 생겼다.
뜨거운 태양, 가짜 신분, 청부 살인... 영화 소개에 쓰인 키워드도 굉장히 자극적이다. 게다가 평단의 극찬을 받았단다. 간만에 잘 만든 스릴러 영화를 볼 수 있겠다며 영화관에 들어간 나는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다.
당신 정체가 뭐야
사고로 죽은 시체를 치우지 못해 손님이 찾아오지 않는 주유소. 그곳으로 차를 몰고 들어온 남자는 시체를 보고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인에게 먼저 사건의 전말을 묻는다. 곧이어 남자를 쫓아온 경찰이 그의 차를 수색한다.
영화 제목이 ‘시크릿 에이전트’인만큼 남자는 어딘가 수상한 낌새를 풍긴다. 시체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기금을 핑계로 남자에게서 거리낌 없이 물건을 가져가는 경찰도 수상하기 짝이 없지만 일단 이 문제는 뒤로 하자.
이상한 탈을 쓴 사람들이 남자의 차를 향해 달려드는 등 불길한 음악과 의미심장한 이미지들이 이어진다. 저 남자는 대체 누구지? 무엇을 숨기고 있는거지?
챕터별로 진행되는 구성 역시 스릴러적 기대감을 강화한다. 각기 다른 인물과 사건이 파편처럼 제시되고, 관객은 그 조각들을 이어 붙이며 사건의 전말을 추리하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던 장면들이 점차 연결성을 갖게 된다.
청부살인업자들은 마르셀루를 쫓고, 마르셀루는 새로 취직한 신분확인소에서 헤시피 관할 경찰들과 얽히게 된다. 죠스 영화를 보고 싶어 하던 남자아이는 마르셀루의 아들이었다. 곧 이야기의 중심부에 다다를 것만 같다.
카니발 중 발생한 수많은 사상자, 상어의 뱃속에서 나온 털복숭이 다리 한 쪽. 경찰은 시민 안보에 관심이 없고, 오히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다른 권력자들을 도와주거나 무고한 시민들을 자신의 유흥거리로 삼고 즐기기만 한다.
헤시피는 안전해 보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마르셀루, 당신 정체가 뭐야!
선량한 시민
마르셀루는 선량한 시민이다. 사실 그의 본명은 아르만두이고, 동료들과 마음 놓고 연락하지 못하며, 청부살인업자들에게 쫓기는 신세이지만 그는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다.
전반부가 슬로모션과 파편적인 이미지, 의미심장한 상징을 통해 관객에게 그의 정체를 추론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면, 아르만두가 입을 열어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기 시작한 이후 영화의 흐름이 달라진다. 악으로 규정되는 인물이 누구인지, 그가 왜 도망쳐야 했는지가 조금씩 알게되면서 관객은 아르만두의 생존을 바라게 된다. 그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는 선량한 시민일 뿐이니까.
흥미로운 점은 주인공이 직접 사건의 전말을 말하는 다소 단순하고 클리셰적인 방식을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건들을 병렬적으로 진행시킨다는 점이다. 이러한 방식이 이야기가 긴장감을 잃지 않게 만든다.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강조하고 싶은 문제들을 조금 더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첫 번째는 부패한 경찰이다. 영화 속 경찰은 청부살인업자들과 가까이 지내고, 시체의 다리를 빼돌려 바다에 버리는 등 차라리 마피아에 가까운 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당시 브라질은 이러한 폭력과 부패를 신문에 그대로 실을 수 없는 시대였다. 언론 탄압과 검열 아래에서 ‘털복숭이 다리’의 전설이 생겨났다. 황당한 도시괴담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는 사실 부패 경찰과 정치적 억압에 대한 우회적인 고발이었다.
누군가가 받은 살인 의뢰를 또 다른 청부살인업자에게 넘기는 모습도 황당하다. 그만큼 사람의 목숨이 쉽게 거래되던 시대였고, 도덕 법규가 지켜지지 않는 사회였다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카니발 사망자 수 역시 일상에 도사리고 있는 공포를 보여준다.
장르는 이용당했을 뿐
청부살인업자들이 아르만두를 찾아내면서 영화는 클라이맥스에 도달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피가 튀는 잔인한 장면들이 이어지면서 장르영화다운 속도감이 최고조에 이른다. 속도감 있는 추격전이 이어질듯 하지만 선량한 주인공 아르만두는 그 장면에서 한 발 떨어져 있다.
결국 그는 도망치지 못하고 죽음을 맞지만, 관객들은 흑백 뉴스 기사 형태로만 그의 죽음을 알게 된다. 영화는 주인공 아르만두의 죽음을 자극적인 볼거리로 만들지 않고, 추격전의 끝을 피바다가 아닌 그의 아들 페르난두와 학생의 만남으로 마무리한다.
이 지점에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욱 분명해진다. 이 영화의 핵심은 장르적 재미가 아니라, 브라질 역사의 한 축에 있다.
페르난두와 학생이 만난 병원은 우연하게도 페르난두가 어린 시절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죠스를 보았던 영화관이 있던 자리다. 시간이 흐르고 장소의 모습은 변해도, 지나온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땅 속에 혹은 기록과 기억을 통해, 살아가는 사람들 몸과 마음 속에 남아있다.
1964년 군사 쿠데타 이후 브라질은 오랜 군부독재 체제를 겪었다. 언론 검열, 정치적 반대자 탄압, 지식인 탄압, 공권력과 범죄조직의 결탁이 이어졌다. 또한 브라질 사회에는 지역적 불균형과 차별의 역사도 깊게 남아 있다. 부유하고 백인 이민자 비율이 높은 남부·남동부에 비해, 빈곤하고 흑인과 혼혈 인구가 많은 북동부는 오랫동안 소외와 차별을 겪어 왔다. 영화의 배경인 헤시피는 바로 그 북동부의 도시다.
이러한 역사적·정치적 배경을 모르면 영화의 모든 층위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브라질의 역사를 잘 모르는 관객에게도 관심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브라질에서는 여전히 군사독재 시기를 어떻게 기억하고 평가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역사는 기억되어야 하며, 계속하여 이야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
<시크릿 에어전트>는 자극적인 키워드 안에 역사적 진실을 촘촘히 숨겨놓은 영화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진지하고 무겁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장르적 재미와 역사적 메시지, 미장센의 아름다움과 정치적 문제의식이 서로를 해치지 않고 움직인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어진다. <시크릿 에어전트>는 올해 최고의 스릴러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