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전부터 꽤 기대하고 있었던 작품인 ‘맨 끝줄 소년’. 공개되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6화를 다 봐버렸다. 최민식이 이 드라마는 ‘몰아보기’로 봐야 진가가 나타난다고 했다던데, 그 말이 이해됐다. 흡입력 있는 스토리와 몰입도 높은 구성 때문인지 새벽 4시까지 쭉 몰아봤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열등감’이란 도대체 뭘까? 라는 질문이 스스로 계속 되뇌어졌다. 이 작품을 아우르는 하나의 주제는 아무래도 열등감일 것이다. 주인공 허문오는 실패한 작가다. 국문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는 자신이 실패했다는 과거의 사실에 갇혀서 대학 동기이자 성공한 작가인 김수훈에게 열등감을 느끼며 시기하는 데에 온 에너지를 쏟는다. 참 한심하고 찌질한 인물이다. 허문오는 너무나 투명하게도 본인의 생각과 감정이 온몸에 드러나는 인물이라 그런지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그를 보고 있기만 해도 괜히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허문오의 열등감은 학생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허문오는 한 학생의 과제물을 읽고 단숨에 빠져들게 된다. 처음엔 그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제자의 글에 매료된 것으로만 보이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그는 광적으로 그 글에 집착한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나이에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가진 학생을 마주한 허문오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진정한 스승이었다면 이 아이의 재능을 끌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열등감으로 뭉쳐있는 허문오는 그 안에서 자신의 실패를 발견했고, 동시에 자신의 욕망을 투영했다. 그래서 그의 관심은 끝내 '제자'를 향한 것이 아니라, 제자를 통해 이루고 싶었던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허문오에게 이강은 자신이 끝내 되지 못한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강의 글 안에 자신의 욕망과 미련을 덧씌운 채 허문오는 이강의 글을 완성한 사람이 자신이라고 믿는다. 타인의 재능마저 자신의 것이 되길 원했던 열등감의 끝이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이강이라는 인물이다. 이강은 회차가 거듭될수록 허문오의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들며 그를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강이 써 내려가는 소설은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 세윤과 그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학기 초 의도적으로 세윤에게 접근한 이강은 그의 집을 드나들며 가족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이를 하나의 소설로 엮어낸다. 시간이 지나며 세윤의 아버지가 허문오가 평생 열등감을 품어온 유명 작가 김수훈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허문오는 점점 그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한다.
이강의 이야기는 회차가 거듭될수록 더욱 충격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소설 속에서 김수훈의 명예는 계속해서 무너지고, 허문오는 그 모습을 보며 쾌감을 느낀다. 동시에 첫사랑이었던 김수훈의 아내인 은주의 처지에 과도하게 몰입하며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점차 잃어간다. 이강이 써 내려간 이야기에 허문오의 상상과 욕망이 덧입혀지면서 소설은 그의 머릿속에서 원래의 형태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결국 허문오는 이강의 다음 원고만을 기다리며 이야기 속 세계에 완전히 잠식된다.
사실 이야기나 소문이라는 것이 그렇다. 사람들의 상상과 해석이 덧붙으며 점점 부풀려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원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형태가 된다. 그것이 사실이든 허구든 상관없이 사람들은 자신의 쾌락과 욕망, 그리고 열등감을 투영하며 이야기를 소비한다. 보고 싶은 방향으로 이야기를 해석하고, 원하는 결말을 만들어내는 순간 그 이야기의 본질은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허문오의 모습은 타인의 삶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사람들에게 내재된 ‘관음의 욕망’을 떠올리게 했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참 많은 관심을 가진다. 자기 일이 아닌데도 쉽게 말을 얹고,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분노하거나 안타까워한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묘한 불편함과 찝찝함이 들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누군가의 삶을 지켜보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안에서 이상한 짜릿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일은 왜 이토록 흥미로운 걸까.
허문오를 보며 한심하고, 찌질하고,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 역시 이강이 만들어낸 완벽한 가정이 무너져 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가장 불편했던 것은 허문오가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이었다.
결국 ‘맨 끝줄 소년’은 허문오라는 한 인물의 열등감을 그린 드라마에만 머물지 않는다. 타인의 삶을 소비하고, 그 위에 자신의 욕망과 상상을 덧씌우는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허문오는 극단적인 인물이지만, 그의 모습이 마냥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맨 끝줄 소년’은 긴장감 있는 연출과 배우들의 몰입감 있는 연기, 그리고 '열등감'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과 관음의 심리를 흥미롭게 풀어낸 작품이었다.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남을까?
(다음 시간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