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러분, 다들 잘 지내셨나요? 지난주 런던은 너무나도 더웠습니다. 제가 아이스크림이었다면 이 글을 쓰기도 전에 녹아내렸을 것 같아요. 한국은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간만에 저의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고 싶은 마음에 셀프 큐레이션으로 상반기의 마지막 글을 올려 봅니다.
사실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글태기가 온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증상을 이야기해 보자면 지각을 밥 먹듯이 했고, 컴퓨터 앞에 앉아 세 문단 이상을 집중력 있게 써내려가는 데에 종종 막힘이 있었습니다. 나름 변명을 해 보자면 아르바이트를 새로 구하는 과정에서 정신이 딴 데 팔려 있어서이기도 했는데요, 어찌 됐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체 지난해 매주 1편의 기고문을 정기적으로 올렸던 정진형 에디터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이번 셀프 큐레이션은 동기부여를 위해 제가 글을 쓰며 보람을 느꼈던 순간들을 되짚어 보려 합니다.
한 편의 글로 전달한 진심어린 응원
[Project 당신] 그녀는 오타쿠이자, 저의 친구이자, 예술가입니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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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저와 비슷한 분이 계실까요? 저는 친한 친구들에게 진심 어린 칭찬이나 응원을 하는 것이 어색해요. 조금 오글거린다고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제일 잘되길 바라는데도요. 아무래도 평소에 주로 일상을 나누거나 농담을 주고받는 편이다 보니 진지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 주된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은 재미있는 계기로 친구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낼 기회가 생겼습니다. 바로 [Project 당신]의 지인 인터뷰였습니다.
아트인사이트의 [Project 당신]은 에디터들이 자신을 주제로 작성한 다양한 글들을 살펴볼 수 있는 섹션입니다. 그중 ‘지인 인터뷰’는 인터뷰를 통해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에디터의 주변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동창 이기효를 소개했는데요, 2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도 종종 연락을 하며 지내는 친구입니다. 글의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당시 오타쿠와 미대 진학이라는 공통 분모를 통해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후자의 경우 진학이 졸업으로 바뀌기는 했습니다만 두 공통 분모는 여전히 유지 중입니다.
“친해지고 나서 쭉 지켜보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집요하게, 다양한 방법으로 즐기는 친구였죠.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예술가라면 무엇인가에 집요하게 몰두하는 것이 하나쯤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부때는 이 집요함을 반이라도 따라가보려고 저 나름대로 이것저것 시도해본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집요함이 여행을 가거나 어디 놀러 갈 때도 종종 느껴지고는 했습니다. 피크닉을 갔을 때 전구 소품을 가져와서 밤하늘도 더 낭만적으로 즐긴다거나, 맛집에 가면 추천하는 새로운 메뉴를 꼭 먹어본다거나 하는 모습들을 보고 주어진 순간을 열심히 즐기려는 태도도 배웠어요. 작년에 혼자 파리에 갔을 때 짧은 일정에도 집요하게 시간을 내어 센 강 근처에 앉아 크로와상을 잼에 발라 먹은 적이 있었는데, 저도 기효처럼 낭만을 즐겨보자는 생각으로 그랬던 것 같아요. 잼 냄새를 맡고 날아온 벌에게 습격당해서 결말은 안 좋았지만요.”
제가 기효를 첫 지인 인터뷰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이 친구가 세상을 즐기는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기효는 사소한 것도 그녀만의 방법과 감성으로 열심히 즐기는 친구입니다. 옆에서 지켜보다 보면 새삼 제가 많은 것을 ‘적당히만’ 경험해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는 했습니다. 위의 글은 제가 인터뷰에서 기효에 대해 묘사했던 내용을 일부 발췌한 내용인데, 이 친구가 저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잘 담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지런한 사람, 똑똑한 사람, 건강한 사람. 살다 보면 본받고 싶은 사람들이 참 많은데요, 제가 인지하지 못했던 나의 부족함을 말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일깨워준 사람은 이 친구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이 왜 저에게 보람으로 남았을까요?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친구가 종종 구글에 ‘이기효 작가’를 검색해서 이 글을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가끔 글을 보려고 ‘이기효 작가’를 검색하면 헤더의 젤다 캐릭터 케이크 사진이 상단에 뜬다면서요. 몇 번이나 검색했는지, 왜 가끔씩 다시 읽었는지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이 친구도 이 글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저도 글을 다시 읽어보니 제가 이기효 씨를 참 멋진 사람으로 소개한 것 같기도 합니다. 나아가 친구를 향한 저의 응원과 존경이 잘 닿은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이 글은 제가 약 1년 전에 작성했는데요, 올해 들어 이 친구와 드디어 10년 지기가 되었습니다. 같은 반 오타쿠가 친구로, 친구가 예술가로 나아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기분이 묘한데요, 앞으로도 서로가 어떻게 ‘진화’할지 기대가 됩니다.
첫 비공식 문화초대, “COVID-26: Bad Bias in the Body”
[Opinion] 편견과 선호 사이, 교차점에 위치한 안전지대 “Bad Bias” [공연]

아트인사이트는 약 3개월간의 수습 에디터 활동 후 연장을 원할 시 ‘컬쳐리스트’에 지원해야 합니다. 저 또한 편의상 ‘에디터’라는 호칭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컬쳐리스트’인 셈이지요. 그리고 장기 활동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지원서 양식에 적힌 약 3~4가지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합니다. 저도 런던에서 보내는 한정적인 시간에 대한 기록을 조금 더 의미 있는 플랫폼에 남기고 싶어 망설임 없이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컬쳐리스트에 지원한 계기가 마냥 순수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저는 런던에서 석사를 마치고 이곳의 문화예술과 한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데요, 이러한 지리적 요건으로 인해 에디터 활동 혜택인 문화 초대를 단 한 번도 향유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언젠가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반드시 문화 초대를 꼭 한 번은 누리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그러던 중 저에게도 비공식적으로 문화 초대를 향유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때는 지난 12월, 저의 또다른 기고문 “[Opinion] 어쩌면 첫여름은 우리의 모든 순간에 갑작스럽게 다가올지도 [영화]”에서 다뤄진 영화 “첫여름”을 봤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영화는 같은 대학원의 한국인 동문 H가 프로그래머로 참여한 한국 영화 상영회 '땅'에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마감은 다가오는데 꽂히는 것이 없었던 저에게 “첫여름”은 제법 여운이 남았어요. 영화는 노년 여성 영순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데, 당시 2025년의 마지막을 앞두고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저에게 그녀의 이야기는 ‘나다운 것’을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 리뷰가 매주 이메일로 발송되는 아트인사이트 뉴스레터 상단에도 실리게 되었고, 좋은 영화를 소개해 준 H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가볍게 글을 공유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3월, 당시 저의 글을 좋게 봐준 H가 문화기획팀 Badbias를 결성하여 선보인 첫 행사 “COVID-26: Bad Bias in the Body”의 게스트 리뷰어로 저를 초대해 주었습니다.
“COVID-26: Bad Bias in the Body”는 코로나19가 유행했을 시절 유럽에서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인들이 겪은 인종차별을 재조명하고, 이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대안을 예술로 제시한 행사였습니다. 같은 동아시아인으로서 행사의 취지 자체에도 많은 공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용, 영화, 사운드 퍼포먼스가 하나의 예술로 어우러지는 구성을 위한 기획자들의 노력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무용수 Ming의 유연한 움직임과 표정 연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저는 코로나19가 종식된 후에 유학을 시작했는데도 동양인으로서 은은한 차별을 느낄 때가 있는데요, 해외 살이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가끔은 답답함을 느끼는 이방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달래주는 무대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타지에서 공간을 찾고 아티스트를 섭외하여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과정을 이루어 낸 기획자님들께도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인종, 성별, 신체적 특징, 소속 등 개인이 속한 사회적 좌표는 어떤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층위의 기억을 형성한다. 가령 2020년 Covid-19가 전세계를 뒤덮었던 시기에 자신의 공동체가 ‘다수’에 속하는 대부분의 이들은 경제적 불안, 소통의 단절, 감염에 대한 우려를 경험했다면, 서구 사회에서 소수자성을 지닌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인들은 극심한 배척과 혐오 범죄로 인한 신변의 위협을 겪어야 했다. Covid-19는 종식되었지만 이들의 기억은 몸, 언어, 생활양식으로 남아 있다. 이렇게 남아 있는 아픔과 트라우마를 누군가는 글로, 누군가는 저항으로, 누군가는 침묵으로 대한다.”
“[Opinion] 편견과 선호 사이, 교차점에 위치한 안전지대 “Bad Bias” [공연]”의 첫 문단입니다. 공동 기획자인 J가 이번 행사의 취지와 향후 Badbias의 방향성을 정확하게 소개한 부분이라고 감상을 나눠 주기도 했습니다. 글을 작성할 당시 Badbias가 준비 단계에서 유럽에서 살고 있는 아시아인의 차별에 많은 조사를 했던 만큼 저 또한 행사를 통괄하는 내용을 담는 첫 문단에 많은 공을 들였기 때문에 굉장히 감사한 코멘트였습니다. 돌아보면 저의 글을 누군가 알아봐주고 그것이 새로운 기회로 이어진 경험도 그 자체로 의미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문화예술을 좋아하는 이들이 서로가 정성을 쏟은 부분을 알아봐준 순간 가장 큰 희열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나에게 보낸 메시지

드디어 마지막 글이네요. 이 글은 제가 지난해에 새로 시작하여 올해에도 이어가고 있는 다이어리 쓰기에 대해 성찰한 글입니다. 다이어리를 쓰게 된 계기로 시작하여 약 1년간 기록을 이어가며 느낀 다이어리의 장점을 담았어요.
“다이어리 쓰기의 또 다른 묘미는 ‘숙성’이었다. 9월쯤 이었을까. 봉사를 하러 갔던 미술관에 펜을 챙기지 않고 다이어리만 덜렁 가져온 날이 있었다. 차라리 방문객이라도 많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날따라 미술관은 너무나도 한적했다. 아쉬운 대로 지금까지 썼던 다이어리를 책 대신 읽기 시작했다. 의외로 재미있었다. 나는 3월에 벚꽃과 새로운 인연들에게서 설레었던 사람이었고, 가장 뜨겁고 낮이 길었던 6월 말에 방황과 좌절을 겪던 사람이었다. 서로가 다른 시간에 있었기 때문일까. 글쓴이와 읽는이는 같았음에도 축적된 시간이 지난 날 울고 웃었던 나를 위로하고 공감해 주고 있었다.”
다시 읽어도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입니다. 우리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편적으로 남지만 그 순간이 다채로웠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것이 작년의 저에게는 다이어리에 조각조각 적혀 있던 글들이었어요. 그래서 이 에세이를 쓸 때 당시 저에게는 ‘숙성’이 다이어리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셀프 큐레이션 글을 쓰며 어떤 형태로든 기록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잘하는 사람이었는지,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일종의 ‘세이브 포인트’같은 역할을 한다고 느꼈습니다. 글을 선정하기 위해 지난 글들을 한 편씩 훑어보니 생각보다 많은 글들이 제 기억과 달랐습니다. 어떤 글들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감상과 분석이 촘촘하게 담겨 있던 반면, 어떤 글들은 나름 멋지게 썼던 것 같은데 다시 보니 밋밋하게 끝나는 글도 있었습니다. 당시의 순간이 생각나며 웃음이 픽 나는 글들도 있었어요. ‘나’가 아닌 다른 대상을 다룬 글인데도 제 손에서 나온 글들이다 보니 1년 전의 정진형 에디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세이브 포인트’를 꾸준히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에세이 이야기로 돌아와 볼게요. 이 글은 제가 지금까지 기록해 온 것들에 대해 스스로 보람을 느낄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서 소개한 두 편의 글과 달리 이 글은 글태기를 극복할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되는 부분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꾸준함을 유지하고 싶은 일이 하나 더 있다. 조금 뻔하지만 에디터 활동이다. 지난 1월과 2월, 잠깐의 휴식기를 가졌지만 당장은 이 활동을 ‘어쩌다 보니 안 하게 된 것’으로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어느덧 글을 쓴 지 1년이 되어 간다. 오는 3월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만의 렌즈로 바라보는 활동을 다시 이어가고자 한다. 다이어리 쓰기보다는 조금 더 규칙적이어야겠지만, 나만의 꾸준함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사람이 스스로 한 말은 지켜야겠지요. 에디터 활동은 조금만 더 규칙적으로 꾸준해지기를 다시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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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저의 느슨해진 글쓰기 근육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지난 글들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세 편의 글을 소개하며 새롭게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바로 상호작용의 중요성입니다. 보람을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를 꾸준히 할 때 좋은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제게는 그것이 누군가가 제 글을 찾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친구 기효와 동문 H가 저의 글을 기억해 주었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와,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와의 기록을 매개로 이루는 상호작용입니다. 어떤 내용과 형식이든 현재의 기록은 미래의 나에게 ‘재미있는 콘텐츠’가 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타임캡슐을 열어 보듯 지난 흔적들을 다시 읽으며 느끼는 새로운 감정들은 저에게 가장 큰 동기부여를 마련했습니다. 잊고 있던 다짐을 다시 지킬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저는 아트인사이트에서 33회의 세이브 포인트를 남겼습니다. 미래의 나를 위해 계속해서 다채로운 현재를 기록해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