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하나의 사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2026년 6월 <디스클로저 데이>로 돌아왔다. 이것은 그가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파벨만스(2023)> 이후 3년 7개월의 공백을 깨고 다시 외계 생명체를 이야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나의 사건이다.


외계가 등장하는 SF 영화는 지금까지 여러 편 있었고, 모두 다른 매력이 있다. 맨 인 블랙 시리즈처럼 유쾌하게 풀어내는 영화가 있는 한편, 에이리언 시리즈처럼 크리처에 집중하여 인간과의 사투를 담은 영화가 있다. 또 하나의 장르로 <컨택트(2016)>, <이티(1982)>처럼 외계 생명체와의 교감을 드라마 장르로 그리는 영화가 있다. 유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그리는 SF 외계는 드라마적으로 영화에 담기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감독에게는 특정 장르가 단순한 필모그래피의 일부가 아니라, 평생에 걸쳐 되풀이해 온 질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스필버그를 보면서 생각한다. 그에게 외계인이 그런 존재다. 첫 영화라고 말할 수 있는 17살에 제작한 <불꽃(1964)>부터 그는 UFO에 관한 이야기를 작품에 담았다. 이후 <미지와의 조우(1977)>를 공개하고, 앞에서 언급한 <이티>를 연출하며 외계 생명체를 친구처럼 편하게 생각하는 시각을 관객에게 경험시켜주었다.


그리고 2026년 여든을 앞둔 나이에 <디스클로저 데이>로 오랜만에 다시 그가 관객과 공유하고 싶은 외계를 담은 이야기를 들고 돌아왔다. 스필버그에게 외계, 외계 생명체는 어떤 의미이기에 영화 작업의 시작부터 거장이 된 현재까지 카메라 담고자 하는 것인지 궁금해서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을 찾았다.

 

 

*

영화의 전반적인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dis.jpg

 

 

 

은폐된 진실 앞에 선 사람들


 

〈디스클로저 데이〉는 단순히 스필버그가 오랜만에 만든 SF 영화라고 소개하기에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SF 영화와 분위기가 다르고, 그가 만든 SF 영화와도 소재를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많은 사람은 이 영화를 스필버그의 비공식 외계인 3부작의 마지막을 완성하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미지와의 조우〉가 미지에 대한 경외를, 〈이티〉가 순수함이 빚은 우정을 보여주었다면, 〈디스클로저 데이〉는 은폐된 진실 앞에서 한 인간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를 묻는다.


이야기의 중심 갈등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주인공들에게는 세상에 알리고 싶은 정보가 있고, 그걸 막는 큰 조직과 대립한다. 결국 영화를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정보의 공개와 은폐를 두고 진행되는 두 집단의 갈등을 3일 간의 추격전으로 그리는 작품이다. 외계인에 관한 영화이지만, 외계인을 통해 인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에서 흥미롭다고 느낀 부분은 대중들이 흔히 음모론으로 치부해오던 외계 생명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사실로 전제한다는 것이다. 주인공과 대립하는 영화 속 정부 산하기관 워덱스(WARDEX)는 79년 동안 UAP에 관한 정보를 통제해왔다. 외계 생명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SF 영화임에도 뚜렷한 미래의 모습처럼 그려지지 않고 당장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인 것처럼 현실적이다.


외계를 이야기하면서 영화는 종교적 내용도 담고 있다. 주인공인 다니엘, 노아는 성경에 기록된 인물 이름과 같고 마거릿은 잔 다르크의 환상으로 나타난 순교자의 이름이다. 이뿐만 아니라 마거릿이 하루아침에 얻은 상대의 눈을 보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소통하는 능력이나, 배운 적 없는 언어와 외계어를 기독교적 방언처럼 하는 능력과 다니엘이 누구도 알아듣지 못하는 외계어를 홀로 통역하는 능력은 종교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존재한다.


정보를 세상에 공개하고자 하는 구성원의 수가 ‘열두 명’이라는 것도 단순한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민감할 수 있는 종교적 소재가 들어가 있지만 인상 깊었던 것은 어느 인물 하나를 우상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유독 능력이 나타나는 마거릿은 본인의 대사로 "나는 누구의 종교도 되고 싶지 않다"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며 주어진 부름에 따라 움직이는 그는 선택받은 사람일지라도, 우상이 되지 않는다.



2593_D011_00044R_CROP-scaled.jpg

 

 

 

수십 년이 쌓인 결과물


 

이야기적으로 훌륭한 영화는 오랜 세월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영화를 만들어 온 거장 감독의 연출적 놀라움 또한 지녔다. 말 그대로 ‘입이 떡’ 벌어지는 장면들을 기대해도 좋다. 영화에 대한 궁금증으로 검색해 본 사람이라면 이미 여러 채널을 통해 보고 들었을 기차 장면은 기대 이상의 사실감을 연출, 카메라, 연기를 통해 보여준다.


영화가 끝난 후 어떻게 이런 감각적, 심리적으로 큰 영화를 만들었을지 생각하며 여담을 찾아보다 보니 재밌는 정보들을 확인했다. 스필버그와 <디스클로저 데이>에서 합을 맞춘 동료들은 이미 협업한 세월이 오래 쌓인 사람들이다. 촬영 감독 ‘야누시 카민스키’는 <쉰들러 리스트(1993)>를 시작으로 스티븐 스필버그와 30년 동안 영화의 촬영 기사로 작업했다. 그는 <쉰들러 리스트>와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했다.


이번 영화에 각본으로 참여한 각본가이자 감독 ‘데이비드 켑’은 스필버그와 40년 파트너십을 자랑한다. 아이패드 메모 앱으로 적은 52페이지 초안에서 시작한 스필버그의 새로운 이야기를 보고 매료되어 2년간 함께 각본 작업을 한 협력자이다. 그리고 영화 개봉 전부터 화제였던 50년을 이어온 음악 감독 존 윌리엄스와의 30번째 작업이다.


반세기를 함께 한 존 윌리엄스와 다시 협업한 데에는 재밌는 뒷이야기가 있다. 사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그에게 영화 음악을 맡아달라고 제안했을 때 윌리엄스는 은퇴한 상태라 다른 네 명의 작곡가를 추천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윌리엄스가 직접 음악을 작곡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가 끝내 동의하며 이번 작업이 이루어졌다. 스필버그의 끈기 있는 존 윌리엄스 사랑 덕분에 영화관에서 그의 신곡들을 들을 수 있는 영예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day.jpg

 

 

 

우리가 처음 듣기 시작하는 날


 

<디스클로저 데이>를 본 후 스필버그의 꾸준하고 오래된 관심이 멋지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1964년에 〈불꽃〉을 만들며 UFO를 조사하는 과학자의 이야기를 다루며 영화업계에 진입하여, 이후 〈미지와의 조우(1977)〉, 〈이티(1982)〉, 〈쥬라기 공원(1993)〉, 〈에이 아이(2001)〉,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우주 전쟁(2005)〉, 〈레디 플레이어 원(2018)〉에 이르기까지, 그는 10년에 한 번씩 SF 세계로 돌아왔다.


다루는 과학 기술과 상상력의 방향은 매번 달랐지만 영화 안에 놓인 질문은 비슷했다. 인간은 자신이 모르는 미지를 마주했을 때 어떻게 대하는가. 두려움으로 통제하려 하는가, 아니면 듣고 이해하려 하는가. 스필버그 감독은 이번에도 스크린을 통해 하늘 너머의 존재를 보여주지만, 관객이 끝에 바라보는 것은 영화관에 앉아 있는 자신이다.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핵심 문장, “Don’t be afraid of what you don’t know”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쉽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해본다. 우리는 너무 오래 판단해왔고, 너무 빠르게 두려워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먼저 두려워하는 반응이 아니라, 들을 수 있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영화의 진짜 제목은 ‘진실이 드러나는 날’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처음 듣기 시작하는 날’에 가깝지 않을까.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