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름의 카메라』는 "첫사랑의 설렘과 아빠의 비밀이 필름 카메라 사진처럼 천천히 번져가는 퀴어 성장 무비"이다.
필름 사진들이 차례로 제시되며 영화가 시작된다. 어린 여름은 자라날수록 아빠의 카메라를 물려받게 된다. 일회용 카메라에서, 필름 카메라로…… 프레임 속에 장면을 담는 법, 시선을 담는 것을 자연히 배우며 여름은 성장한다.
그러나 아빠의 죽음 이후 여름은 사진 찍기를 그만둔다. 태산같이 무거운 가방에 아빠의 카메라를 담고 다니며. 묵직한 붉은 가방, 어린 소녀가 메기엔 너무 큰 가방 속 니콘 카메라는 ‘이제는 괜찮아진’ 여름에게 여전히 애도의 무게이다.
하지만 그 멈춤도, 첫사랑의 시작에서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한다.
여고 축구부 에이스, 소녀 주연우와 처음 만나게 되며, 조리개를 돌리고 셔터 소리에 집중하는 순간. 『여름의 카메라』는 다시금 시작된다.

1. 여름의 카메라
아빠의 공백은, 어린 소녀인 여름이 지닌 삶의 무게는 붉은 가방으로 대변된다.
작은 제 몸보다 큰 가방을 메고 다니며 여름은 부단히도 ‘아빠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여름이 사진을 찍지 않는 이유는, 그럼에도 매일 들고 다니는 이유는, 엄마가 슬퍼하니까.
엄마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약속이 많아지는 이유는 엄마가 슬퍼하니까.
사랑으로 끈끈하게 맺어진 두 모녀는 사랑하기에 서로 말하지 않는 것과, 보내지 않는 시간이 많아진다. 여름의 카메라를 보고도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첫사랑인 연우를 만나게 된다. 연우를 처음 본 순간 여름은 가슴 속에서 살아나는 ‘셔터소리’를 듣는다. 진정으로 찍고 싶은, 프레임 속 영영 담고 싶은 누군가를.
아빠의 죽음 이후 여름의 카메라가 다시금 돌아가기 시작하며, 여름은 오히려 아빠라는 인물에 더욱 한 발짝 다가가게 된다. 아빠의 카메라에 담긴 이 남자는 누구일까? 사람을 찍지 않는-여름이 남자를 찍지 않듯-아빠는 왜 이 남자를 담고 싶어 했을까? 아내도 있고, 딸도 있는 남자가 다른 남자를 사랑했었다면, 그 사랑의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그 의문은 이제 애도에서 대상에 대한 앎의 실천으로 넘어간다.
여름은 아빠라는 기억 속 존재를 재규명하며, 동시에 처음으로 알게 된, 다가가게 된 자신의 세계를 차츰 열어가고 있다.
2. 지훈의 카메라, 마루의 시선

아빠의 흔적을 따라 여름이 찾은 곳은 ‘두마루’의 미용실이다.
아빠 뻘의 남성 미용사 두마루와, 1학년 여고생 한여름 사이엔 아무 연관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아빠 ‘지훈’이 찍은, 마루의 사진을 건네는 순간 이 둘의 기묘한 연대는 시작된다.
아빠 지훈의 죽음 이후 여고생 여름에게 남은 것들, 여름의 방, 여름의 물건, 여름의 엄마, 여름의 친구. 그것에 균열을 내는 것은 ‘연우’라는 인물의 난입과 성지향성에 대한 혼란이다. 이것을 여름은 어디에도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의 묵직한 가방처럼.
여름은 굳이 멀리 떨어진 마루의 미용실에 들락거리며 제 솔직한 고민들을 이것저것 털어놓는다. 마루는 저와 지훈의 서툴렀던 시절을 지훈의 딸 여름을 통해 계속해 상기하게 된다.
첫사랑의 아릿함과, 퀴어 주체로서 고민을 겪는 여름에 대해, 마루는 이미 먼저 건너갔던across 인물로서 묵묵히 이야기를 들어준다. 성장통을 겪는 여름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에게 잔잔한 위로와 연대를 건넨다.
여름이 엄마에게 '레즈비언'임을 고백하는 것과, '아빠가 자살했냐'는 확신 어린 질문을 동시에 던진 건 왜일까?
엄마에게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고백하는 것은, 이미 일전에 마루와 부모 셋이 만났던 기억을, 어쩌면 그 셋 모두가 묻어두었을 시절을 상기시킬지도 모르니까.
이 고백에 엄마가 그저 “엄마가 미안해”라는 말만을 반복해 외는 것은 이 모든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여름에게 가해지는 이중적인 압박, 애도와 파헤침, 사랑하기에 말하고 싶지만, 사랑하기에 덮어두어야만 했던 진짜 여름을 엄마는 이제야 마주했으니까.
3. Across, 중앙선에서
퀴어(Queer)는 Across, 횡단의 의미를 담고 있다. 퀴어란 단순히 성지향적인 정의만을 내포하지 않는다. 기존 이성애 문법적인 체계에 균열을 내고, 분열을 일으키는 모든 존재를 함의한다. 영화 『여름의 카메라』는 이 ‘퀴어 청소년’ 영화에서 엄청난 전복을 시도하지 않는다. 대신 ‘여름’과 ‘첫사랑’이라는 미학적인 프레임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들의 고민과 흔들림을 담아낸다.
감독 성스러운은 이번 영화를 발표하며 "LGBTQIA+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퀴어 청소년과, 퀴어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이 모두 세계에 대한 전복을 일궈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떤 위협도 없는 세계. 상실을 겪은, 퀴어적 정체성을 지닌 이들이 서로에게 온전히 위로와 연대만을 건넬 수 있는 세계. 그것은 비단 이성애자만이 가질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니까. 영화 『여름의 카메라』가 제시하고자 하는 안온한 세계는 바로 그곳에 방점이 있다. 사랑하는 인물들에게 좋은 것만을 내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으로.
‘나는 중앙선과 같은 사람’이라는 아빠 지훈의 말을 여름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이에 대한 명확한 답 대신 영화는 도로중앙선을 걷는 여름을 보여준다.
여름은 도로 중앙선을 걷는다. 아빠의 시선을 느끼기 위해, 아빠가 겪었던 길을 가기 위해. 차체들이 좌우로 빠르게 지나치는 와중, 여름은 어느 쪽으로도 갈 수 없다. 빛보다 빨리 가면 시간이 멈출 수도 있지 않냐, 는 친구의 맹랑한 이야기에 여름이 가볍게 웃어 보였듯, 걸음은 느리다. 시간이 멈출 정도로 빨리 나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멈춤 대신 나아가보는 것이다. 앞으로 길은 죽 이어져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