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트로폴리스>는 국립극단에서 기획한 5부작 시리즈로, <디오니소스>는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그 첫 번째 시작을 알리는 공연이다. 공연은 특별한 전조 없이 시작해서 ‘스르르’ 끝난다. 한참 동안 대사 없이 행동으로만 보여주다가 은근하게 1부의 전개를 시작하고, 2부 역시 아무런 전조 없이 팬티만 입은 디오니소스가 커튼 앞으로 등장해서 말하기 시작하며, 마무리도 어수선하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말하고 스태프들은 무대를 치우기 시작해서 연기를 하다가도 비켜줘야 하는 모습도 보인다. 덕분에 일상과 연극의 경계가 흐려지고, 극장을 나가서도 공연이 이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당연하게도, 이 연극은 다름이 아닌 우리 시대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디오니소스는 다소 우스워 보이는 ‘이방인’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커튼도 걷히기 전에 무대 앞으로 나온 그는 커튼을 깔끔하게 열지 못하고 파묻히며 “시작됩니다.”를 외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여러 번 이야기하는 등 (의도적인) 어리숙함으로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그렇게 들어선 테베는, “어서오세요. 이빨의 도시, 테베”라고 적힌 어딘가 촌스러운 타이포그래피의 포스터가 눈에 띈다. 진중한 톤에 비해 촌스럽고 유치한 디자인 역시 웃기지만, 다름 아닌 이것이 바로 광기의 도시 테베에 마침내 관객들이 입성하게 된 순간이다.
판테우스는 자신의 세계에 혼란을 가져오는 듯한 낯선 이방인 디오니소스를 배척하고 혐오한다. 결국 판테우스가 바카이들과 디오니소스를 잡아들이고 신과 싸우겠다고 선언하는데, 뉴스 속보로 자막으로 판테우스가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소식이 보인다. 판테우스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동의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잡아들이고 탄압하며 싸움을 선포한 것이다. 이는 노골적으로 지난 계엄 사태를 연상시키려고 의도한 듯하다. 민주주의에서 자신과 다른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 없이 극단적인 제도 사용으로 억압하려는 모습이 지난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바카이 무리가 숲속에 잠들어있다가 남자들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일어나 쫓아가 죽이려 들고, 그 남자들이 도망쳐 돌아와 그 이야기를 펜테우스에게 전하려 하지만 주저한다. 판테우스는 “나는 전령에게 화내지 않는다!”라고 말하면서도 화를 내는 이중적인 모습이다. 그때에 뒤에 서있는 여자들이 “권력자에게 두려워하지 않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노래한다. 우리는 군중 속에서 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숨지 않고 나설 수 있는가. 굉장히 시의성이 있는 대사라는 생각이 든다.
광기의 서막은 그렇게 서서히 시작된다. 자신의 승리를 위해 판테우스는 디오니소스를 추종하는 바카이 무리에게 접근하려고 한다. 그러나 '신'인 디오니소스에게 홀린 그는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여장을 하고 디오니소스 지팡이를 든다.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바카이 무리에 접근한다. 그러나 디오니소스는 판테우스를 위해 방법을 알려준 것이 아니라 잔혹한 복수를 계획한 것이었다. 이후 바카이들은, 나무 위에 숨어 몰래 이들을 지켜보던 자를 잔혹하게 죽인다. 학살 장면은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고 영상을 통해 졸라맨 그림으로 설명된다. 비전문적이고 어설픈 그림 실력에 웃음이 나다가도, 그것이 학살을 설명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기괴하고 섬뜩한 감각이 배가 되어 돌아온다.
한편 아가우에는 판테우스의 어머니지만,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며 바카이에 들어간 인물이다. 그녀는 디오니소스의 계략으로 광기에 사로잡힌 채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 채로 학살을 행한다. 이 연극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피를 의미하는 붉은색 페인트를 아가우에가 차례차례 뒤집어쓰며 살육의 모습이 연출된다. 아가우에는 자신이 맨손으로 사자를 잡았다며 자랑스러워하지만, 사실 그것은 아들 펜테우스를 죽여 막대기에 꿴 것이었다. 테베에 들어와서 카드모스로부터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듣고 나서야 그녀는 현실을 자각하며 충격과 괴로움에 사로잡혀 몸부림친다.
공연은 천장을 포함해 여러 곳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특히 천장에서 피웅덩이가 된 바닥을 실시간으로 비추고 있는 카메라가 인상적이다. 모니터의 화면은 계속 흑백이었지만, 살육 이후론 컬러로 전환된다. 그 '대비'가 학살의 전과 후는 결코 같을 수 없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살육 이후 캐리어에 담긴 시체 조각을 모아 인간의 형체로 다시 조립해 보고 흰 천으로 덮는 것과 아가우에가 이성을 되찾고 괴로워할 때까지도 바카이들은 비닐 밖 양쪽에 서서 그녀를 비웃고 있다는 사실이 상황의 잔혹성과 폭력성을 극대화한다.
일련의 사태를 두고 카드모스는 “이렇게까지 잔혹할 필요가 있으셨습니까! (이것은) 신의 분노가 아닌 인간의 맹목적인 진노입니다”라고 호소한다. 이는 드라마터그 말 중에 “펜테우스랑 디오니소스가 그렇게까지 서로를 미워해야 했을까? 혐오가 극단으로 치닫는 동시대의 상황과 겹쳐 보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라는 말과 연결된다. 디오니소스는 다른 신들과는 다소 다르다.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그의 어머니의 말을 많은 이들이 믿어주지 않았고, 그는 유일하게 스스로 반인반신의 불완전한 존재에서 신이 되기를 택했다.
따라서 디오니소스는 스스로 존재의 불신에 대한 결핍이 있고, 위대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구가 컸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신임을 믿지 않았던 테베의 펜테우스와 아가우에게 한 복수는 ‘지나칠 정도로’ 잔혹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수준을 한참 넘어선 수준이다. 카드모스의 울음 섞인 원망에 디오니소스는 “해야만 하는 복수였다, 제우스가 승인한 복수다.”라고 말하지만, 진정한 정의라기보단 ‘자기만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자기만족에 가깝다는 점은 비판받을 만하다.
그는 자신이 신으로 인정받지 못하자 기만당했다는 명목으로 잔인했고, 그러한 모습이 자신과 다른 사상(혹은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척하는 펜테우스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둘의 다툼은 분명 치열하지만, 건강한 토론의 모습은 아니다. 자신의 정의를 밀어붙이며 상대를 패배시키기 위해 애쓰는 비민주적이고 바보 같은 모습을, 연출은 쏟아지는 유치한 내용의 텍스트를 키치한(혹은 유치한) 디자인의 타이포그래피로 디자인해 보여준다. 그리고 막이 내린 뒤, 충격적인 사태에도 마지막에 헤드셋으로 무언가를 들으며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자가 계속 앉아 있는 모습도 놀랍다.
정리하자면 안트로폴리스1부작은 인간의 오만한 불신과 반인반신 혈통의 인물 간의 혐오가 이루어낸, 아주 현대적인 비극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아트로폴리스I>은 현대 시대에 자신의 목소리만 키울 뿐 진정한 대화가 결여된 무조건적 불신과 적대, 그리고 그보다 더한 무관심의 총합이 사회에 비극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돌이킬 수 없기 전에 우리는 서로 듣고 대화에 참여해야만 한다. 정치적, 사회적 불신과 대립이 극에 달하는 요즘, 다시 연극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