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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걷는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만날 때면 어쩐지 조금은 힘이 빠진다. 이유가 무엇일까. '걷기'라는 행위가 모두에게 휴식의 일환으로 다가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취향의 문제일 수 있고, 비효율적인 이동 방식일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내게있어 걷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은 아니다.

 

몸의 전체적인 균형을 사용해 걸음을 내디디며 고여 있던 협소함을 흘려보내는 정화의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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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회하며 직진하기


 

걷는 행위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머리가 움직이는 몸과 상반되어 느슨해진다. 내적인 언어가 느릿하고 미적지근해진다. 우회하며 직진한다.

 

이러한 행위는 시내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일과도 비슷하다. 지하철을 타는 것보다 버스 타기를 더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이 주는 느림의 미학에는 '보내줌'의 무엇이 담겨있다.  바람이 눈을 시리고, 간판과 건물, 사람과 표정이 지나간다. 그렇게라도 모니터에서 벗어나 세상을 관찰한다. 빠르게 지나치는 동네의 특징을 좇는다.

 

걷기와 버스 타기는 모두 공통의 미학을 지닌다. '멍때리기'인데, 내버려둔다는 것에서 그렇다.

 

 

 

발견하기


 

다른 의미에서, 걷는 것은 장소를 읽는 방식이기도 하다.

 

지도 속의 단순 평평한 거리에서 눈을 떼 실재하는 길 위에 섰을 때의 경사와 냄새, 소음과 어둠이 제각기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곳은 품고, 어떤 곳은 비워졌다. 그런 점이 다르다.

 

 

 

비효율이 주는 시차를 산출하기


 

이런 미학을 알다 보니 걷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만날 때 느끼는 몽롱함이 단순히 취향 차이만은 아닌 것 같다고 인지하게 되었다.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과는 세계를 마주하는 속도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는 생각. 우연을 받아들이는 게 익숙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비효율이 산출하는 시차의 '좋은 순간'을 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거다.

 

편의점 앞 자그마한 공간에 모여 장기 두는 어르신과의 덧없는 대화도 그렇고 독특한 의자를 발견해 관찰하는 것도 그렇고 한참 바라보게 되는 무엇들이 그렇다.

 

버스를 탈 때 병적으로 창문을 열어 버릇 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바깥의 공기가 안으로 들어올 때 이동은 실제적인 것이 된다. 밀폐된 상태에 머물기 싫어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걷기'와 '창문 열고 버스 타기'는 외부와 내부 모두를 취득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흘러가기


 

그러니까 돌고 돌아서 하고 싶은 말은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좋다는 거다. 그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 좋다. (약속된 일정을 제외하고는) 늦어져도 아무렴 괜찮다고 말해버릴 수 있고 마주한 풍경을 생경하게 볼 수 있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만큼이나 가는 동안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좋다는 거겠지.

 

나 역시 그런 행위를 지속하려고 노력한다. 세상을 겪어내는 가치관이 맞는다고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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