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면 시간을 멈출 수 있다는 말. 혹은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말. 그건 결국 사진을 찍는(shoot) 행위와 연결되지 않는가.
필름 카메라를 들고 조심스레 와인딩 레버를 민 후 조리개를 조절하며 셔터를 누르는 순간, 뷰파인더를 통해 봤던 장면은 그대로 필름 속에 고정된다. 빛을 붙잡을 속도로 그때의 시간, 풍경, 움직임, 모든 것을 포착한 채.
이를 인상해 한 장의 사진으로 보는 행위는 곧 그 장면을 살피는 것, 혹은 되새기는 것. 아빠를 따라 몇 번이고 해왔던 그런 마법 같은 수행을 여름은 잠시 관뒀었다. 눈앞에 연우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발밑에 떨어진 축구공 마냥, 툭 하고 자신의 첫사랑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내 그는 홀린 듯이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이제는 유품이 된 카메라를 들고 자신만의 셔터 소리에 집중하면서. 그것이 이끄는 느린 이해와 깨달음을 따라.
여름이 망설임 없이 사랑에 빠지고, 망설임 없이 고백하고, 망설임 없이 사귀는 동안 계속해서 동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모든 과정이 너무 쉽고, 너무 수월해서. 또는 그런 순수하고 직관적인 표현들과는 다소 낯설어진 지 오래여서. 학생이었던 시절을 어느새 훌쩍 지나버린, 녹록지 않은 현실을 꽤 겪어버린 자의 삐뚤어진 반응이었을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국내 청소년 퀴어 영화도 이만큼 왔구나.
빠르게 인정하고 빠르게 인정받는 성정체성의 확립이, 좋아하는 상대와 간질간질하게 이어진 후 겪게 되는 현실적인 고민이, 다뤄지기 시작하는구나. 훨씬 더 많은 퀴어 서사가 필요한 가운데, 이렇게 덜 우울하고 덜 지난한 논의를 볼 수 있다는 건, 또 그것대로 좋은 일이다.
나는 중앙선과 같은 사람이라는 말. 그런 구도의 풍경과 이야기를 찍어 온 아빠 한지훈에게 여름은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고등학교 시절에는 동성의 연인을 찍었고, 부모가 되고 나서는 자기 가족을 찍었던, 어떤 남성의 심경. 가끔은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꽂힌 사진 작업에 매진하던 한 사람이 도로 중앙선에서 사진을 찍다 마지막을 맞이할 때, 그 순간 들었던 심경.
스스로 택하고 받아들였던 그 과정들을 여름이 다 알 수는 없었을 거다. 그러나 의뭉스럽기만 하던 아빠의 선택을 직접 마주하고 나서야,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의 옛 연인인 마루를 찾아가고, 그가 서 있었던 그곳에서 그가 보던 것들을 바라봤을 때, 조금이나마 아빠에 대한 진실을 알아갈 수 있었을 테니.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자신만의 이해를 매듭짓고 또 다음으로 넘어가는 거다.
여름은 카메라를 다시 든 후부터 오롯한 자신을 다시 찾아간다. 아빠의 죽음을 슬퍼하는 엄마였기에 궁금한 것을 삼켰고, 첫눈에 반해 버린 연애 상대이기에 나를 맞췄으나, 그 후에 찾아온 갈증과 공허함을 느끼며 깨달았을 것이다. 상대와의 관계 속에 불편함을 회피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 그래서 마루 미용실까지 가는 기나긴 길목 속 터널을 몇 번이고 통과할 때마다, 여름은 조금씩 성장한다.
학교를 아예 안 가버리는 방식의 도피보다, 눈에 띄지 않더라도 나만의 분명한 반항의 증표를 갖춘 채 당당히 등교하는 방식으로. "엄마, 나 레즈비언이야. 아빠는 자살한 거야?"라며 질문을 던지고, 헤어진 여자 친구의 얼굴을 자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장소에서 사진으로 기록하는 방식으로.
여름의 '빛나는' 시기만큼이나 빛났을 지훈과 마루의 이야기. 여느 때와 다름없던 숲속 출사에서 물끄러미 바라봤던 아빠의 뒷모습을 몇 번이고 기억하는 딸.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연을 숨기고, 또 얼마나 많은 사정을 감춘 채 살아가고 있을까.
초여름의 빛깔을 담은 영상들과 중간중간 보이던 정적인 구도들이 그 사실에 생명력과 무게감을 더한다.
그리고 조용히, 또 다른 여름 속 이야기들을 기다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