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애매하게 남을 때는 보통 서점을 찾는다. 우연 속에 보석 같은 귀인을 만나듯, 책에도 인연처럼 느껴지는 이끌림이 있다. 재작년 이맘때 처음으로 ‘생일책’을 알게 됐다. 생일책이란 자신과 생일이 같은 작가의 책 혹은 그날 출판된 책이다. 드물게 생일이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책도 있다. 진지하게 여기기엔 사소하고, 아무렇게나 흘려 보내긴 묘한 소재다.

7월 2일, 평년의 정중앙에서 헤세와 만났다.
헤세는 1877년 7월 2일, 독일 남부 뷔르템베르크주 칼프에서 태어났다. 선교사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시인이 되겠다는 의지 하나로 수도원 학교를 뛰쳐나왔으며, 자살 기도 끝에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굴곡사를 건넜다. 그런 헤세가 이윽고 문학으로 돌아와 남긴 작품은 오늘날의 고전이 되었다. 21세기 서울 강남 일원동에서도 같은 달 같은 날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그 사이에는 100년이 넘는 세월이 있고, 대륙과 언어와 시대가 다르다. 그저 생일이 같을 뿐이다.
재밌는 우연에 불과하다. 많은 작가 중에 헤세를 애정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10대 때 읽었던 『데미안』은 20대에 또 다른 감상을 주었고, 같은 문장도 다른 무게로 내려앉았다. 얕은 기대감과 생일이란 우연 덕에 올해도 『싯다르타』를 열었다.
『싯다르타』는 1922년 발표된 헤세의 중편소설이다. 부처와 동명인 이름이지만, 책 속에서는 인도 최고 카스트인 브라만의 아들 ‘싯다르타’란 고유한 인물의 이름이다. 그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하고, 부처의 가르침조차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의미 없다며 홀로 여정을 떠난다. 세속에 뛰어들어 사랑하는 여인 카밀라를 만나고, 상인 카마스와미 밑에서 부를 누리다 속세의 끝을 보고 다시 떠난다. 마지막으로 뱃사공 바주데바 곁에 머물며 삶의 이치를 깨닫는다. 얼핏 보면 한 인간의 구도(求道) 여정이지만, 오히려 기억에 남는 것은 그 여정 위의 사람들이다.
바주데바가 자기에게 하였던 말 가운데 자기 스스로가 이미 생각하여 보지 않았거나 알지 못하였던 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가 실천으로 옮길 수 없는 그런 앎에 불과하였다. - p.175
깨달음이 곧 삶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삶이다. 싯다르타는 단식할 줄 알고, 사색할 줄 알고, 기다릴 줄 안다. 어떤 면에서 그는 ‘너무’ 능숙하다. 그런 그가 한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고통스러워하고, 바보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한 인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한 인간을 사랑하고, 어떤 사람에 빠져 버리고, 어떤 사랑 때문에 바보가 되어 버리는 그런 어린애 같은 인간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 p.176
깨달음을 좇아 세상에 나온 사람이 사랑에 빠진다. 누구보다 성숙했던 사람이 어린아이처럼 무너진다. 싯다르타의 철학은 그저 모래처럼 흩어질 때도 많았지만, 그의 무너짐은 오래 남는다. 많은 것을 알고, 깨달아도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괴로운 법이다. 그러나 그 고통의 연속 속에서도 단비 같은 기쁨은 분명히 내린다. 아이는 어른을 선망하고, 어른은 아이였던 때를 그리워한다. 살아보고는 알 수 없는 게 삶이다.
누구나 서로 주고받는 것, 인생이란 그런 것이지요. - p.96
책을 덮으며 생각한다. 이 소설의 제목은 『싯다르타』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고빈다이고, 사문이고, 고타마이고, 카밀라이고, 바주데바이고, 어린 싯다르타다. 완벽한 승자란 없는 가위바위보 같은 인생에서 살아남으려면 적어도 셋은 필요하다. 혼자 깨닫고 혼자 완성되는 삶이란 없다.
생일이란 사소하고도 묘한 선물이다. 이를 핑계 삼아 책 한 번 더 펼쳐 볼 수 있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