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란 무엇일까. 서로를 죽고 죽이는 스펙터클한 이야기? 아니면 기구한 사연으로 절로 눈물을 훔치게 만드는 이야기? 콘텐츠 전성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눈길을 끄는 이야기는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때로는 작위적이지 않은 진솔하고 담백한 이야기가 가장 묵직한 울림을 남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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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김하진 작, 김혜성 작곡, 오경택 연출)은 글을 배울 수 없었던 이들이 '시'라는 새로운 소통 창구를 만나 인생을 꽃피우는 과정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글도 모르는 우리가 무슨 시를 쓰겠냐고 망설이던 그들은 어느새 자신의 삶 속에 숨어 있는 시 같은 순간들을 길어 올리며 스스로의 인생을 다시 조명하기에 이른다.

 

 

 

詩作하는 인생


 

시사 고발 다큐멘터리 전문 PD '석구'는 라디오를 통해 할머니들의 사연을 접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기 위해 팔복 문해학교로 향한다. 문해학교의 선생님 '가을'은 예산 삭감으로 수업이 폐지될 위기에 처해 있다. 가을은 다큐멘터리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예산 삭감을 막고, 할머니들이 끝까지 학교에 다니게 하고 싶은 마음에 석구의 작업이 몹시 간절하다.

 

그러나 석구는 생각만큼 긍정적이지는 않을 거라며 선을 긋는다. 방송을 찍는다고 해서 얼마나 관심을 받을지도 모를뿐더러, 예산 삭감을 되돌리기에는 큰 영향력을 끼치지도 못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가을은 물러서지 않는다. "늙으면 죽어야 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면서도 꼬박꼬박 학교에 나와 열정적으로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번 다큐멘터리를 세상에 알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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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석구는 작업을 시작하고, 카메라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가을은 할머니들에게 '시'를 써보자고 제안한다. 처음에는 글도 모르는 우리가 무슨 시냐며, "시는 아무나 쓰냐"고 손사래 치던 할머니들은 이내 시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님을, 자신의 삶을 가만히 돌이켜 보면 곳곳에 시 같은 순간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인생도 시가 될 수 있을까


 

자신만의 '시'를 찾아가는 할머니들을 보며 거듭 들었던 생각이다. 우리의 인생도 시가 될 수 있을까. 나의 삶을 조각내어 하나씩 살피다 보면 분명 '시적인' 순간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시는, 그들의 인생은 곧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한 편의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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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무대와 영상, 소설과 시를 넘나들며 참 많은 이야기를 접해 왔다. 그러다가 발견한 한 가지 흐름은, '사이다' 전개를 원하는 대중의 입맛에 맞춰 콘텐츠가 자극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 역시 그런 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스펙터클이 있고, 분초마다 심장을 조이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솔직담백한 삶을 담은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달랐다. 그저 네 명의 할머니가 각자 살아온 인생을 툭툭 풀어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이야기가 되고 시가 되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다는 점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러니까 우리의 인생도 시가 될 수 있다. 할머니들의 삶도, 나의 삶도 모두 시가 될 수 있다. 시는 우리 주변 천지삐까리에 널려 있다. 인생 팔십 줄에 다다른 할머니들의 삶은, 그 자체로 이미 두꺼운 책 한 권이다.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각 인물들이 삶 속에서 '시' 한 편씩을 찾아내는 구조로 전개된다. 네 사람이 각자의 시를 발견해 읊고 나면, 학교에 다니며 그토록 원했던 '소풍'을 비로소 떠날 수 있게 된다. 손주에게 직접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이 소원인 문해학교 반장 '영란', 가수를 꿈꿨지만 글을 몰라 노래자랑 지원서조차 쓰지 못했던 '춘심', 첫사랑의 애틋한 추억을 간직한 '인순', 그리고 '분하다'라는 뜻을 지닌 이름과 달리 긍정적인 막내 '분한'. 이 네 사람은 가을 선생님과 다큐멘터리 PD 석구의 도움을 받아 마침내 자신만의 시 한 편을 창작해 낸다.

 

언젠가 내 삶을 스쳐 지나간 것처럼 친근한 인물들의 이야기에 차분히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이 유쾌하면서도 뭉클한 서사에 푹 빠져들게 된다. 팔복 문해학교의 가시나들은 도전에 있어 늦은 때란 없다는 용감한 메시지와 함께, 지금이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라고 소리 높여 외친다.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할머니들의 진솔한 노래를 빌려 따뜻한 용기와 희망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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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을 관람하며 인상 깊었던 또 다른 부분은 바로 객석의 분위기였다. 보통은 무대에 집중하지만, 때로는 관객들이 이 공연을 어떤 마음으로 보고 있는지 궁금해 주위를 살피곤 한다. 객석의 사람들은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마음을 다해 호응했고, 조용히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야기의 상승과 하강에 따라 함께 달아오르고 또 차분히 가라앉는 관객들과 호흡하며 극을 관람하니 그 감동은 더 커졌다.


특히 가족 단위 관객이 많았다는 점도 기억에 남는다. 일상의 환기를 위해 가족과 함께 극장을 찾은 이들이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한 이야기를 나누며 온기를 채워가는 모습은 이 공연의 또 다른 명장면이었다. 홀로 극을 관람하던 내게도, 곁에 앉은 가족 관객들의 눈에도 화려한 기교 없이 묵직하게 다가오는 서사의 힘은 대단했다.

 

 

 

함께 완성하는 한 편의 시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주말 공연에서 만날 수 있는 '싱어롱 커튼콜 데이'였다. 막이 내리고, 객석의 불이 꺼지자 관객들은 사전에 배부된 '팔복리 응원봉'을 꺼내 들었다. 캄캄한 극장 안을 수놓은 노랗고 빨간 작은 별빛들은 뮤지컬의 마지막 장면을 연출하며 관객들 역시 극 안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였다.

 

이어 무대 위 배우들의 선창에 맞춰 관객 모두가 한마음으로 응원봉을 흔들며 넘버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관람한 회차에서는 '우리는 가시나(rep)' 넘버를 불렀는데, 극장 안을 가득 채우는 멜로디를 다른 관객들과 함께 즐기니 극을 보며 느낀 감동과는 또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서툴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 울고 웃던 관객들은 이제 극의 일부가 되어 목소리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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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극을 보면서 부모님과 함께 오지 않은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싱어롱 이벤트까지 즐기다 보니 다음번에는 꼭 부모님과 함께 관람을 해야겠다는 결심도 섰다. 단순히 자리에 앉아 공연을 관람하고 박수를 치는 것을 넘어, 이렇게 함께 노래한다는 감각을 나누는 순간이야말로 극장 안의 모든 사람이 완성해 낸 또 한 편의 아름다운 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동 속에 막을 내린 후에도, 극장에서 느꼈던 그 따뜻한 온기는 꽤 오래도록 내 곁에 머물렀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이 담백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의 삶에 가닿아 작고 따뜻한 위로의 시 한 편으로 남기를 바란다.

 

 

사진 출처 = 라이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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