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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우리는 서로를 이야기로 이해하지, 연극 '또 여기인가'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

by 김나윤 에디터
2026.06.15 14:42

 

 

주유소는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잠시 경유하는 곳이다. 기름을 채우면 그곳을 떠나 목적지로 향한다. 연극 <또 여기인가>의 공간적 배경이 ‘주유소’인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이곳이 아닌 삶, 지금의 내가 아닌 삶으로 나아가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경유지에서 뱅뱅 돌기만 하는 인물들. 남들에게는 경유지인 곳이 내게는 평생의 출발지이자 목적지인 것 같다는 아득한 감각. 그것이 연극 <또 여기인가>가 그려내는 인간 삶의 모습이다.

   

사카모토 유지의 동명 희곡을 무대화한 연극 <또 여기인가>는 도쿄 인근의 주유소 사무실로 무대를 꾸렸다. 이곳에서 주유소 점장 지카스기, 아르바이트생 다카라이, 지카스기의 이복형이자 소설가인 네모리, 간호사 시메노 네 사람의 시답지 않은 대화가 이어진다. 무언가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것 같다가도, 금방 어긋나 버리는 이상한 대화의 리듬은 물음표와 함께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 능청스러운 대화들은 쌓이고 쌓여 '지카스기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것인가’라는 의문으로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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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지카스기가 아버지를 죽였느냐 죽이지 않았느냐 하는 진실 공방에는 큰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왜?'이다. 이 의문을 끌고 가면서 작품은 살인과 이야기를 연관 짓는다. 지카스기는 2년 반 동안 아버지를 간병해 오다가 어느 날 아버지를 죽였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 있다. 지카스기의 살인을 두고 네모리는 정신이상자의 충동이라고 하고, 시메노는 ‘남들은 3개월도 못 버티는 간병을 해 온 아들'이라며 서사를 부여한다. 네모리의 시선으로 보면 충동을 참지 못한 사이코패스의 반인륜적 범죄이지만, 시메노 시선으로 보면 간병의 고통이 만든 비극이다.


연극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지카스기와 네모리가 거울 관계로 대응하면서 살인과 이야기의 관계는 더욱 깊이 있게 다뤄진다. 지카스기가 ‘서사화되는 살인’을 보여 준다면, 네모리는 반대로 ‘살인을 만드는 서사’를 보여 준다. 한 학생은 네모리의 소설을 읽고 그 소설 속 인물과 같은 방식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에 네모리는 그것은 개인의 문제였다고, 언제든 그럴 수 있는 아이였을 거라고 이야기하며 대중의 공분을 산 적이 있다.

 

작품은 살인에 서사를 부여해도 되는지, 또는 서사 때문에 살인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결론을 쉽게 내리지 않는다. 이야기는 어떤 죽음을 설명하고 어떤 죽음은 이야기 이후에 일어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타인의 진실에 완벽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극은 그 모호한 지점에 형제를 세워 둔다. 꾀죄죄한 수건으로 상징되는 지카스기의 간병 서사는 분명 처절한 데가 있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다카라이의 팔을 갑자기 꺾어버리는 인간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의 소설을 읽고 죽은 학생에게 어떤 서사도 부여하지 않으려던 네모리는 지카스기를 통해 그 학생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한다.

 

 

#또여기인가큰 응원과 관심 속에 공연 잘 마쳤습니다.불편한 객석에서 2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울고 웃어주셔서 감사합니다.얼른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벌써!!)감.jpg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타인을 완벽하게 서사화할 수 있는가. 그제야 우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작품은 형제의 이야기를 통해 묵직한 질문을 건넨다. 지카스기가 아버지의 산소호흡기에 매듭을 지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를 오랜 간병으로 삶의 에너지를 다 써 버린 아들로 바라보게 되면, 그 살인은 또 다른 층위에서 이해되기 마련이다. “이야기는 이성과 논리의 층위에서 작동하기보다는 마음에서 먼저 작동하기(박인성, 《마스터플롯》, p.9)" 때문이다. 연극은 그 어쩔 수 없는 마음의 작동을 따라가게 하다가도, 이성과 논리의 층위로 다시 브레이크를 걸며 지카스기라는 인물을 오래 지켜보도록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지카스기의 조력자인 시메노의 ‘이야기’가 잘 보이지 않는 점은 아쉽다. 시메노는 지카스기의 살인에 조력하고, 그를 ‘정상적으로’ 살게 하는 데 헌신한다. 하지만 그러한 시메노의 행보가 쉽게 납득되지는 않는다. 지카스기에게 관심이 과한 시메노와 팔이 무자비하게 꺾여도 별 감정이 없어 보이는 다카라이 역시 짝을 이루고 있다. 작품 구조상 이들의 과거까지 다룰 필요는 없지만, 시메노를 보면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는 갸웃거림이 따라온다. 짤막한 대사로 그의 전사를 짐작해 볼 수는 있지만, 이는 엄연한 상상의 영역이다.


삶을 포기하려는 지카스기에게 네모리는 그런 충동이 들 때마다 소설을 써 보라고 권한다. 이 대목부터 이야기는 타인을 이해하는 수단이면서, 자신의 마음을 해명하는 방법이 된다. 연극의 마지막 시퀀스는 지카스기가 쓴 소설을 구현한다. 이는 ‘그랬으면 좋았을걸’이라는 소망을 담은 이야기이다. 연극의 첫 장면과 똑같은 상황이 마지막 장면에서도 펼쳐진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네모리가 지카스기를 찾아오고, 이제부터 함께 아버지를 돌보겠다고 말한다. 카페 직원으로 일하는 시메노는 지카스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고, 다카라이는 여전히 무심하지만 지카스기의 신경을 거스를 만한 행동을 교정한다.


이러한 ‘IF’의 문법은 어디선가 많이 봐 온 것이다. 그런데 이 ‘IF 이야기’의 배경이 주유소라는 점에서 마지막 시퀀스의 아이러니는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나는 내가 여기서 쫌만 더 괜찮아지길 바랬던 거지, 걔가 되길 원한 건 아니었어요."라는 드라마 <또 오해영>의 대사처럼, 지카스기가 바라는 것은 "쫌만 더 괜찮"은 삶이었다. 다른 곳에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내가 아닌, 지금 여기서 조금 더 나은 삶을 상상하는 마음. 주유소를 벗어나 휴양지로 떠나지는 못할지라도, 지금의 자리에서 한 발쯤 벗어나고 싶은 바람. 지카스기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끝내 알 수 없지만, 그가 쓴 이야기는 그를 감히 짐작해 보게 만든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 정도의 일인지도 모른다.

 

 

사진: 프로젝트내친김에 인스타그램

참고: 박인성, 《마스터플롯》, 나비클럽,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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