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지금 당장에도 나는 손쉽게 파리의 풍경을 상상할 수 있다. 흐르는 센 강 위로 빛나는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에서 넘쳐 흐르는 예술의 향기. 나에게 파리는 낭만과 투쟁이 서로 얽혀 만들어진 문화 예술의 도시다.
그래서 파리를 찾는 모든 이들은 파리가 담고 있는 예술의 영혼을 직접 느끼고자 수많은 문화 공간을 찾는다.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는 그중에서도 단연 손꼽히는 예술 관광지다. 매일 전 세계에서 수만명이 오직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파리라는 도시를 찾는다.
그러나 파리가 담고 있는 예술의 영혼은 이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도시였던 만큼, 파리의 골목 곳곳에는 저명한 예술가들의 공간이 숨어있다.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쉽사리 상상하기 힘든 신비의 공간들, ‘파리의 작은 미술관’은 그 중에서도 7곳의 작은 미술관을 소개하고 있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부터 작가가 직접 걸으며 느낀 파리 골목의 정취가 종이 너머로 느껴진다.
작은 미술관이라고는 하지만, 미술관 앞에 붙은 이름들은 놀랍도록 익숙한 이름들이다. 들라크루아, 모네, 로댕부터 귀스타브 모로, 피카소라는 거장의 이름을 거쳐 빌라 사부아를 지은 르코르뷔지에까지. 낭만주의와 인상주의를 아우르는 그야말로 미술관 종합 선물 세트같은 코스가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직접 이 거리를 누빈 작가는 각각의 공간과 공간에 녹아든 미술품, 그리고 작가에 대한 에피소드를 천천히 풀어내며 독자를 파리의 작은 미술관으로 인도한다. 그 발걸음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감각은 첫번째 목적지인 퓌르스탕베르 광장에 도착해 있다.
1857년 12월 28일
오늘 갑자기 이사했다.
내 거처는 정말 매력적이다. 저녁 식사 후, 다른 장소로 왔다는 사실에 약간 우울하기도 했지만 곧 조금씩 평정을 되찾고 기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창문 너머의 집들 위로 찬란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보면서 잠에서 깼다. 작은 정원의 전경과 웃음 짓는 작업실이 기분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 시선은 순식간에 들라크루아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파리로 이사한 직후 솔직한 심경을 담아낸 들라크루아의 일기와 함께 그의 그림을 보니 일면도 없는 공간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러고 나니 작품이라는 나무가 집이라는 숲과 함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공간 속에 어우러진 작품은 그 조화 자체로 예술이 되어 색다른 영감을 전달한다.
사소하지만 예리하게 의식의 흐름을 틀어버리는 이 접근은 이해하기 어렵게만 느껴졌던 거장의 세계를 하나씩 풀어내 우리의 눈높이로 끌어내린다. 그렇게 들라크루아는 옆집에 이사 온 그림 잘 그리는 아저씨가 되고, 귀스타브 모로는 집을 미술관으로 만들어 버린 4차원 재벌 미술광이 된다.
이와 비슷한 맥락과 흐름으로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중요한 건 그림 속의 디테일이 아니라 그림을 보는 시선과 환경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그림은 결국 공간에 담긴 서사와 작가의 일생에서 탄생한다. 그렇기에 미술관이란 이름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들라크루아 미술관을 거쳐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을 지나 몽마르트르 미술관, 자코메티 미술관까지. 화려한 조명이 아니라 은은한 햇살 속에서 따듯하게 빛나고 있는 작품들을 보면 예술이 녹아든 삶이란 어떤 삶일지 저절로 알게 된다. 작가의 일생이 존재했던 공간 속에서 마주하는 작품은 그 속에서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다만 건물 그 자체로 작품이 되는 르코르뷔지에의 라 로슈 저택과 빌라 사부아는 길거리에서도 독보적인 아우라를 뽐낸다. 독특한 기하학적 미를 바탕으로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철학을 살펴볼 수 있는 이 두 건물은 현대 건축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직접 관찰하고 싶을 명소다. 파란 하늘과 녹음이 만연한 잔디 사이에서 무엇이 아름답지 않겠느냐만, 그 사이를 가득 채우는 빌라 사부아의 흰 빛은 깔끔한 조화를 이루어 낸다. 사진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지는 순간이다.
이렇게 파리의 골목마다 녹아있는 예술과 거장의 흔적을 보니 그 이름이 더욱 낭만적으로 들려온다. 더불어 화려하게만 느껴졌던 파리의 예술에서 새로운 순수함과 정겨움을 느낄 수 있었다. 몽마르트르의 반 고흐라는 이름을 거창하지 않게, 비로소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이 책은 그만큼 아주 유려한 흐름으로 이 공간과 작품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아직은 꿈만 꾸는 일이지만 먼 훗날 파리의 거리에 발을 디디는 순간, 책 속의 미술관들도 불현듯 떠오를 것만 같다. 파리 골목의 작은 미술관, 그 공간을 읽어내는 힘. 책이 준 교훈을 되감아 보며 언젠가 두 눈으로 직접 이 영혼 담긴 공간을 마주할 날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