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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일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아름다움 - 생업(生業)

우리를 울리고 웃기는 노동에 대하여

by 노현정 에디터
2026.06.02 15:05

 

 

노동은 인간을 살게 하고 죽게 한다. 권리를 찾기 위해 누군가는 하늘 아래 고공 농성을 하고, 누군가는 땅을 긴다. 수많은 사람이 일을 하다 죽는다. 나에게도 노동은 역설적이다. 나를 먹이고 입히고 잘 살게 하고 싶은 욕망을 수없이 일깨워 주지만, 나를 제한하고 옥죄고 억울하고 화나게 만드는 것도 언제나 노동이다. 노동의 목적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는 삶의 의미이며 생계유지 수단이며 혹은 너무 익숙해서 그만두지 못하는 습관 같은 것. 모두에게 다른 의미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가장 첫 번째 목적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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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 <생업>에서 ‘노동’이라는 단어보다 더 단단하고 두터운 무언가가 느껴진다. 살아가기 위해 하는 일이라는 단어가 다소 건조해 보인다면 오산이다. 우리 주변 생업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 보편성에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진다. 요양보호사, 배달 노동자, 급식 노동자, 청년 농부, 타투이스트, 심리상담가, 배우, 가수, 유튜버, 노동 변호사, 국어 교사, 청소 노동자 등 모두가 가진 생계와 긍지를 지켜내는 반짝거림이 느껴진다. 더럽고 추잡해지는 순간이 있더라도 내가 하는 이 일에서 결국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내고 마는 열일곱 명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담겨있다.


책을 읽으며 나의 첫 노동을 떠올렸다. 프랜차이즈 피자집에 친구 추천으로 일을 시작했다. 실수도 많이 하고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매장 뒤쪽 사무실에서 피자 박스를 접는 일이 유일하게 숨구멍이었다. 겨우겨우 두 달을 다니고 스스로 할 줄 아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며 그만뒀다. 지금 생각하면 매니저의 폭언이나 군기나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 이제는 안다. 프랜차이즈 피자집이 웬만한 배달 악성 민원의 요충지임도 안다. 본사와 가맹점의 지긋지긋한 구조적 문제도 안다. 하지만 사회로 이제 갓 발을 뗀 나의 첫 노동은 결론적으로 눈물 바람으로 끝났다. 일하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건 줄줄이 아르바이트하며 좋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부터였다. 노동이라는 어느 정도 더럽고 치사한 카테고리 안에서 고객과 사장님, 본사를 욕하고 칭찬하며 희한한 친밀감을 쌓았다. 일 하나라도 대신해 주려는 손길이, 조심히 들어가라는 말 한마디가 나를 사회적인 동물로 만들어 세상에 끌어들였다. 물론 일에는 기쁨과 슬픔이 계속 함께했다. 백 퍼센트 좋은 일자리도 안 좋은 일자리도 없었다. 그사이에 갈팡질팡하며 노동을 견디고 즐기는 어쩌면 충만한 시간을 보냈다.


노동으로 찾는 충만함이라. 꿈과 적성,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는 사회 초년생으로서는 하늘의 별 따기 같은 문장이다. 책 속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무아지경 꽃밭인 것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지옥도 아닌, 자신의 자리를 똘똘 뭉친 책임감과 긍지로 지키는 이들이 있다. 우리밥연대의 요리사, 김주휘의 이야기가 그렇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국화꽃 한 송이를 바치는 마음으로 찾아간 팽목항에서 그는 제대로 된 밥 한 끼라도 대접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밥을 짓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팽목항을 떠나 방방곡곡 농성장으로 뻗어나갔다.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는 유가족들과 해고자들에게 먹고 싶은 것을 꼼꼼히 물었다. 자신의 손맛보다도 동지들의 입맛을 맞추겠다는 그 마음, 길에서 농성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는 그 단단함은 오랜 실천으로 이어졌다. 김주휘의 이야기는 사람이 사람답게, 밥 좀 먹고 살자는 우리네 정서가 물과 거름을 잘 먹고 큰 농작물 같다. 사람들에게 추억과 정을, 시린 추운 날 굴뚝에서 고공농성 하는 이에게 따스함을 주겠다는 어쩌면 직관적인 생각이 무엇보다 묵직한 감동을 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받는 일이 아니어도, 스스로를 세상에 쓰는 일에 누구보다 긍지를 갖고 즐기는 그에게서 형형한 빛을 읽는다.


실은 고되게 일하기를 좋아한다. 하루에 몇 번씩 무릎을 굽혔다 피며 물건을 정리하는 편의점 노동도, 음식을 차곡차곡 넣고 적절한 타이밍에 배달 콜을 부르는 식당의 노동도, 땀을 비 오듯 흘리며 물건을 분류하고 쌓고 옮기는 물류센터 노동도 하나같이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월급이라는 노동의 대가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도 바쁘면서 화장실에 다녀오라고 빈자리를 메꿔주는 반장님이 있었고, 명절이면 조금이라도 월급을 얹어주려는 식당 사장님이 있었다. 혹시 일손이 부족할까 퇴근 시간이 지나도록 손을 보태주는 카페 동료도 모두 월급보다도 더 따스한 노동의 기억을 체화시켜 주었다. 물론 좋은 일만 있던 건 아니다. 수화기로 고래고래 욕설을 들은 적도, 손에 묵직한 택배 상자를 맞고도 꾹 참고 일해야 한 날도, 월급이 들어오지 않아 눈치 보며 물어봐야 한 날도, 무례한 손님이 떠나고서 대걸레질하며 분노를 삭인 적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 모든 시간을, 그 땀으로 얼룩진 시간을 오히려 값지게 느끼는 이유는 노동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았던, 함께 했던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묵직함이 그를 짓누르지 않고, 오히려 자식뻘 동료들에게 다정함을 선사하는 이들이 있다. 푸르른 젊음의 기운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이도 있다. 책에서 소개되는 이들도 그렇다. 분명 끈덕지고 고단한 노동을 견디면서도 그 속의 무언가를 찾아내어 말하는 사람들. 이들의 목소리가 우리 일상 속 타인을 한 명씩 읽어보고 싶은 욕망을 일깨운다.


유독 여성의 노동은 저임금과 강도 높은 육체노동에 살가움까지 요구받는다. 동시에 고령의 여성 노동자들이 닦아놓는 그 사회적 제반들을 우리는 참 잘 이용하고 산다. 사회적으로 전유되어 온 여성의 노동이라는 이유로 응원과 인정을 아껴버린다. 봉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 일 못 하지, 라며 자신의 노동을 일축해 버리는 당사자도 있다. 경력이 없는 중년, 노년 여성들의 일자리는 청소와 음식으로 한정되어버리는 뼈아픈 현실이 있지만, 책 속에 선명하게 나타나는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이 보인다. 앞서 소개한 김주휘는 자신이 여성이어서 요리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하는 일이니 하는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한다. 자신의 자존감을 채워준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 프레임에서 훌쩍 떠나버린다. 그래, 분명 그렇다. 프레임은 한 가지의 모양이지만 그 속에 숨겨진 여성들은, 노동의 시간은 수백수천 가지의 모습이다.


요양보호사 강석경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간호조무사와 육아 사이에서 열심히 삶을 꾸렸다. 이후 자격증을 따 인생 마지막 직업으로 요양보호사를 선택했다. 처음 어르신들이 요양원으로 입소하면 자식에 대한 서운함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그들을 가장 곁에서 돌보는 요양보호사에게 그 화가 직접 돌아간다. 치매 노인들의 통제하기 어려운 움직임도 있다. 고단한 일을 덤덤하게 써낸 그의 일기는 자신의 힘듦만큼이나 어르신들을 생각한다. 자식들도 부모를 요양원에 보낼 때는 그들을 직접 돌볼 수 없는 상황에 죄책감을 가진다. 하지만 보내지는 처지는 어떻겠는가. 또 그들과 가장 가까운 시간을 보내는 요양보호사들은 얼마나 많은 힘을 쏟겠는가. 잘 죽는 법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필연적이고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가족으로도 직업으로도 힘들다. 그의 아들 김동준 군은 고등학교 3학년 때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다 숨졌다.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 이후 아들을 보내는 시간을 거치고 그는 다시 요양보호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은 어르신에게 끝까지 좋은 말을 수다스럽게 하는 그의 다정함과 굳건함은 동준을 통해 석경에게 온 무언가일 테다. 삶은 찰나라는 것, 그 달콤함 뒤에 다가올 고통과 씁쓸함을 견디는 것 또한 삶이라는 것을. 그리고 분명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는 것.


<생업>은 2024년부터 1년 6개월간 <시사인>에 연재한 은유의 ‘먹고사는 일’을 기반으로 내용을 추가해 엮어냈다. 우리 곁에 평범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 내용의 녹취록이 200자 원고지 2,000장을 넘겼다는 사실이 책을 읽고 나면 놀랍지 않다. 책에 담기지 않은 그들의 땀과 눈물, 웃음이 얼마나 많을까. 생생하고 뜨끈한 현장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책을 통해 작고 반짝이는 면면들을 만나지만 이제 시작이다. 독자들은 나의 노동을, 너의 노동을, 완전한 타인의 노동을 괄시하지 않고 그 슬픔과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눈앞에 창을 하나 덧댄 것처럼 그 단단한 긍지를 느껴보는 시간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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