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발레단 ‘In the Bamboo Forest’
2026년 5월 15일부터 1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서울시발레단(Seoul Metropolitan Ballet)의 창작 신작이자 발레축제 공식 초청작인 ’In the Bamboo Forest’가 공연되었다. 국립발레단 솔리스트이자 <허난설헌 수월경화>, <호이 랑>, <요동치다> 등을 안무하며 한국적 소재를 발레의 문법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이어 온 강효형 안무가와 이 작품을 위해 60분 분량의 7곡을 창작한 거문고 연주자이자 작곡가 박다울의 협업으로, 대나무 숲이라는 공간을 소재로 강인함과 유연함, 비움과 생명력이라는 양가적인 속성을 모두 가진 대나무의 이미지를 컨템포러리 발레 작품으로 구현했다. 이 작품의 구성은 혼란에 빠져 ‘번민’을 겪는 인간(남성 무용수가 표현)이 울창한 대나무 숲에 들어서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프롤로그를 거쳐, 대나무와 숲의 공간의 다양한 속성을 안무로 구현한 6개의 장을 지나 ‘정화’를 표현한 에필로그로 종결된다. 각 장면마다 조명과 의상, 그리고 대나무 숲의 다양한 속성을 표현하는 안무가 서로 호응하여 구성되고, 장의 전환 역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 작품의 음악은 거문고와 가야금, 대금 같은 국악기와 피아노, 베이스 같은 양악기를 결합해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여 있지만 그 안은 비어 있는 대나무 특유의 질감과 울림을 표현한다. 행위를 통해 발생된 소리가 청각이라는 감각을 경유해 또 다른 행위자들에게 인식되려면 그 소리를 가능하게 하는 ‘통로’가 필요한데, 국악기 특유의 감각은 소리를 발생시키는 내부의 '길'이 대나무 특유의 속성을 반영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계절의 변화 속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모습, 올곧은 단단함 속 유연함, 스스로의 내부를 비우면서 생장하는 생명력을 특징으로 가진 대나무의 이미지는 강인함과 부드러움 양자를 아우른다. 또한 프로그램북의 내용을 참고했을 때 군무를 이끌거나 ‘인간’과 교감하는 역할인 ‘숲의 정령’의 존재는 (서구 근대의 ‘문명’에 대한 부정성에서 어느 정도 기인한) 낭만 발레의 환상성을 자연과 생태에 대한 동양적 상상력과 결합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 작품의 안무와 연출에서 새롭게 주목하게 되는 또 다른 지점은 5인 여성 무용수의 군무나 남성 무용수의 군무가 몰성화된 자연 혹은 자연 공간을 표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에너지는 고전 발레의 엄격한 젠더 역할 구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대나무의 성장을 표현하는 남성 무용수의 군무에는 역동과 강렬함이 있지만 이러한 감각은 (강렬한 ‘남성 군무’라면 흔히 언급되는 대표 사례인)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스파르타쿠스>나 <해적>과 달리 ‘남성성’을 표현하는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다. 이는 허난설헌의 시어를 안무로 재구성한 강효형 안무가의 전작, <허난설헌 수월경화>에서도 부분적으로 나타났던 특성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혼란을 겪고 번민하는 주체는 ‘인간’으로서, 과하게 채워진 세속 사회와 자연을 표현하는 대나무 숲이라는 공간적 분리 속에서 그 대나무 숲에 들어가서 대나무라는 비인간 행위자, 그리고 숲 공간 그 자체와 교감한다. 사전에 언론 보도와 프로그램북을 통해 공개된 정보를 참고했을 때, 대나무의 '자기 비움'을 통한 성장과 불교의 공 사상을 통해 회복탄력성이라는 가치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읽히는데, ‘회복탄력성’이라는 가치가 후기 근대 사회에서 일종의 ‘힐링 담론’으로서 기능하는 맥락을 살펴본다면 이 작품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위치는 다소 수상하게 느껴진다. 자연이라는 공간을 낭만화하고 세속적 문명과 자연의 대립 속 후자를 숭배하는 방식으로 대상화하는 또 다른 인간중심주의의 시선 아닐까? 그렇다면 (‘컨템포러리’ 발레로서) 이러한 시선이 과거 낭만 발레가 상상해 온 ‘환상성’의 맥락과는 무엇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대나무가 표현하는 자연의 탄생성과 생명의 에너지에서 ‘자기 비움’을 읽어내서 인간 존재와 연동시키는 것은 꽤나 문제적인데, 이러한 ‘자기 비움’이라는 가치가 대나무와 교감하는 인간에게도 온전히 적용될 수 있을까? 인간의 ‘종적 가해성’*을 고려한다면 결과적으로 ‘자기 비움’이라는 주제가 나아가는 방식은 ‘자기’ 그 자체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힐링’이라는 협소한 가치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인다. 대나무 숲에서 인간 행위자가 진정한 의미의 ‘자기 비움’을 실천하는 방법은 에필로그에서 (세속 사회로의 복귀를 전제한 채) 대나무 숲이라는 공간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서 단식하다가 죽음을 맞이하여 자연으로 회귀하는 극단적인 방식만이 상상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작품은 대나무의 ‘비움’을 표현하기 위해 토슈즈를 떨어뜨리는 연출에서도 알 수 있듯 더욱 높이 하늘에 가 닿으려는 고전 발레의 ‘풀 업’과는 달리 중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오프 밸런스 동작을 활용하며 기존 발레의 형식미에서 이탈했음을 공연을 설명하는 보도자료와 시놉시스 등에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여전히 숙련된, 정돈된, ‘질서가 체화된’ 몸이 안무에게 활용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전 정보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의도와 정확히 일치하는 방향으로 안무가 구성되려면 기존 발레라는 장르 자체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고전적 형식미와 ‘몸’의 이상태에서 이탈하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장르의 경계 내부에서 존재하는 모순적 면모는 대부분의 컨템포러리 발레가 마주하고 있는 딜레마로서, 이 작품에만 국한되는 설명은 아니다. (이는 발레와 현대 무용의 경계를 나누는 구분선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 내재한 여러 딜레마에도 불구하고, 고전적인 이야기 발레와는 구분되는 컨템포러리 발레라는 이 작품의 장르적 특징을 고려한다면 적절하게 구성된 작품이다. 음악-안무-연출(무대, 의상 포함)이 잘 조화되며 어우러지는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각 장이 표현하는 바가 명확하고, 각 장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구성하여 직관적인 이해를 유도한다. 또한 단막 60분이라는 시간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한) 총 8개의 장으로 구성해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관객의 집중력을 유지시켰다. 강효형 안무가는 <요동치다>로 ‘브누아 드 라 당스’ 안무가상에 노미네이트된 이력이 있는데, 이 작품으로 다시 도전하게 된다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이 작품은 2024년 창단된 서울시발레단의 두 번째 창작 레퍼토리인데, 첫 번째 창작 레퍼토리이자 창단 공연인 <한 여름 밤의 꿈>에 비해서 더욱 안무의 구성이나 연출의 차원에서 더욱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안무를 수행하는 서울시발레단의 무용수 역량의 성장 역시 주목할만한 부분이다. 올해 공연 ‘Bliss & Jakie’까지 공통적으로 지적되었던 부분인 (컨템포러리 발레의 완성도와 관계되는) 무용수의 각기 다른 숙련도와 체력을 고려한 구성의 문제가 이 공연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장의 적절한 구분과 ‘효율적’인 무용수의 활용으로 체력의 부침을 막는 안무가의 역량이기도 하다.) 국내 유일하게 컨템포러리 발레를 주된 레퍼토리적 경향성으로 삼는 공공 발레단인 서울시발레단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 김홍중, 2025, 「시대횡단의 징후학 1: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중심으로」, 『사회와이론』, 83-124.
발레축제 기획공연 <정구호의 ‘Tale of Tales’>
이번 2026년 제16회 발레축제의 기획공연인 <정구호의 ‘Tale of Tales’>는 2026년 5월 22~23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공연되었고, 패션 디자이너이자 공연 연출가인 정구호가 연출을, 서울시무용단 출신 김성훈이 안무를 맡았다. 2019년 은퇴한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 김지영, 현재 유니버설발레단 솔리스트 서혜원을 두 축으로, 유니버설발레단(UBC)과 국립발레단(KNB) 수석무용수인 발레리노 이현준(UBC), 허서명(KNB), 강민우(UBC), 박종석(KNB)이 참여했다. 이 작품은 정구호가 국립발레단 창단 50주년 기념작이었던 <포이즈(poise)> 이후로 12년 만에 발레 연출에 복귀하며 선보이는 무대로, 고전 발레의 미학 이면에 존재하는 여주인공의 희생과 감정에 주목하는 시도라고 설명된다. ‘프롤로그’인 ‘서무’와 ‘에필로그’에 가까운 ‘초월’을 포함하여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라 실피드>, <잠자는 숲속의 미녀>, <지젤>, <백조의 호수>의 고전 발레의 음악과 안무를 분절해 여주인공의 감정 위주로 재구성했다. 테크닉이 주된 포인트가 되고 다양한 레퍼토리가 ‘나열’되는 발레 갈라의 형식이 아니라 주인공의 심리와 캐릭터의 관계라는 ‘드라마’에 집중했고, 따라서 이 작품은 원 안무나 원작의 흐름을 그대로 따오는 것이 아니라 의도에 부합하는 장면 위주로 편집되고 변형되어 구성된다.
이 작품은 고전 발레의 여주인공을 상징하는 무용수의 ‘모노 드라마’ 같은 독무 이후, <라 실피드(La Sylphide)>의 갈망(longing), <잠자는 숲속의 미녀(The Sleeping Beauty)>의 순응(obedience), <지젤(Giselle)>의 사랑(devotion), <백조의 호수(Swan Lake)>의 붕괴(fracture)를 거쳐 ‘초월’로 나아가는 구성이다. 무대 연출은 물론 구성까지 미술 사조의 일종인 ‘콜라주’라는 방법론처럼, 다양하게 ‘뒤섞여 있다.’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미니멀리즘을 구현하는 무대 위 네 개의 직사각형 LED 화면이라는 오브제의 활용과, 원작을 연상시키지만 원작과는 다른 포인트를 준 의상의 활용 (특히 추상화된 남성 무용수의 의상), 무채색에서 점차 색채감이 있는 방식으로 변화되는 조명 등 다양한 방식의 무대 연출을 특징으로 가지고 있다. <지젤>의 경우 2막의 원 안무와 거의 비슷한 구조이지만 윌리를 상징하는 군무진이 검은 숄을 두르는 등 디테일한 부분에서 차이점이 있었고, <라 실피드> 후반부에 활용되는 조명의 붉은 색은 원작의 ‘하얀 색’이라는 색채와 대비되는데, 원작의 비극적인 결말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해석의 여지가 많이 개입되어 원작과는 차별점이 생긴 부분은 다른 두 레퍼토리였는데, 순응과 통제라는 키워드를 부제로 가지고 있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는 남성 무용수가 (남주인공인 왕자 데지레보다 마녀 카라보스를 더욱 연상시키는) 여성 무용수의 움직임을 제약하는 역할로 등장하고 그의 퇴장 이후에 (학생들이 맡은) 군무진들과 여성 무용수의 군무가 이어진다. 가장 파격적인 해석을 보여주었던 <백조의 호수>에서 ‘블랙’과 ‘화이트’로 명명된 두 남성 무용수, 그리고 원작의 흑조 오딜의 검은 의상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은 여성 무용수가 3인무(파 드 트루아)를 추며 원작에 존재하는 캐릭터 간 관계성이나 심리 구조를 더욱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언론 보도와 공연에 대한 사전 정보를 참고했을 때, 이 작품은 고전 발레 속 여주인공의 ‘주체성’을 발굴하려는 목표로 이들이 서사 내에서 감내해야 하는 희생, 사랑과 의존, 상실과 자아 발견의 과정을 무대에서 표현했다고 설명된다. 하지만 감정선에 맞춰 편집된 장면들 속에서 실제 공연은 선행 자료에서 강조된 (혁신과 진보의 외피를 하고 있는) ‘주체성’이라는 키워드를 담론적으로 깊이 탐구하지는 못했다. 발전하고 있는 인문사회 분야에서 주체성이라는 개념이 철학적으로 새롭게 사유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주체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지닌 논쟁성과 복잡성을 충분히 사유하는 단계까지 가는 것은 아니더라도 이 작품의 기획 의도를 고려한다면 고전 발레 속 여주인공의 ‘주체성’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위한 작품 내적인 시도가 무대에서 표현되어야 한다. 고전 발레라는 형식적 아름다움을 고려한다면 기존 텍스트의 한계를 넘어 담론을 확장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인데, 최소한 선례라고 말할 수 있는 기존 창작 발레 작품들이 보여준 상상력이라는 기본적인 단계를 반복하기라도 했어야 한다. 차라리 드라마를 목적으로 기존의 고전 발레의 장면들을 하나의 파편처럼 재구성해 불규칙하게 배열했다는 설명이 이 작품에는 더욱 타당하고, 현대 발레라는 형식에 더욱 부합하지 않았을까? 또한 프로그램 소개와 실제 공연의 안무 사이에 괴리가 존재했고, 난해함을 의도했다면 그 난해함이 위치하는 맥락이 필요했지만 그 맥락에 대한 설명이 무대 위에서 부재했다. 작품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관객은 작품이 어떠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목적이었는지, 혹은 모던을 넘어 ‘포스트모던’을 지향한 것인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이 공연의 목표는 고전 발레의 아름다움과 현대적 문제의식을 결합하려는 시도였지만, 그 사유의 깊이가 충분히 표현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광주시립발레단 <해적>
2026년 5월 30일 2회차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공연되었던 광주시립발레단(Gwangjoo City Ballet)의 <해적(Le Corsaire)>은 2026 발레축제 공식 초청작으로, 영국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의 서사시에서 영감을 받아 해적들의 모험과 사랑 이야기를 그린 고전 발레의 대표작이다. <해적>은 발레 <지젤>과 여러 오페라극을 작곡한 아돌프 아당(Adolphe Adam)의 음악과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조제프 마지리에(Joseph Mazilier)의 안무를 통해 1856년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 의해 초연되었지만, 반복되는 각색과 재안무의 과정 속에서 다양한 바리에이션과 음악이 추가되었고 1899년 마린스키 발레단의 마리우스 프티파의 3막으로 구성된 버전이 현재 공연되는 <해적>의 다양한 버전들의 기반이 되었다. 현재 전세계에서 공연되는 <해적>에는 아돌프 아당의 음악을 주된 기반으로 하여 <코펠리아>의 작곡가인 레오 들리브, <파 드 카트르>를 작곡한 체사르 푸니, 리카르도 드리고의 음악이 섞여 있고, 안무와 엔딩 역시 버전에 따라 다르다. 광주시립발레단의 <해적>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의 극동 지부에서 예술감독을 역임했던 엘다르 알리에브(Eldar Aliev)가 3막이었던 원작을 2막으로 압축하며 새롭게 재안무한 버전으로, 작년 9월 광주 초연 이후 올해 발레축제에서 다시 선보이는 작품이다.
그리스와 오스만 제국을 잇는 지중해라는 공간적 배경 속에서 납치와 구출, 사랑과 모험이 교차하는 드라마틱한 서사가 펼쳐지는 <해적>은 해적 콘라드와 그리스 여인 메도라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메도라를 돕는 메도라의 친구 귈나라와 작품의 주요 반동 인물인 노예상 랑켄뎀과 대부호 쉐이드 파샤가 등장한다. <해적>을 3막에서 2막으로 새롭게 재안무하는 것은 현재 다양한 발레단에서 공연되고 있는 흔한 개작의 방향이지만, 이 공연의 주된 특징은 원 안무의 서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해적단의 또 다른 인원들의 캐릭터가 삭제되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콘라드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노예 출신 부하 알리와 콘라드에게 반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키는 또 다른 반동 인물 비르반토를 삭제하고 서사에서 악역과 ‘개그’의 담당을 노예 상인 랑케뎀과 권력자(총독)이자 대부호인 쉐이드 파샤로 집중시켰다. <해적>의 원 안무는 서사 상 주인공을 맡지만 솔로 테크닉보다 여성 무용수와의 파트너링이 더욱 강조되는 남주인공 콘라드와 서사 상 조연이지만 고난도의 테크닉을 뽐내는 안무가 배치된 알리로 남성 무용수에게 가는 시선이 나누어져 있지만, 이번 개작은 알리 캐릭터를 삭제함으로써 유명한 파 드 트루아 역시 콘라드와 메도라의 파 드 되로 바뀌었다. 알리를 삭제하는 버전에서 가장 애매해진 지점은 갈라에서 자주 공연될 정도로 너무 유명한 파 드 트루아가 콘라드와 메도라의 파드되가 되면서 기존의 노예 출신인 알리가 충성을 맹세하는 포즈를 비롯한 알리의 안무를 콘라드가 맡게 되면서 원 안무의 맥락을 아는 사람에게는 다소 혼돈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또한 충성심이 깊은 알리와 배신자 비르반토라는 캐릭터가 삭제되며 원작에서 두 캐릭터로 인해 촉발되는 해적단 내부의 갈등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이 작품의 제목이 ‘해적’이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르반토의 배신과 반란이 사라지면서 콘라드가 겪게 되는 고난 역시 단순히 파샤에게 팔려간 메도라를 구출하는 것으로만 압축되어 재현된다. 이 버전에서 새롭게 사용되는 연출이 있다면 1막에서 메도라와 콘라드가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서 다른 인물과 장치는 모두 멈추고(블랙아웃) 둘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연출 방식이다. 또한 원작의 파샤의 정원(하렘)에서 여성 무용수들이 화환을 들고 추는 군무는 콘라드가 메도라를 그리워하며 꾸는 꿈에서 보게 되는 환상으로 바뀌었다. (반면 유명한 안무인 오달리스크 파 드 트루아는 파샤가 등장하는 정원 장면에서 그대로 등장한다.) 전반적으로 개작의 방향이 발레 입문자와 대중을 의도했기 때문에 서사를 압축하고 단순화했음이 추측되는데, 그래서인지 엔딩은 (낭만주의에서 경외의 대상인 ‘자연’을 상징하기 위해 배치된) 항해 중 폭풍우를 만나는 기존의 엔딩이 아니라 배 위에서 콘라드와 메도라가 항해를 이어 가는 해피엔딩을 택했다.
이 작품이 ‘현대적’인 개작임을 고려할 때 가장 문제적인 지점은 오리엔탈리즘이 투영된 캐릭터인 탐욕적인 오스만 제국의 부호 쉐이드 파샤와 그의 하렘이라는 공간이라는 설정이다. 오스만 제국(터키)의 ‘이국적’인 의상을 입고 탐욕적이면서 희극적인 캐릭터인 셰이드 파샤와 인종적 타자의 기표인 곱슬머리 가발을 쓴 수행원들의 모습이 재현되는 방식, 그리고 술탄의 후궁들이 머무는 하렘이 서구 남성의 시선으로 대상화되는 방식은 <파라오의 딸>과 <라 바야데르>와 함께 <해적>이 고전 발레의 대표적인 오리엔탈리즘의 예시다. (실제로, 이 이유로 유럽 일부나 미국의 발레단에서는 이러한 작품을 레퍼토리로 가지고 있지 않거나 갈라에서만 공연되고, 이 세 작품들은 주로 러시아에서 공연된다.) 현재 한국에서 공연되는 국립발레단의 <해적> 개정 안무(송정빈 안무)에서는 이러한 원작 안무에 대한 비판점을 의식해 기존의 쉐이드 파샤가 수행한 역할을 마젠토스라는 지중해 배경의 가상 국가의 왕으로 수정하고, 메도라가 하렘이 아니라 (귈나라가 대사제로 있는) 신전으로 끌려간다는 식으로 개작하기도 했다. 국립발레단의 <해적> 개정에 대한 기존 발레 마니아층의 주된 비판은 고전을 재해석하면서 ‘문제적인’ 설정들을 단순히 삭제함으로써 내적인 정합성이나 개연성이 훼손되었고 오히려 메도라와 귈나라의 개성이 줄었다는 점인데, 원작의 문제적인 요소를 그대로 유지한 이 버전을 보면 차라리 국립발레단의 <해적>이 보여준 ‘차선의 선택’이 낫다고 여겨진다. 방대하고 화려한 고전이 된 원작을 그대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재해석과 각색을 목표로 했다면 무엇이 ‘현대적인’ 시선인지 무대 위에서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예산이 제한되어 있고 시에 의해 운영되는 공공 기관인 이 기관과 조직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작품의 규모와 안무의 간편함 등 이 버전을 택한 맥락은 이해하지만, 원작의 서사를 개정하면서 문제적인 재현을 삭제까지는 아니어도 최소 완화나 수정을 거치지 않은 것은 아쉽게 느껴진다.
광주시립발레단의 <해적>은 2023년 <돈키호테>, 2025년 <코펠리아>에 이어 서울에서 진행되는 발레 축제의 초청작이며,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거점을 둔 발레단의 역량을 선보이고 주목을 받는 계기라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광주시립발레단이 <라 실피드>, <코펠리아>처럼 고전 발레 작품이지만 다른 고전 발레에 비해 한국에서 잘 공연되지 않는 작품을 레퍼토리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데, 한국에서 국립발레단의 버전을 제외하면 잘 공연되지 않는 <해적> 역시 이러한 경향성을 이어가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그동안 강은혜와 강민지가 메도라를, 이상규와 박범수가 콘라드를, 공유민과 이소정이 귈나라를 맡아 화려한 테크닉과 연기력을 선보였으며, 작년 <코펠리아>에 비해 군무가 조금 더 안정되었다는 점에서 이 발레단의 역량이 더욱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발레축제 <해적> 공연을 계기로 광주시립발레단이 더욱 성장함으로써 신선한 레퍼토리를 새롭게 보유하고, 기존의 레퍼토리를 더욱 발전시키며 단체 내부의 역량을 키워 나가길 빈다.
* 이 글에 사용된 모든 사진의 출처는 대한민국 발레축제 홈페이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