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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하나의 목소리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 이야기 - 돔박아시, 고이래 [공연]

연극 「돔박아시 고이래」를 보고 난 후

by 임유진 에디터
2026.04.13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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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덕션IDA의 근현대사 시리즈 세 번째 작품 <돔박아시, 고이래>가 4월 3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이번 공연은 2025년 11월 제주 BelN극장에서의 초연을 시작으로 대학로 공연까지 이어졌다. 제주의 오랜 역사와 시간이 서울 한복판, 그것도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대학로에서 펼쳐졌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연극 <돔박아시, 고이래>는 4·3으로 가족을 잃고 평생을 홀로 견뎌온 해녀 ‘고이래’의 이야기다. 어느 날 한 동상이 쓰러지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 균열을 계기로 오래 묻혀 있던 진실들이 서서히 입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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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음과 함께 열리는 새로운 진실

   

둔탁한 진동이 객석의 바닥을 타고 천천히 발끝까지 스며든다.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던 시간이 갑작스레 몸을 뒤척인 듯한 울림이다.

 

그 순간 무대 한가운데 우뚝 서 있던 비석이 서서히 앞으로 몸을 기운다. 오래도록 한 자리를 지켜온 돌이 끝내 침묵의 끝을 선언하듯 앞으로 무너져 내린다. 그것은 호국 영웅으로 추앙받아온 채진광의 동상이다.


곧이어 뉴스 화면은 동상을 쓰러뜨리고 수십 개의 빗창을 꽂은 용의자로 한 60대 여성을 비춘다. 무대는 곧바로 경찰 취조실로 전환된다. 그곳에서 고이래는 쓰러진 비석 위에 앉아 있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는 동백 아가씨의 가락이 낮게 새어 나온다. 노래는 멜로디라기보다 오래 가슴속에 묻어둔 한의 기억에 더 가깝다.

 

이 작품에는 두 개의 시간이 공존한다. 하나는 동상이 무너진 현재, 2003년이고 다른 하나는 이래의 부모가 살해된 제주 4·3의 시간, 1948년이다. 취조실에서 형사 강선웅은 이래에게 묻는다. 왜 채진광의 동상을 무너뜨렸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범죄의 동기를 넘어 연극 전체를 관통하며 2003년과 1948년을 잇는다.


무대 위에서 쓰러진 비석은 이내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한다. 원형의 조명이 만들어낸 빛의 우물 한가운데에서 비석은 마치 시곗바늘처럼 느리게, 그러나 쉼 없이 돌아간다. 그 위에 가만히 앉아 있는 이래는 움직이지 않지만, 그녀의 시간만은 두 시대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하는 듯하다. 1948년과 2003년의 시간을 이래의 몸은 홀로 감당하고 있다.

 

이처럼 <돔박아시, 고이래>는 1948년과 2003년,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을 교차하며 무대 위에 등장시킨다. 이는 제주 4·3이 각 개인과 공동체 전체에 남긴 흔적을 다층적으로 드러내는 데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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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무대 뒤편에 우리는 몰랐던 또다른 무대가 추가로 설치되어 있다.

 

검은 장막이 천천히 걷히는 순간, 우리는 그곳에 죽은 자들의 시간과 기억이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래가 과거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을 말할 때마다 장막은 조금씩 갈라진다. 그러면 이미 오래 사라졌어야 할 이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무대 위로 걸어 나온다. 죽음은 그들을 데려갔지만, 기억은 끝내 그들을 놓아주지 못한 듯하다. 극의 후반부에 다다랐을 때 활짝 열린 장막은 우리가 그동안 외면하고 있었던 진실과 마주하게 만든다.


연극은 제주 4·3의 시간성을 과거에만 가두지 않는다. 채진광은 호국영웅으로 현충원에 묻히고, 그의 아들은 3선 국회의원으로 지역의 권력이 되며, 손자 채도엽은 세화리 해녀들을 밀어내고 리조트를 세우려 한다. 이래는 채진광에게 부모를 잃었고, 채도엽에게는 집과 삶터를 빼앗길 위기에 놓인다. 과거의 폭력이 현재의 자본과 권력으로 다른 얼굴을 하고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러나 세화리 해녀들은 이번에도 침묵하지 않는다. 거센 바람을 가르며 바다로 나아가던 몸들이 이제는 거리로 나선다. 손에 쥔 것은 물질 도구가 아니라 삶터를 지키겠다는 의지다. 제주 4·3 당시 그러했듯 다시 삶터를 지키기 위해 몸을 일으킨다. 우리는 여전히 피해와 상처에 대해서조차 충분히 말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욱 제주 4·3을 바라보는 다층적이고 다양한 관점의 작품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길 바라게 된다.

 

기억은 단 하나의 목소리로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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