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스마트폰의 존재 아래서, 우리 모두는 사진가인 동시에 피사체이다. 선명한 화질과 무한한 촬영 기회는 더 많이 더 빠르게 찍고 더 많은 것을 쉽게 간직하게 돕지만, 동시에 너무 많아서 다시 들여다보지 않게 만든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다. 이미지의 축적은 곧 기억의 축적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진 찍는 것은 좋아하지만, 몇만장의 이미지들은 다시 향유될 기회를 잃은 채 아이폰 앨범 속에서 무질서하게 나뒹군다. 올해는 꼭 정리를 제때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목표는 가끔을 제외하고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디지털은 저장을 약속하는 대신 기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가지고 다니며 나와 동생을 남겨준 실버색 카메라가 있었다. 카메라 속 SD카드에는 정해진 용량이 있었기에, 때가 되면 나란히 손을 잡고 사진관에 가서 그 안에 저장된 시간들을 출력했다. 집에 돌아오면 사진을 앨범 속에 붙여넣는 것까지 해야 비로소 마무리가 되었다.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하다. 사진은 파일이 아니라 물질이었고, 붙이고 넘기고 보관하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기억이 되었다. 그런 순간이 이제는 귀해졌다. 앨범 속 내지는 오래되어 상단과 하단이 갈색빛으로 변해버렸다. 시간을 머금은 변화다. 그것들은 여전히 다락방 서랍 힌켠에  가지런히 꽂혀 있고, 본가에 갈 때면 그 앨범들을 한동안 들여다보곤 한다. 부모님의 연애 시절 앨범까지도 여전히 그곳에 존재한다. 제한성과 찰나의 플래시는 그때만 누릴 수 있는 보물같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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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C News, Christopher Sutherland 제공

 

 

 

찍힘과 포획


 

아날로그의 매력이 다시금 각광받는 요즘, 필름 카메라를 구입하지 않고도 가장 쉽게 아날로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바로 포토부스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포토부스’라는 명칭조차 알지 못했다. 지하철역에서 증명사진을 촬영하는 용도를 제외하고는 핀터레스트 속 서구권의 문화처럼 멀게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은 번화가를 몇 발자국만 걸어도 그 작은 방들이 곳곳에 깔려있다.

 

하나, 둘, 셋. 3초 혹은 10초라는 짧은 시간동안 우리는 가장 예쁜 자신의 모습을 담기 위해 숨을 참는다. 한 번 찍히면 되돌릴 수도, 무한히 수정할 수도 없다. 준비의 시간을 길게 주지 않기에 예기치 못한 순간이 포착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포토부스는 디지털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아날로그적 특성을 지닌다. 부스의 물질성에는 여전히 사람을 끌어들이는 무언가가 있고, 앉아서 스스로를 응시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찍는 동시에 포획되는 것이다. 포토부스의 가장 큰 선물은 고정된 앵글이다. 프레임 안에서 몸을 움직일 수는 있지만, 휴대 기기처럼 끝없는 선택과 미화의 가능성은 없다. 그것은 선택의 자유가 아닌 제한을 제공한다. 위치 또한 고정되어 지하철역, 거리 모퉁이 등 특정한 지리의 일부가 된다. 떠다니는 시선이 아니라 세상 속에 설치된 관점인 셈이다. 방문자는 잠시 그 범위 안으로 들어왔다가, 기념 사진을 들고는 다시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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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브르통의초상, 포토부스, 1924–1929

 

 

 

예술가의 자아 응시


 

이러한 포토부스의 역사는 생각보다 더 오래되었다. 1925년 9월, 아나톨 조세포(Anatol Josepho)가 브로드웨이 51번가에 세계 최초의 자동 포토부스를 설치했을 때, 그의 포토매톤 스튜디오는 6개월 만에 28만 명의 고객을 끌어들였다. 세 대의 부스는 매일 새벽 4시까지 운영되었다. 자동 카메라를 만들려는 시도는 18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결국 혁신 경쟁에서 승리한 것은 시베리아 출신 이민자 조세포였다. 네키 고라닌의 『American Photobooth』에 따르면, 조세포는 옴스크에서 소년 시절 코닥 브라우니를 처음 접한 이후 카메라에 집착했다. 그의 세대에게 카메라의 매력은 예술적 잠재력뿐 아니라 기술적 가능성이기도 했다.

 

1930년대, 뮤토스코프(Mutoscope)는 기술을 개선하여 포토매톤을 “포토매틱(Photomatic)”으로 발전시켰다. 뉴욕 지하철과 펜역, 그랜드 센트럴 등 공공장소에 설치되며 더욱 확산되었다. 초현실주의자들부터 앤디 워홀에 이르기까지 많은 예술가들이 이 장치를 사랑해왔다. 이를테면 번 보일(Bern Boyle)은 에이즈 진단 이후 1년간 매일 포토부스에서 자화상을 찍었다. 그 작업은 1987년 뉴욕 로체스터 피라미드 아트 센터에서의 Photomaton 전시로 이어졌다. 또 다른 예술가인 American Photobooth의 저자인 나키 고라닌 역시 어머니의 죽음 이후 포토부스 자화상에 몰두했다. 그녀는 사진 작업을 계속해야 했지만 집중할 수 없었고, 포토부스는 그 해답이 되었다. 그녀는 9년에 걸친 여정을 통해 동전 투입식 자동 자화상 사진기의 역사를 복원해냈다. 포토부스의 가장 큰 선물은 고정된 앵글이다. 우리가 프레임 속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 외에 다른 미화의 기능은 없다. 1953년 영화 『The Band Wagon』에서 프레드 아스테어는 포토매틱 안으로 들어가 춤을 추며 사진을 찍는 장면을 연출했다. 1957년 에스콰이어 잡지는 리처드 아베돈의 스튜디오에 포토부스를 가져왔고, 마릴린 먼로와 오드리 헵번, 트루먼 카포티 등을 촬영했다. 또한 브렛 래트너는 자신의 집에 포토부스를 설치해 마이클 잭슨, 브리트니 스피어스, 로버트다우니 주니어 등 수많은 유명인의 사진을 촬영하고 이를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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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tional Library of Congress, 아나톨조세포, 포토부스, 1927

 

 

 

뒤집힌 세계, 선택의 부재


 

포토부스는 무심하고 솔직하다. 꾸며낼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즉각성이 있다. 반공적이고 반사적인 이 공간에는 독특한 마법이 존재한다. 사진 속 날짜를 통해 포토부스를 이용한 예술가와 유명인들의 목록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동일한 조건 속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단지 포토부스 속 한 사람이라는 동일한 조건 위에 놓인다. 나 자신이든, 우정이나 사랑의 일회적 기록이든, 혹은 점진적 자기 연구이든 목적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고정된 앵글 앞에 선 누구나 행위자이자 기록자로서 잠시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앉아 버튼을 누르고 카운트다운을 기다리면 된다. 그러면 잠시 아날로그 속으로 휙 하고 빨려 들어간다. 무한한 선택이 가능한 시대에 포토부스는 오히려 선택의 부재로 우리를 구원한다. 우리는 수천 장의 이미지를 저장하지만, 포토부스는 단 네장만을 남긴다. 디지털이 기억을 분산시킨다면, 포토부스는 제한을 통해 사진의 근원적 미학으로 우리를 이끈다. 어쩌면 우리는 그 좁은 프레임 속에서야 비로소 스스로의 모습을 또렷하게 마주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커튼을 걷고 뒤집힌 세계로 들어가면, 옛 것을 탐닉하는 예술가가 된다. 시대의 역재생 버튼을 누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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