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의 불이 꺼진 후, 1막이 시작되자마자 눈앞에 엄청난 무대가 펼쳐졌다.
처음 눈에 보인 것은 움직이는 수묵화였다. 후면을 가득 채운 LED 스크린 속에는 거대한 검은 새가 생동감 있게 움직이며 여경을 공격한다. 백제의 왕, ‘여경’의 악몽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속 어디에선가 들리는 맑은 목소리에 집중하니 도원의 풍경과 함께 아름다운 여인이 등장한다. 몽유도원이다.
꿈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인, 아랑에게 마음을 빼앗긴 여경은 이미 도미와 혼을 올린 그녀를 빼앗아 왕비로 만드려 한다. 욕심 탓에 도미에게 죄를 물어 그의 눈을 찔러 멀게 하고, 백제 밖으로 추방한다. 여경은 결국 아랑과 식을 올리나 일식이 일어난 사이 아랑이 도망친다.
도망간 그녀는 문제의 원인이 겉껍데기라는 생각에 자신의 얼굴을 스스로 해한 후, 눈먼 도미의 피리소리를 따라가 재회한다. 여경은 아랑을 애타게 찾지만, 찾아낸 아랑의 얼굴은 성치 않았다. 이에 고구려의 침략까지 더해지면서 여경은 정신을 놓고 만다. 홀로 남은 여경은 결국 고구려의 화살에 맞아 비극적 결말을 맞고 만다.
어차피 우리들의 인생이란 한갓 꿈속에서 본 도원경을 현실에서 찾기 위해서 헤메는 몽유병의 꿈놀이가 아닐 것인가.
(최인호, 몽유도원도, p.144)
에이콤(ACOM)과 국립극장이 공동 주최하고, 에이콤(ACOM)이 제작하여 현재 성황리에 공연 중인 뮤지컬 「몽유도원」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지난 1월 31일 관람했다. 2026 초연 「몽유도원」은, 2002년작 「몽유도원도」를 새로운 음악과 첨단 무대 기술을 통해 리부트한 버전이다.
『삼국사기』의 도미전, 도미 부부 설화를 바탕으로 한 최인호의 소설 『몽유도원도』를 원작으로 두고 있다. 2002년작과의 가장 큰 차이는 넘버 전체적으로 국악적인 면모가 업그레이드되었다는 사실과, 수묵화에 애니메이션을 넣은 디지털 배경의 존재였다. 압도당할 만큼 거대한 무대와 다양하면서도 매끄러운 전환, 움직이는 소품들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미장센이었다.
특히 조명의 온·오프와 LED 후면을 통해 인물의 그림자가 마치 수묵화 속에 섞여 들어간 듯 만든 연출이 인상깊었다. 음악과 안무가 가장 돋보였던 넘버는 바로 ‘흑과 백’이었다. 점점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바둑판 위의 상황에 맞게 고조되는 국악 장단과 퍼커션, 앙상블의 흑돌과 백돌을 표현한 안무는 완성도가 높았다.
작품 전반적으로 달에 대한 모티프도 엿보였다. 몽유도원, 꿈이라는 것도 사실은 밤에 꾸는 것이지 않은가. 밤에는 당연히 뜨는 달이, 낮에 해를 가리게 될 때 이 현상에 대해 알지 못했던 과거의 사람들은 신의 분노라 여겼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1막에서 있었던 아랑과 도미의 혼인, ‘도원의 혼례’ 넘버와 2막에서 아랑과 여경의 혼인, ‘일식’ 넘버의 대비가 눈에 띄었다.
도미와는 달을 섬기는 제사장 비아와 함께 달 아래에서 혼례를 올리는 정당성이 있었다면, 여경과의 혼례에서는 달이 태양을 가리는 개기일식이 일어난 것이다. 태양은 종종 왕을 상징하기도 하기에 결말을 예견하게 만드는 스토리의 깊이가 엿보였다. 또, 눈을 잃은 도미가 추방당하며 여경의 충신 향실에게 묻는 질문은 푸른 달이 떠 있냐는 물음이다.
결국, 도미와 아랑이 푸른 달 아래에서 재회하는 장면은 감정을 북받치게 만들었다.
‘여경’이라는 인물에 대한 해석 역시 인상적이었다. 백제의 개로왕을 바탕으로 창작된 인물인 여경은 어릴 적 정치적 공작으로 암살당한 비유왕, 즉 선대 왕인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 탓에 매일 잠을 설치며 공격당하는 악몽을 꾸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고통스러운 악몽 탓에 번번이 식은땀을 흘리며 깨다가, 깨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도원과 여인을 보았으니 그에 대한 집착이 생기는 것도 이해가 된다. 어렸을 때부터 왕의 아들로 살며 가지고 싶은 것은 전부 가질 수 있는 삶을 살다가, 사랑이라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감정 탓에 점점 광기에 치닫는 연기 또한 몰입을 도왔다.
이러한 해석과 현대적인 무대 기술이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였다.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연출도 한몫했다. 공연을 본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밤하늘을 보니 만월이었다. 맑은 하늘의 빛나는 달빛을 보고 아랑과 도미의 사랑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뮤지컬 「몽유도원」은 오는 2월 22일까지 진행되며, 4월부터 5월까지 있을 샤롯데씨어터에서의 재연도 기대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