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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팬레터>의 10주년의 막이 올랐다. 2016년 초연을 올린 뒤 2026년 오연을 맞는 <팬레터>는 많은 뮤지컬 팬들이 애정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해진의 편지’를 비롯하여 넘버가 좋기로 유명한 <팬레터>의 음악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하다. 또한, 주요 배역들이 성별에 상관없이 매력적이기에 많은 팬들이 본인이 애정하는 배우가 한 번쯤 출연해줬으면 하는 극으로 꼽곤 한다.

 

특히 <팬레터>는 소극장 극으로 시작해, 이제는 대극장도 채울 수 있는 극이라는 것이 인상깊다. 초연은 동국대학교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시작했는데, 사석 포함 300석 규모의 소극장이었지만, 삼연 때 중극장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을 올렸고, 2021년에는 코엑스 아티움에서 극을 올리며 대극장 극이 되었다. 그리고 10주년 기념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진행하며, ‘팬레터 예술의전당에 올리겠네’라던 뮤지컬 팬들의 농담이 실현된 것이다.

 


[팬레터] 공연사진_17 김히어라_제공 라이브(주).jpg

 

 

 

극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넘버


 

<팬레터>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 극이 된 데에는 넘버의 몫이 크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필자 역시 <팬레터>의 넘버로 극을 처음 알았다. 스포일러를 지양하기에 전체 극의 줄거리를 따로 찾아보지 않았는데도, 넘버 하나하나만으로도 완성도가 있어 한 넘버를 충분히 유영하기에는 다른 배경 지식이 필요없는 넘버들로 <팬레터>가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넘버 하나하나마다 드라마와 스토리가 모두 담겨있으며, 넘버의 선율은 그 드라마를 극대화하기에 최적화되어있다.

 

특히 2021년 코엑스 아티움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수음이 잘 되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토월극장은 자칫 수음을 잘못하면 울리는 듯이 들리는, 소위 ‘동굴 음향’이 되기 쉬운 극장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이번 팬레터에서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특히 세훈과 윤, 윤과 해진의 낮은 대화 장면이 극 곳곳에 위치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런 장면들의 소리가 제대로 들려 관객에게 극의 전달도를 높여주었다.

 

<팬레터>의 넘버는 여러 명이 함께 부르는 넘버가 많다. 특히 그러한 넘버들이 스토리의 핵심이 되곤 한다. 세훈과 히카루의 극한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거울'을 비롯해 합이 돋보이는 ‘거짓말이 아니야’는 감정의 전환점을 훌륭하게 다룬다. 세훈과 해진 그리고 히카루 셋의 감정선의 시작인 ‘아무도 모른다'와 정교한 호흡이 객석에까지 전해지는 1막 피날레 ‘섬세한 팬레터'는 서사를 이해시켜준다. 뿐만 아니라 칠인회 멤버가 함께 부르는 넘버 등 유독 단체 넘버가 돋보이는 <팬레터>의 넘버들은 시대의 분위기를 자아낼 뿐만 아니라 스토리의 매력 역시 끌어올린다.

 

 

[팬레터] 공연사진_03 김종구 원태민_제공 라이브(주).jpg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을 사랑하는 그 마음 하나로


 

<팬레터>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절절한 스토리일 것이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잘못 꿰어져 버린 인연과, 시작은 무해했으나 끝은 피와 죽음이 얼룩진 극적인 스토리. 이 극을 보고 친한 지인이 ‘너는 세훈이가 정말 해진 선생님을 사랑했다고 생각하니?’라고 물었다. 극을 처음 봤을 때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보았을 때는 사랑과 동경과 소유욕, 그 언저리쯤에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극을 곱씹다보니, 이건 해진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표현 같았다.

 

둘의 인연은 서로가 누구라서가 아니라, 나의 슬픔을 알아봐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에 시작되었다. 내 말 뜻에 스며있는 나의 진짜 마음을 알아봐주는 존재. 가족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도 안정이 없을 때. 뼈저린 고독을 알아봐주는 나와 같은 존재. 어쩌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모르는 나를 단 한 문장으로도 알아봐주는 존재는 살면서 평생 만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에 존경하고 동경하던 해진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세훈은 되돌릴 수 없는 거짓말을 시작하게 되는 것.


 
바다 건너
저 나라에도,
말 거는 이 없는 집에도

나 있을 곳은 항상 없었어.


- 아무도 모른다 中

 

 

하지만, 이는 해진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바다 먼너에 사는 사람이 나의 외로움을 알아주었다는 것만으로 결혼을 꿈꾸는 사람. 건강하지 못하고 나를 해롭게 하더라도 글로 나의 존엄을 지키고 싶다는 신념과 이를 기대하는 이를 저버리지 않고 싶어하는 열망. 결국, 둘은 모두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는 한 사람에게 미움받지 않고 싶어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스스로 속이며 극단으로 치닫는 것이다.

 

이때까지 <팬레터>는 세훈의 시선으로만 바라봤다. ‘팬레터'라는 단어 자체에서도 팬레터를 주는 사람의 입장을 보통 떠올리게 되니까. 그러나 이번에 극을 볼 때는 해진의 시선에서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세훈 못지 않게 해진도 끝없는 고독을 느끼고 있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너무 외로웠던 그 둘은 서로 의지하게 되었으나, 결국 서로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그들만의 끝을 맞았다.

 

 

[팬레터] 공연사진_05 원태민 강혜인_제공 라이브(주).jpg

 

 

 

오래도록 생생하게 살아있을 극


 

<팬레터>의 김태형 연출은 10주년 공연이지만, 최대한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본질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무대 디자인이나 핵심 연출이 크게 바뀐 것은 없었다. 세훈과 히카루가 거울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연출, 둘이 교차할 때 그 안에서 빛이 빛나는 것, 문인들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무대와 그림자 연출. 시대상이 느껴지는 무대와 고운 무대 디자인이 어여쁘게 느껴졌다.

 

사연을 봤을 때, 마지막에 칠인회가 다 함께 7명이 되어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는 것이 조금 이질적이게도 느껴졌다. 그러나 오연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세훈과 해진, 그리고 히카루의 엔딩이 새드 엔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여러 번 보는 관객이 성숙해졌기 때문도 있을 것이고, 능숙해진 배우들의 풍부한 감정선 덕분도 있을 것이다. 캐스팅까지 10주년의 기념이 느껴졌던 오연, 앵콜 공연까지 잘 마무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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