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은 보고, 글은 읽는다.
둘은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한 주제에 대한 감상을 표현한다는 본질적인 공통점을 지닌다. 그렇다면 그림을 읽는다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책 제목을 처음 보고 든 생각이었다.
‘그림 읽는 밤’에는 그림과 문장이 함께 들어있다. 그것은 그림과 글 모두를 사랑한 작가 이소영이 틈틈이 저장해둔 명화와 문장을 연결한 결과물이다.
이 책은 둘을 연결시키는 것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여백’이다. 그림을 보고 책을 읽고 그 감상을 다른 메모장이나 책 귀퉁이에 적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그림과 글 사이에서 직접 글을 쓸 수 있도록 책 안에 넉넉한 ‘여백’을 마련해 두었다.
이로 인해 독자는 글을 읽는 사람을 넘어 쓰는 사람이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해변의 젊은 여인 _필립 윌슨 스티어
당신은 이 사진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가?
관광 온 여성? 낭만을 즐기는 여유로운 사람?
작가는 말한다.
[살아 내기 위해 ‘그냥 쉬었음’]
“햇빛 속으로 스스로 걸어 나왔다는 것, 몸을 빛에 맡겼다는 것. 그건 일상 속에서 자기만의 틈, 즉 숨구멍을 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쉼은 어떤 도피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더 깊게 받아들이는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림을 통해 얻은 주제는 ‘여성이 해변에서 쉬고 있다’이다. 작가는 거기서 ‘쉼이란 삶의 방식 중 하나다.’라는 결과를 도출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다른 작가의 인상 깊은 문장으로 결론짓는다.
그러고는 마지막 장에 나의 생각을 적는다.
큐레이터가 선별한 특별한 그림들과 문장들과의 만남. 그림과 함께하기에 더 와닿는 문장들. 그리고 결국엔 독자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는 따뜻한 마음. 그 모든 것들이 마치 추운 겨울날 길거리에서 마주한 붕어빵 같았다.
다음은 제일 와닿았던 문장이다.
“두려워하며 맞이하는 내일만큼 쓰디쓴 밤은 없었다. 지난해를 아무리 망쳤다고 해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새해가 있어서 좋은 것 아니었나. 아직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은 남아있다.” - 모리스 할머니, 이소영, 2022
좋아하는 그림과 글 속에 푹 파묻힐 수 있는 시간과 재료를 준 책. 새해를 시작하기에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