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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를 굳이 영화관에서 보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이상일 감독의 <국보>는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다. 애니메이션이 영화관을 섭렵한 일본에서 22년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실사 영화라는 점에서 더 궁금했다. 3시간이라는 길이에 소재도 생소한 가부키라 이걸 영화관에서 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이 영화는 음향이 중요한 영화라고 하는 후기들을 보고 예매했다.


가부키라는 소재 때문에 경극을 소재로 한 <패왕별희>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정도는 비슷한 면이 없잖아 있었지만 전혀 달랐다. <패왕별희>는 경극 배우인 두 주인공들을 통해 당시 사회, 문화적 비판을 보여줬다면 <국보>는 오로지 가부키로 인간 국보가 된 키쿠오의 일대기였다.


유명 가부키 배우 하나이 한지로는 야쿠자가 연 신년회에 참석하고 그곳에서 온나가타로 가부키 공연을 하는 야쿠자의 아들 키쿠오의 재능을 알아본다. 신년회에서 다른 야쿠자의 급습을 받아 가족을 잃은 키쿠오는 한지로에게 거둬져 한지로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슌스케와 함께 가부키 훈련을 받고 가부키 배우로 성장한다.


배우들이 직접 가부키를 1년 반 동안 배워 직접 연기해서인지 어색함이 없었다. 가부키 공연 때 내는 목소리는 처음 들었는데 내 생각이랑 달라 처음에는 조금 놀랐다. 당연히 삑사리겠거니 했는데 그게 정석이었다니. 영화에서 가부키 무대 장면이 많이 나와서 검색해 보니 실제 가부키는 반복되는 동작이 많고 지루하다고. 영화가 딱 흥미로울 만큼만 잘 편집해서 보여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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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동안 지루함도 별로 못 느꼈고 배우들의 연기력도 나무랄 데 없었지만 연출은 좀 올드하게 느껴졌다. 특히 아버지가 죽을 때 내렸던 눈과 온나가타로 인간 국보가 된 만키쿠의 <백로 아가씨> 무대를 본 키쿠오가 가부키 배우가 되고자 완벽하게 마음을 먹게 되는 순간. 키쿠오가 온나가타로 인간 국보가 되어 <백로 아가씨> 공연을 하고 마지막에 조명에 흩날리는 눈 연출을 보는 부분은 너무 예상 가능할 정도였다.


원작이 2018년에 처음 출판된 소설이라 나쁜 의미로 놀랐다. 영화는 최대한 원작에 따라서 각색하려고 했을 거고, 그렇다는 말은 2018년 작품임에도 여성 캐릭터 취급이 너무 구시대스럽다는 말이 되니까. 1993년 영화인 <패왕별희> 속 공리가 연기했던 주샨이랑 너무 비교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남편과 후계자가 될 아들을 위해 살아야 하는 가부키 배우들의 아내를 생각하면 고증을 너무 잘한 걸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여자는 크게 엄마, 여자친구, 아내가 끝이다. 어릴 때부터 키쿠오와 알고 지냈던 하루에는 슌스케의 아내가 된다. 키쿠오는 제대로 된 무대도 서본 적 없는 자신을 보고 성공할 걸 알아본 요정의 게이샤와 그 사이에서 얻은 딸은 남 대하듯 한다. 딸은 그렇게 사생아로만 남고 게이샤는 영화에서 아무런 언급도 없이 퇴장한다. 잠적했던 슌스케가 다시 돌아오고 진짜 후계자의 자리를 뺏어서 후계자가 됐다는 누명을 쓰고 변변찮은 역할만 맡는 키쿠오는 겨우 다른 가부키 배우에게 빌어 배역을 얻어낸다. 키쿠오는 그 배우의 딸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이용하고 들켜 함께 쫓겨난다. 키쿠오의 가부키에 대한 열정은 알겠다. 그런데 가부키를 위해서라면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여자랑 몸을 섞으면서 동태눈으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장면은 이게 창놈이 아니면 뭐지? 싶은 생각만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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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예술에 몸 담갔는데 이제야 다른 일하는 것도 막막하고 자존심 때문에 그러는 것도 알겠다. 하지만 사지 멀쩡한 남자가 와이프(따지고 보면 결혼도 안 했으니 와이프도 아닌 여자친구)가 해주는 뒷바라지만 받으면서 무기력해 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특히 옥상에서 분장이 잔뜩 번진 채 술을 마시고 넋이 나가 웃는 장면도 그저 자기 연민에 취한 예술 하는 남자의 꼴값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요정의 게이샤 사이에서 얻은 사생아인 딸이 인간 국보가 된 키쿠오 인터뷰 사진작가로 나와 아버지로서는 최악이지만 가부키 최고의 배우라는 걸 인정한다는 제발 하지 말았으면 하는 최악의 대사를 친다. 다른 캐릭터가 해도 올드한 상황과 대사를 굳이 사생아인 딸에게 시키다니. 사생활은 구려도 재능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악마의 재능 이런 걸 원했던 것 같은데 기분만 안 좋았다. 어차피 거의 마지막 장면이기도 했지만 이 부분에서 도대체 왜 이런 장면을 넣었을까 싶을 정도로 몰입도가 확 떨어졌다.


기대를 많이 해서인지 실망한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어쨌든 잘 만든 영화는 맞다 생각한다. 그러니 일본에서도 실사 영화인데도 천만 명이 보지 않았을까. 영화를 보니 원작 소설이 궁금해졌다. 상, 하로 나뉜 원작 소설을 줄이고 줄인 게 3시간이라 당연히 각색이 들어가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던 것이겠거니. 이 리뷰를 읽고 실망하고 영화를 안 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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