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80 이상, 수능 1등급, 아들. 시험관 시술 과정에서 아이의 지능, 신장, 성별 등을 예측해 ‘유리한 배아’를 선택하려는 시도가 퍼지며 윤리적으로 논란이 되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비용은 약 7천만 원에 이르지만, 부모는 아이에게 더 나은 미래를 주기 위해 과감한 선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부유층 중심으로 유전자 격차가 벌어지며 자칫 유전자 우월주의 사회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타고난 머리, 뛰어난 신체조건 등을 바탕으로 재능론에 대한 논의가 판을 치고 있다. ‘공부는 노력인가, 재능인가’라는 제목이 달린 영상의 댓글에는 재능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며 더 나아가 “몇 시간씩 책상에 앉아 노력하는 것조차 재능의 영역이다.”라는 말까지 거론될 정도다.
영화 <가타카>는 지금 시대에 더욱 어울리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1990년대 후반에 개봉한 영화이지만, 뛰어난 유전자가 인간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작금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고들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가까운 미래, 인간은 태어날 때 유전자 조작을 통해 질병과 결함을 제거한 ‘적격자(Valid)’와 자연출생으로 태어난 ‘부적격자(Invalid)’로 나뉘며, 유전자 정보가 신분이자 계급이 되는 사회의 모습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빈센트 프리먼’은 자연 출산으로 태어난 부적격자다. 어릴 때부터 심장병을 앓고 태어나 수명도 짧을 것이라 예상되며 계속 꿈꿔온 우주 비행사 역시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반면 그의 동생 ‘안톤’은 완벽한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적격자로, 나쁜 인자들은 모두 제거한 우월한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빈센트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전직 수영선수이자 우월한 유전자를 지닌 ‘제롬’의 유전자를 빌려 신분을 속이고 우주 항공 기업 ‘가타카’에 입사한다. 빈센트는 매일매일을 제롬의 혈액과 머리카락 소변 등을 사용해 유전자 검사를 통과하며 철저히 살아간다.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에서 영화는 빈센트의 행동과 말을 통해 인간의 의지가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계속해서 보여준다. 극 중 핵심으로 작용하는 ‘겁쟁이 놀이’는 안톤과 빈센트가 헤엄쳐 특정 목적지까지 다다르는 행위다. 분명 태어날 때부터 완벽한 유전자를 지닌 안톤이 이기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승리하는 쪽은 언제나 빈센트다. 어떻게 자신을 이길 수 있었냐는 안톤의 대답에 빈센트는 되돌아갈 힘을 남기지 않았을 뿐이라고 외친다. 완벽한 유전자보다 중요한 건, 한계를 넘어서는 의지와 열정으로 살아가려는 태도임을 짐작게 하며 유전자로 우열을 가리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를 숙고하도록 만든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머리카락 역시 오히려 유전자의 중요성을 모호하게 한다. 그 사람을 나타내는 전부이자 유전자 검사에 용이하게 쓰이는 머리카락이지만, 빈센트는 자신의 동료 ‘아이린’이 그에게 자신을 조사해보라며 건넨 머리카락을 날려 버린다. 부적격자임에도 불구하고 가타카에 입사한 빈센트에게 유전자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뿐더러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도 되지 않는다. 이후 빈센트의 정체가 탄로 날 위기에 처했을 때 아이린 역시 그의 머리카락을 그저 날려 버리는데, 유전자가 전부라고 믿어왔던 그녀에게도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않음을 깨닫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한 사람의 피나는 노력과 의지가 주변 사람에게도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지를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유전자는 인간을 설명할 순 있을지라도, 인간을 규정할 수는 없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존재하는 한, 노력과 열정은 결과를 확실히 보장하지 못하더라도 그 가능성을 지켜나가는 힘이 된다. 영화에서 뛰어난 유전자를 가졌지만, 다리를 못 쓰게 됐다는 이유만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 단정 짓는 제롬의 태도야말로 특정한 기준에 자신을 가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 역시 재능을 앞세워 인간을 너무 쉽게 단정하고 판단해 버리고 있는 듯하다.
영화의 결말은 빈센트가 우주로 향하는 순간이다. 마침내 모든 편견과 선천적인 것들을 제치고 그토록 원하는 우주로 가게 된 그의 모습은 사회의 규격에 모든 것을 맡기는 걸 저항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로 얻어낸 값진 결과를 증명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주선에 탑승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빈센트 외에도 동양인, 흑인, 여성 등이 자리한다. 유전자로 인간을 지배하려던 단일 기준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점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뭉클함을 더한다. 세상이 그들을 거부하는 순간에도 성별, 인종 등에 국한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것은, 절대적이라고 여겼던 기준이 무너지는 시작점으로 자리매김한다.
중학교 도덕 시간에 처음으로 <가타카>를 접하고 긍정적인 충격과 감동을 받았던 때가 기억난다. 그때도 깊은 감정과 여운을 준 영화지만,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일을 도전하거나 하려던 일이 버거워질 때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보곤 한다. 죽을힘을 다해 수영하고 운명을 정하는 건 자신의 몫이라고 또렷하게 말하는 빈센트의 모습을 보다 보면, 나의 역량과 재능보단 그동안의 태도와 습관을 다시 한번 점검하게 된다.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던 일은 해볼 만하다는 용기와 희망으로 변화한다.
재능이 없다고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뛰어난 유전자를 가진 것 같은 타인과의 비교로 마음이 힘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우리의 꿈을 가로막는 건 완벽하지 못한 유전자가 아니라 사회가 규정한 기준에 몸을 끼워 맞추고자 하는 우리 자신이라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생기는 순간 그 자유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