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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마리아, 그녀의 인생을 마주할 용기 - 나의 이름은 마리아 [영화]

배우 마리아 슈나이더의 삶

by 이상아 에디터
2025.11.25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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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나의 이름은 마리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 여인이 우두커니 서있다. 그녀의 뒤로는 수많은 기자들이 그녀의 뒷모습을 찍고 있고, 천장엔 형형색색의 조명들이 둘러싸여 있다. 초록과 붉은색이 섞인 독특한 무늬의 옷을 입은 그녀는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지만 어디에도 눈길이 닿지 않는 듯 알 수 없는 표정이다. 그녀의 눈은 짙은 아이라인 보다 더욱 붉게 충혈되어 있고 입은 세상의 그 어떤 문보다 굳게 닫혀있다. 마치 역사의 한 장면 같은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녀의 눈을 안 마주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그 이름. 마리아 슈나이더의 실제 인생 이야기이다.


 

 

꿈속 보다 더 꿈같은 시작


 

단정한 니트보다 어른스러운 블라우스를 입길 원하는 소녀 마리아는 어머니보다 아버지의 눈을 더 닮았다. 그래서였을까, 홀로 그녀를 키워낸 어머니의 강함보다 아버지가 일하는 영화 현장에서 더욱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배우로 활동 중인 아버지는 마리아를 오랜 기간 끝에 만난 딸보단 애정하는 신인 여배우를 대하듯 했다. 영화 현장을 보여주고 자신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못한 아버지 노릇을 하는 느낌이었을까. 다 커버린 딸과의 유대감을 쌓기 위해 던진 부메랑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와 마리아의 관계로 날아와 꽂혔다.

 

자신들을 버리고 간 아버지를 찾아가는 딸이 못마땅한 마리아의 어머니는 마리아를 내쫓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런 마리아에겐 다정한 삼촌만이 그녀를 아이처럼 대해주었다. 어쩌면 그녀가 영화 현장에 계속 발을 딛던 이유는 사랑을 찾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연인이 필요한 사랑이 아닌 인간으로서 사랑 말이다. 그곳에선 보이지 않던 아버지가 자신을 바라봐 주었고, 다정히 그녀의 눈을 칭찬하는 스태프들이 있었다.

 

꿈속 보다 더 꿈같은 장소에서의 재회가 외로운 그녀의 삶에 잠깐이라도 단잠이 되었을까? 그러나 꿈은 달콤함만 지니지 않는다. 배우로서의 미래를 그리던 그녀에게 닥친 악몽은 단 한순간에 그녀를 추락시켰다. 어느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던 충격적인 사건에 그날부터 마리아는 세상을 몽유하듯 떠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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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갇힌 시선과 믿음


 

영화 초반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 시선을 가게 만들었던 건 바로 ‘거울’ 이었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바라볼 때 쓰이는 거울은 사건 이후 다른 사람을 투영해서 바라보거나, 분장을 할 때만 쓰였다. 그 시작은 바로 마리아가 영화 현장에서 예정되지 않은 장면을 찍을 때부터였다. 문제의 그 장면을 찍을 때 마리아는 바닥에 놓인 작고 각진 유리에 반사되어 마치 그 속에 갇힌 듯하게 연출되었다. 그날 이후로 마리아는 사람을 마주 보지 못했다. 카메라를 통해 바라보거나, 거울에 비친 상대를 바라보거나, 창 너머에 있는 상태로 바라보았다. 거울은 마치 프레임처럼 그녀를 씌우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그녀를 바라보게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슬픈 운명을 갖게 된 ‘메두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본래 아름다운 여성이던 메두사는 포세이돈의 욕정 때문에 아테나에게 가혹한 벌을 내리는데 우리가 아는 독사의 머리와 그녀와 눈을 마주치면 모두 돌로 변해버리는 저주를 받게 된다. 이날부터 메두사는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없어 외딴섬으로 떠나고, 페르세우스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환경에 노출된 메두사와 마리아, 두 여성의 삶이 닮지 말아야 할 부분까지 닮아있는 것에 마음이 아릴 뿐이다.

 

메두사가 외딴섬에서 꼿꼿이 인생을 살아간 것처럼, 마리아도 쉽게 삶을 놓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아무리 작은 현장이라도 자신의 인권에 대해 당당하게 말했고, 예술의 소유물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그녀를 온전히 바라봐 주는 사랑이 마침내 찾아왔고, 거울을 통해 마주하던 두 사람은 믿음 속에 서로를 마주 보며 함께 살아간다. 그럼에도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고 약물에 의존하는 마리아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단 한순간이라도 연인과 함께 힘을 내 악몽 속에서 깨어나려 하던 그녀의 발버둥을 응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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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마리아’들에게


 

2017년 할리우드에선 한 영화 프로듀서의 권력형 성폭력 고발이 이어지며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확산되었다. 여성, 남성 피해자들이 사실을 공유하면서 문화 예술계를 비롯한 여러 산업으로 번졌다. 한국 영화계도 이를 피해 갈 순 없었다. 업계 영향력과 꿈을 좇는 기회 등을 운운하며 부적절한 행동을 강요하는 형태는 2017년이 되어서야 전 세계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제작은 1972년에 이뤄졌고, 당시 마리아는 미성년자인 19살이었다. 그녀는 사건 이후 인터뷰에서 주연 배우인 ‘말론 브란도’와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두 사람에게 모두 강간 받는 기분이었다고 얘기했다. 짧고도 긴 세월 동안 영화배우를 꿈꾸며 자신을 온전히 바라보던 소녀 시절처럼 다시 자신을 꼿꼿하게 바라보려 노력한 그녀의 애틋한 삶이 오늘날의 수많은 마리아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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