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한 개인이 어떻게 인류와 세계를 꿰뚫을 수 있는가.

 

삶 전체를 걸고 장대한 서사를 써내려온 예술가의 궤적이 바로 시대의 한복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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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불: 1998년 이후>展. 이불의 작품을 한국 관객에게 150여 점 선보이는 대규모 서베이전으로, 2025년 9월 4일부터 2026년 1월 4일까지 진행된다.

 

이불은 1980년대 후반 한국의 사회정치적 맥락과 맞물린 급진적, 전위적, 실험적 작업을 선보이며 동시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가 돌아본 인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수많은 가능세계들로 이루어진 미래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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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입구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시야에 보이는 것은, 창을 가득 채우는 은빛 조형물. 입장권을 확인받고 서문을 읽기도 전에 관람객은 이미 이불의 세계 속에 들어와 있다.


작품의 이름은 <취약할 의향-메탈라이즈드 벌룬>. 길이가 17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설치작이다. 20세기 초, 독일 기술 발전의 상징이자 비행선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체펠린(Zeppelin)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졌다. 체펠린은 당시 군사 및 여객용으로 널리 활용되며 전성기를 누렸지만, 1937년 힌덴부르크 참사로 인해 사용이 전면 중단된 모델이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이불은 시대를 통틀어 인류가 가져 온 취약할 의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토피아에 대한 인류의 열망과, 그로 인한 기술의 도전과 발전, 그러나 이를 너무 쉽게 주저앉히는 수많은 실패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진보하려는 비합리적 의지까지. 유토피아에 다가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실패하고 또 얼마든지 취약해질 수 있다는 환영 인사와 같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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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브루노 타우트 (사물의 달콤함을 경계하라)>와 <애프터 부르노 타우트 (형식적인 감정이 밀려온다)> 또한 그러하다. 타우트는 강철과 유리, 항공 기술이 결합된 도시를 제안했던 건축가로, 이불은 그의 유토피아를 이 작품들로 재해석한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구조물들은 미래를 향한 확신으로 가득찬 라퓨타면서도, 동시에 거미줄이 엉겨 붙은 난파선이다. 시간을 표류하는 이 공간은 유토피아를 향한 인류의 희망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결국 유토피아는 닿을 수 없는 이상향임을 자각하고 난 후에는 그저 폐허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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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모어가 처음 정립한 ‘유토피아(utopia)’라는 단어는 그 어원의 해석에 따라 두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한다. 장소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topos 앞의 ‘u’를 무엇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먼저 ‘eu’로 해석한다면 ‘좋은, 행복한’이라는 뜻을 담아 ‘가장 좋은 장소’라고 부를 수 있겠지만, ‘ou’로 해석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ou’는 ‘없다’는 뜻의 그리스어로,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유토피아는 그래서 찬란하다.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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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유토피아를 향한 인간의 이카루스적 날갯짓은 모두 무용한가.


<당신의 차갑고 어두운 눈동자 속 무한한 섬광>은 스테인리스 스틸, 거울, 나무, 알루미늄 등 도시의 건축적 파편들이 복잡하게 뒤엉키고 충돌하며 하나의 불완전한 신체 형상을 이루고 있다.

 

인간은 이토록 연약하다. 진보의 근대적 이상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기계적 결함과 재앙적 참사에 문드러진다. 그럼에도 이상을 향하는 시선이 유한하고 취약한 인간이라는 존재를 빛나게 만든다. 이불이 만들어낸 취약한 인간의 신체가 결국 “무한한 별빛 섬광”을 내뿜듯이, 인류의 불완전함이 결국 찬란함인 것이다.  


이불은 이렇게 인류와 세계를 꿰뚫는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끝까지 집요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그 시선은, 기술이 가져오는 확정적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인류가 향하는 취약한 유토피아에 닿아 있다.

 

 

여기서 ‘포지티브’ 하다는 건 단순히 무언가를 좋게만 본다는 뜻이 아니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시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말해요. 사물의 다양한 성질, 양가적이거나 다층적인 특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간과하지 않으려는 태도죠. 그게 제가 생각하는 긍정성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빛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여러 방식이 있습니다. 빛은 그림자에 의해 드러나기도 하고, 그림자가 짙을수록 빛이 더 강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저는 빛과 그림자 자체에 천착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빛과 그림자 사이의 관계와 역학, 그 상호작용에 관심이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실제 우리 삶과 세계가 그렇게 작동한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 이불 : 마리끌레르 인터뷰(2025)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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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과거로 떠밀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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