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2025_red_book-poster_fin.jpg

 
 

사랑 타령하는 극이 참 좋다. 우리 모두 사랑을 하므로. 사랑 타령하는 극이 아닌 척하면서 사랑 타령하는 극은 더 좋다. 결국 우리 모두의 기저에 사랑이 있다는 메시지를 구성으로도 느끼게 해주는 극인 것 같아서. 여러 사랑이 존재하는 극은 더더 좋다. 누구나 각자의 형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을 보며 이 세상에 사랑이 가득하다고 믿게 되니까.

 

뮤지컬 <레드북>은 이 모든 것을 지닌 극이다. 극을 다 보고 한 문장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 러브 유'도 좋고, ‘러브 마이셀프'도 좋고, ‘나 평생 사랑을 간직할게'도 좋다!

 

 

이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사랑이 깊고 진하게, 그러나 희망차고 따뜻하게 그려져 있는 극. 그래서 ‘너무 좋은 극'이라는 생각밖에 들 수 없던 극, <레드북>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는 것 


 

 

"왜 사람들은 내가 솔직하면 솔직할수록, 날 싫어하고... 내게 화를 내는 걸까요? 이게 나인데."

 

 

1막 중후반부 안나는 울며 이렇게 말한다. 눈물이 핑 돌았다. 요즘 내가 하는 생각과 너무 맞닿아 있어서.

 

안나는 서른이 얼마 안 남은 여성이다.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대화하며, 그래서 19세기 런던에서 끊임없는 투쟁을 하며 살아간다. 취업을 하나 할 때도, 빵을 하나 살 때도 일상 속에서 편견과 고정관념에 맞서 싸우며 살아간다. 모두가 그녀를 손가락질하고 욕해도 당당하게 그녀의 의견을 피력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그렇게 당당해보이던 안나도 스스로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 아무리 굳세고 견고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도 주변의 몰매에 쓰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가 날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에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 뼈저리게 외로움과 괴로운 감정이 함축적으로 와닿아서, 마음이 아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줄 사람'을 찾는다는 것이 신기루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니, 그냥 사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루인 것 같다. 나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이 너무 어려워 마음이 툭툭 무너진다. 하물며 남이 사랑해준다는 것이 온전히 가능한 일일까? 정답이 애초에 없는 난제를 끌어안고 평생을 바치는 수학자의 마음이 이런 것 아닐까.

 

<레드북>이 좋은 점은, 그렇기에 이 문제를 그냥 남으로 해결하는 뻔한 방식을 고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한테서 상처 받았어? 그럼 남이 다시 사랑해주는 것으로 풀어!’같은 얕은 해결법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만큼이나 깊은 문제이니만큼 본질을 파고드는 것으로 해결한다. 안나는 위로와 답을 그 누구도 아닌 자신, 과거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에게서 찾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해도 좋아할 수 있어요 


 

극 중 여자 주인공인 안나와 남자 주인공인 브라운은 시도때도 없이 싸운다. 대화를 할 때마다 의견이 충돌하고, 의도가 다르다. 심지어 다른 의도에 잠시 속거나 그런 체하며 상황이 무마되는 것이 그 둘의 사이가 가장 좋았을 때일 정도이다. 시대적 배경을 감안해도, 신사를 지향하는 브라운과 주체성을 논하는 안나는 가치관 자체가 다른 토대에 있다.

 

그런데 이 둘이 사랑을 한다.

 

 

“좋아해요. 나도 이런 일이 처음이라 확실하진 않은데, 느낌이 그래요.”

“말도 안 돼.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네, 못해요. 아마 평생 못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이해할 수는 없어도, 좋아할 수는 있는 거잖아요.”

 

 

고백하는 순간에, 아마 평생 너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는 말을 하는 것이 너무나 신선했다. 평생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너인데도, 네가 좋다는 말. 평생 이해할 수 없대도, 네가 좋다는 말. 평생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대도, 네가 좋다는 말. 너는 머리로 이해가 안 돼도 마음이 좋다고 하는, 그런 사람.

 

사실 나는 좀 삐뚤어지게 보는 경향이 있어서, 누군가 ‘너를 평생 이해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모나게 해석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나를 이해할 자신이 없다는 거지? 그 정도로 나한테 말을 할만큼, 나를 이해할 의지가 없다는 거잖아.’ 이런 식으로, 곡해하고, 최악의 해석까지 내놓을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레드북에서 이 말은 굉장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사랑의 묘미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어쩌면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사랑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동시에 내가 굉장히 좋아했던 드라마의 대사도 떠올랐다.

 

 

이상하다.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

이 말은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게 상당히 부정적인 이미지였는데,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준영이를 안고 있는 지금은 그 말이 참 매력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더 얘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린 지금 몸 안의 모든 감각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 아니구나, 또 하나 배워간다.

 

-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건 아니라는 감각을 한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누군가 이해되지 않을 때 함부로 미워하고 마음껏 답답해했다. 이해할 수 없어도 사랑한다는 게 진짜 사랑일 수 있다는, 조금 더 포용적이고 따듯한 시선을 잠시 잃었던 것 같다. 메마르게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잊혀진 따뜻함을 노크해주는, 그런 사랑을 극을 통해나마 느낄 수 있어 마음이 차올랐다.

 

 

 

나만의 너를 평생 간직할게 


 

영원의 사랑이란 없다고 믿는 나에게, 바이올렛과 헨리, 그리고 로렐라이는 너무나 큰 감동이었다. 먼저 하늘나라에 간 사람을 나중에 만나게 되었을 때 그가 원하던 경험을 실감나게 전해주기 위해 그 사람이 가고 싶었던 곳을 여행하는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그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어쩌면 사랑이란 폭력적인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나만의 너를, 나만의 사랑을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사랑도 있다는 것을 보니 마음이 촉촉해졌다. 모두가 이렇게 각자 사랑을 품고 산다면, 어쩌면 이 세상은 더 따뜻할 수 있겠다고. 그래서 나도 선한 사랑을 품고 살아가야겠다고, 그런 생각을 한 톨이나마 더해주는 극, <레드북>이었다.

  

 

 

20250919201139_owyikgau.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