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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단어이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살아 있는 우리는 죽음을 직접 경험할 수 없기에, 언제나 그것을 ‘남의 일’로 여긴다. 누군가의 부고를 들을 때조차 느끼는 슬픔 뒤에는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은밀한 안도감이 스며든다. 그러나 그 죽음이 어느 날 내 삶을 향해 조용히 다가오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삶의 진짜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바로 그 ‘대면’의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이반은 성공한 법관으로, 사회적 명성과 안정된 가정을 가진 인물이다. 그러나 병으로 쓰러진 순간, 그는 세상의 냉혹한 이면을 목격한다.

 

동료들은 그의 부고를 듣고 슬퍼하기보다, 빈자리를 누가 차지할지를 먼저 계산한다. 가족은 그의 고통을 이해하기보다 불편해하고, 아내는 여전히 사교와 체면에 몰두한다. 사회의 기준에 따라 완벽히 살아왔다고 믿었던 이반의 삶은, 죽음 앞에서 허망한 껍데기로 드러난다.


그의 곁을 끝까지 지킨 사람은 단 한 명, 하인 게라심이다. 그는 이반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묵묵히 곁을 지킨다.

 

“아프지 않다고 해도 다 해드릴게요.”

 

게라심의 이 한마디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죽음을 앞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함께 견디는 진심’의 언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인물이 이반에게 가장 깊은 인간적 구원을 건넨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묻는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피로 맺어졌다고 해서 반드시 마음까지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혈연이 없어도, 게라심처럼 한 사람의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일 줄 아는 존재가 더 ‘가족 같은 사람’일 수 있다. 우리는 흔히 ‘가족이니까 당연히 이해해줄 것’이라 믿지만, 이반의 죽음은 그 믿음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톨스토이는 또한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삶의 허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반은 세련된 집을 꾸미는 데 집착하며, 그것이 품위 있는 삶의 증거라 여겼다. 하지만 바로 그 집에서 다친 상처가 그의 죽음을 불러왔다. 겉으로는 가장 완벽해 보였던 공간이, 실은 그의 삶을 병들게 한 것이다. 화려한 겉모습에 매달린 채 진짜 행복을 잊은 현대인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죽음을 두려워하던 이반은 마지막 순간, 오히려 그 속에서 평온을 발견한다. 그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한 삶의 시작임을 깨닫는다. 그 장면에서 우리는 역설적인 진리를 마주한다. 죽음을 인식할 때에야 비로소 삶이 선명해진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사건이지만, 동시에 가장 강력한 성찰의 계기이기도 하다. 실존주의자들이 말하듯,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게 된다. 죽음의 존재는 삶을 더욱 절실하게 만들고, 지금 이 순간의 의미를 더욱 깊게 한다.


이반은 죽음을 통해 자신이 외면했던 진실에 도달했다. 그는 늦게나마 깨달았다. 진정한 삶이란 체면이나 지위가 아닌,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함께 견디는 데 있다는 것을. 우리 역시 언젠가 그 거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전에 묻자.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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