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사춘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춘기를 지나오는 동안 누구든 자신에게 실망하고, 친구를 부러워하고, 누군가를 질투했을 것이다.
<치이는 조금 모자라>는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연재된 8화 분량의 만화이다. 단행본으로는 딱 한 권의 단편으로 발행되었다. 2015년에 '이 만화가 대단하다!' 여성편 1위를 차지했으며 작가인 아베 토모미는 2014년에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에서 이 작품으로 신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는 사람의 부정적인 마음과 우울하고 어두운 감정을 귀여운 그림체로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인물은 중학교 2학년생인 미나미야마 치에 라는 여자아이다. 작품의 제목에서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듯, 치에는 중학교 2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사고나 행동, 교육 수준이 초등학생에 머물러 있다. 작중 치에가 220 사이즈의 신발을 사려는데 치에의 발이 너무 작다보니 220사이즈 신발도 신을 수가 없어서 치에가 엉엉 우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보아 치에는 발달장애를 겪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 책에는 '발달장애', '지적장애'를 비롯한 치에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직접적인 단어가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치에의 동급생들도 모두 치에를 친근하고 평범하게 대해준다. 말그대로 '조금 모자라지만 착한 친구' 정도로 치에를 대하고 있다.
사실 이 만화의 진(眞) 주인공은 치에가 아니다.
실질적 주인공은 바로 치에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는 소꿉친구 코바야시 나츠다. 나츠는 겉보기에는 치에를 가까이에서 보살펴주고, 배려심이 깊으며 얌전하고 다정한 여학생이다. 하지만 나츠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경제적 부분에 대한 심한 열등감을 갖고 있다. 항상 옆에서 자신이 챙겨주고 도와줘야 하는 치에를 보며 미묘한 우월감을 느끼고, 시니컬하고 당당한 성격인 아사히를 동경하며 그런 아사히가 자신들과 함께 다녀 주는 것에 대한 안도감을 느낀다.
또한 소위 '잘 나가는' 친구들에 대한 자격지심과 공포를 가지고 있어, 같은 반의 불량학생인 후지오카와 그 친구들을 피한다. 또 주위 친구들이 하나 둘 이성교제를 시작하는 것에 초조함을 느끼며 남자친구가 없는 자신을 자책하고, 주위의 선망과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이런 심리묘사가 무겁고 강하게 나오기 때문에 나츠가 작중 가장 많은 서사를 가지고 있으며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이다.
어느 날 나츠는 하교 후 들른 역 앞 잡화점에서 예쁘고 반짝반짝한 리본을 보게 되는데, 5천 엔(한화 약 5만 원)이라는 금액은 중학생들이 지불하기에는 너무 큰 액수였다. 나츠는 저 예쁜 리본을 갖게 된다면 반 친구들의 관심과 호감을 한 번에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츠는 음료수를 사먹을 돈도 아껴가며 저금하고 있지만, 아직도 저 리본을 사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다. 나츠는 후지오카가 악의 없이 툭 던진 말에, 인생 처음으로 물건을 훔치고 싶다는 욕망을 느낀다.
그 무렵, 교실에서 절도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농구부 코치 선생님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농구부 학생들이 돈을 모으는데, 그렇게 모아진 3천 엔이 사라진 것이다. 모두가 하교한 후인 방과 후에 돈이 사라졌고 하필 그날의 청소 당번이 치에였기 때문에 후지오카 무리는 치에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 때 나츠는 너무 두렵고 당황스러운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어버린 데 비해, 아사히는 치에가 그럴 리 없다고 주장하며 치에를 감싼다. 나츠는 그 장면을 보고 당당하고 의리 있는 아사히를 더욱 동경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돈을 훔친 사람은 치에가 맞았다. 치에는 사고가 성장하지 못해서 절도행위에 대한 죄악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치에는 항상 나츠에게 도움받아 왔고, 그래서 나츠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말을 친언니로부터 들어왔기 때문에 순수한 의도로 3천 엔을 훔쳐서 나츠에게 선물한다.
나츠는 충격받지만, 이때까지 억눌러 왔던 열등감과 리본을 사고 싶은 욕구가 폭발하면서 치에에게 천 엔을 받는다. 천 엔이 있다면 자신이 모은 돈과 합해 리본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꾀병을 부려 학교를 빼먹고선 잡화점에 가서 그 문제의 리본을 산다. 다들 가족이나 애인으로부터 무언가를 선물 받는데 자기는 그런 경험이 적어서, 한번쯤은 갖고 싶은 걸 가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다음 날, 나츠는 어제 산 그 귀여운 리본을 착용하고 들뜬 마음으로 학교에 간다. 문을 여는 순간 아이들이 자신을 향해 환호하고, 남학생들이 자신에게 반하고, 학급의 인기인이 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가득 차서 문을 연다. 그러나 현실은 아무도 나츠의 리본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반 친구들은 물론이고 아사히마저 나츠의 리본을 칭찬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츠는 근본적인 허무함과 콤플렉스를 느끼며 그 리본을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버리고, 보건실에 가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누워 있는다.
나츠가 보건실에 누워 있는 동안, 교실에서는 돈을 훔친 범인이 치에였음이 밝혀진다. 치에가 그런 일을 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던 아사히는 당장 치에를 끌고 후지오카 패거리 애들에게 가서 치에의 잘못을 말하고 진심으로 사과한다. 아사히의 성원에 치에는 2천 엔을 돌려주지만 이미 나츠에게 주었던 천 엔은 없다. 치에는 울며 착한 아이에게 착한 일을 해주고 싶었던 것 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3천 엔 중 나츠에게 줘버린 천 엔은 사실 후지오카가 낸 돈이었고, 여태껏 불량학생인줄로만 알았던 후지오카가 치에에게 ‘갖고 싶은 건 다 가질 수 없는 게 인생’이라며 치이를 용서해준다. 후지오카는 치에에게 게임기를 빌려줄테니 집에 놀러오라고 하면서 달래주기까지 한다. 후지오카에겐 동생들이 많아 치에를 보면서 동생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이는 나츠의 자기혐오와 크게 대비된다. 나츠는 자신이 평생 가난할 것이라 생각하고, 이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며 포기하고 있었던 반면 후지오카는 가난하더라도 현재를 즐겁게 살 수 있다며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지오카의 용서를 계기로 나츠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은 큰 변화를 겪고 한층 더 성장하게 된다.
그렇게 후지오카 패거리와 아사히, 치에는 서로 사과하고 마음의 벽을 허물며 가까워진다.
하지만 문제는 나츠다. 나츠는 보건실에 누워 있었기 때문에 치에가 돈을 훔쳤다는 것이 밝혀진 것, 그리고 그게 용서받은 것 등을 알지 못했고 치에가 돈을 훔쳐서 나츠에게 준 것을 아사히에게 털어놓았다고 오해하게 된다. 치에마저 약속을 어기고 자신을 부정했다고 여긴 나츠는 큰 절망에 빠진다.
아사히를 비롯한 모든 반 친구들이 자신을 따돌리고 외면할 것이라고 생각한 나츠는 주말에 집에 틀어박혀 있다가 치에가 사라졌다는 전화를 받게 된다. 치에를 찾아 해메던 도중, 후지오카네와 함께 놀고 있는 아사히를 우연히 보게 된다. 이를 본 나츠는 또 다시 절망한다. 항상 자신들의 곁에서 든든하게 함께 할 거라 생각했던 아사히가, 나츠가 그토록 싫어하는 후지오카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치이마저 없어지면 자신은 정말 혼자라고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던 나츠 앞에 치이가 나타난다. 알고보니 나츠는 혼자서 공연을 보기 위해 전차와 버스를 타고 다른 동네에 다녀온 것이었다. 항상 ‘조금 모자라’다고 생각했던 치이는 어느새 스스로 대중교통을 타고 돌아다닐 만큼,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발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츠는 여전히 후지오카를 싫어하고, 후지오카와 함께 놀러다닌 아사히는 더 이상 자신들과 놀 수 없다고 생각해 치에에게 아사히와 놀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치이가 자신의 옆에 여전히 붙어있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나츠는 아직 발전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나츠와 치이가 마주보고 미소를 지으며 만화는 끝난다.
줄거리를 간단하게 나열했지만, 이 만화의 백미는 나츠의 심리 묘사에 있다. 이 세상에 타인을 부러워하고 시기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작가 아베 토모미는 누구나 한 번은 겪어 볼 만한 자격지심, 시기질투, 절망과 우울, 수치심 등의 감정을 매우 직관적이고 섬세한 연출로 풀어내고 있다. 마음 아주 깊은 곳에 감추어두고 꺼내지 못할 만한 생각과 감정을 낱낱이 보여주는 나츠를 보며, 독자는 자신의 허물을 강제로 들여다보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소녀만화다운 귀여운 그림체와 절망적인 심리 묘사가 시너지를 일으켜, 이 만화의 몰입감은 더욱 높아진다.
작중에서 나츠가 '못난 딸이라 미안하다'고 중얼대는 장면은 독자의 심장을 아리게 한다. 자기혐오와 열등감,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자책감은 많은 여학생이 성장 과정에서 겪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이 작품은 그 감정을 진지하게 조명한다. 더 이상 여자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책하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