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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역작 '모노노케 히메'가 22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다.

 

코로나19 이후, 과거 명작들이 잇따라 재개봉하며 관객과 재회하고 있다는 점은 반가운 흐름이다. OTT를 통해 집에서 영화를 보는 시대이지만, 영화는 본래 극장 상영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창작물이기에 감상의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작품은 지브리 재개봉작 중 최초로 IMAX 포맷으로 상영되어, 더욱 압도적인 감각을 선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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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노케 히메'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이기적이고 추악한 얼굴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아시타카'의 팔에 남겨진 저주는 인간에 대한 원한과 증오로부터 태어났다.

 

이쯤되면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한 사람이 남기는 탄소발자국만 해도 나무 수천 그루가 1년 내내 흡수해야 할 양에 달한다. 즉, 인간은 존채 자체만으로도 자연에 위협이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인류가 문화적·경제적 욕망에 따라 빠른 속도로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0년 기준으로 콘크리트·강철·플라스틱 등 인류가 만든 물질의 총 질량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 질량을 넘어섰다.

 

2040년에는 그 규모가 생물량의 세 배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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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라바 마을'은 산업 발전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 집단을 상징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은 사절한다. 생태계 파괴에 대한 결과를 예지하고 있으면서도 선택적으로 파괴적 행동을 하며, 전 지구적 규모로 자연을 거스르는 생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그러나 '모노노케 히메'에는 명장면이 있다.

 

"너는 아름다워."


그렇다. 인간은 추악함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지닌 존재다. 인간을 증오하고 스스로의 정체성마저 부정하는 '모노노케 히메' 역시 인간이라는 사실을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의 눈으로 보는 인간은 아름답다.

 

이 모순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비극이자 희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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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파괴적 존재로서의 독립’이 아니다.

 

원한과 증오는 결국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총체적 위기를 불러온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전쟁 소식이 들려온다. 비참할 따름이다. 전쟁은 막대한 환경 파괴를 동반하는 비극적인 행위다.

 

'아시타카'의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함께 살아가는 거'다. 이러한 공생주의적 가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넘어 외부 세계의 모든 관계에서 필요하다.

 

유일한 희망은 인간이 스스로 공존을 선택할 수 있는 생물이라는 사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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