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퍼 팝(hyper pop)’이라는 음악 장르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가?
하이퍼 팝은 과장된 음향과 전자 음악적 특성을 담은 팝으로, 기존 팝의 공식과 멜로디를 디지털적 과장과 왜곡으로 확장한 21세기형 실험 팝이라 할 수 있다. 글리치한 비트와 과장된 음향, 예측 불가한 전개가 특징이다.
Chalie XCX, BRAT
하이퍼 팝을 논할 때 이 음악을 빼놓을 수는 없을 터. 찰리 XCX는 하이퍼 팝의 유행을 선두에서 이끈, 하이퍼 팝의 여왕으로 불린다. 그런 그가 2024년 여름 앨범 ‘BRAT’을 발매하며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달성했다. 찰리 XCX는 인터넷 밈과 클럽, 레이브 파티 문화의 혼합된 에너지를 담아내면서, Z세대가 느끼는 불안과 불완전함, 그리고 자유로운 파티 속 해방감과 그 뒤에 남는 허탈함까지 포착했다. 즉, 찰리가 만들어낸 소리는 듣는 순간 단순히 귀를 자극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대의 감정과 정서를 오롯이 전달하는 경험으로 확장된다.
BRAT은 단순한 음악 앨범을 넘어, 2024년 여름을 정의한 문화적 현상을 낳아 ‘Brat Summer’를 탄생시켰다. 내 모니터의 화질이 안 좋은 건지 의심하게 만드는 형광 연두색 배경 위 흐릿하게 적힌 앨범 타이포그래피도 큰 주목을 받았다. 이렇게 BRAT은 청각과 시각을 동시에 자극하며, 장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아도, 듣는 순간 그 에너지를 체감할 수 있게 만드는 앨범이다. 듣는 이로 하여금 찰리 XCX가 왜 하이퍼 팝의 아이콘인지, 왜 이 장르가 지금 세대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지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만든다.
찰리 XCX가 2024년 여름 ‘BRAT’으로 몰고 왔던 연둣빛 물결을 타고, 한국에도 하이퍼 팝이라는 장르가 더 이상 낯설지만은 않게 되었다. ‘BRAT’이 발매된 지 1년이 조금 넘었고, 찰리 XCX가 내한 공연을 펼쳤고, 뜨거운 여름의 열기가 조금은 식어가려는 듯한 이 시점에서 한국에서 하이퍼 팝이라는 장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두 명의 아티스트를 소개한다.
이브(Yves), I Did
이브(Yves)는 한국의 여성 솔로 가수로, 걸 그룹 이달의소녀 출신이다. 기존 소속사와의 분쟁 끝에 몸담았던 그룹을 떠난 그는 힙합과 알앤비를 주력으로 다루는 소속사 ‘파익스퍼밀(PAIX PER MIL)’과 계약하며 2024년 솔로 가수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특히나 개성 있는 세계관과 프로듀싱으로 주목받았던 다인원 걸 그룹 멤버의 다음 행보로서는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약간의 염려를 동반한 기대를 받으며 발매한 첫 EP ‘LOOP’에서 그는 케이팝의 전형을 벗어난 케이팝을 선보이며 성공적인 솔로 데뷔를 마쳤다.
2집 ‘I Did’로 이브는 자신이 앞으로 나아갈 음악적 방향성을 한층 분명히 보여주었다. 타이틀곡 ‘Viola’는 엷고 차가운 목소리와 몽환적인 전자 음향, 그리고 중독적인 멜로디가 어우러져, 듣는 순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음악을 성공적으로 뒷받침하는 뮤직비디오 또한 눈길을 끌었다. 수록곡 ‘Dim’은 틱톡 등 SNS에서 바이럴되며 이브의 음악적 감각과 실험성을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켰다. 결과적으로 이브의 ‘I Did’는 그 음악성을 인정받아 2025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케이팝 음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이브는 그 후 솔로 가수로서의 세 번째 발걸음인 EP ‘Soft Error’를 지난 8월 7일 발매했다. 앨범 발표 전 선공개되었던 ‘White cat’은 고양이의 은유를 사용하여, 과거의 화려한 이미지를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탐색하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다. ‘White cat’과 함께 더블 타이틀을 장식한 ‘Soap’은 현재 가장 뜨겁게 주가를 달리고 있는 해외 아티스트 핑크팬서리스(PinkPantheress)의 피쳐링을 등에 업고 기존 케이팝과 다른 이브만의 독자적인 노선을 공고히 했다.
에피(Effie), E
에피는 2002년생으로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매우 큰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루키이다. 통통 튀는 곡의 전개와 비트를 가지고 노는 듯한 실험적인 음악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그는 사운드클라우드에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2020년 싱글 ‘Highway’로 정식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특히 맥북으로 촬영한 로파이 감성의 ‘down’ 뮤직비디오는 온갖 이모티콘과 이미지로 범벅된 비주얼과 잘 맞아떨어지는 음악이 인기를 끌며, 2025년 8월 기준 57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한국인 아티스트로서 자연스럽게 케이팝의 영향을 받은 에피는, 이를 자신만의 음악적 언어로 재해석하며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했다. 2025년 3월 발매된 앨범 ‘E’는 에피의 정체성과 감성을 투명하게 담아낸 작품으로, 가사와 뮤직비디오, 앨범 아트 등 모든 면에서 한국적 요소를 섬세하게 녹여냈다. 앨범 표지는 빅뱅의 ‘STILL ALIVE’ 앨범 표지를 연상시키며, 수록곡 ‘코카콜라’의 가사에는 ‘electric shock from head to toe’ ‘I’m super shy, shy', ‘집에 가지 마, 마’ 등 대표적인 케이팝 아이돌의 가사를 차용하였다. ‘maybe baby’의 뮤직비디오에는 태극기가 등장한다. 또한 더블 타이틀 ‘put my hoodie on’은 2010년대 초반 케이팝 음악을 떠올리게 한다.
에피의 행보를 보면, 한편으로는 참 영리하다는 생각이 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내는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그는 자연스럽고 감각적인 뮤직비디오를 꾸준히 직접 편집하며, 자신만의 세계관을 시각적으로도 선보이고 있다. 최근 발매한 EP ‘pullup to busan 4 morE hypEr summEr it's gonna bE a fuckin moviE’의 수록곡 ‘CAN I SIP 담배’에서는 휘몰아치다 못해 폭발할 것만 같은 과잉된 비트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후렴구, 파격적인 원숭이 소리로 듣는 이의 귀를 사로잡았다. 에피는 단순히 음악을 만드는 것을 넘어, 자신이 속한 인터넷 세대의 시선을 효과적으로 붙잡는 법을 정확히 아는 아티스트다. 이런 면모 덕분에, 에피의 성장과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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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소개하고자 하는 가수들을 용이하게 분류하기 위해 하이퍼 팝이라는 장르를 사용했다. 그러나 하이퍼 팝이라는 명칭부터가 실험적이고 과장이 된 음악들을 모아 부르는 용어로서 시작된 만큼, 하이퍼 팝이라는 장르로서 이들을 한데 묶으려는 시도를 애써 할 필요는 없으리라. 그들은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취향을 토대로 재미있는 음악들을 만들어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듣는 이는 때로 귀로, 때로 몸으로 그 과감한 사운드를 경험하며, 음악이 지닌 자유와 즐거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하이퍼 팝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주는 자유롭고 실험적인 에너지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이 아티스트들의 음악은, 앞으로도 우리에게 새로운 자극과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결국 이 장르는, 장르적 정의보다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자기만의 색깔을 마음껏 표현하는 즐거움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