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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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4의 물빛을 지나 2025의 녹빛으로 — 두 번의 랑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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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8월에도 실내악 축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슈만을 주제로 한 2024년 줄라이 페스티벌이 끝난 직후였다. 그땐 인스타그램 알고리즘도 내 편이 아니었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몰랐기에 어떤 클래식 공연을 봐야 재미있을지 감조차 오지 않던 시기였다.


그저 “임동민 바이올리니스트가 나온다”, “이든 콰르텟이 나온다” 같은 아는 이름들이 공연 소식에 뜨기만을 막연히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또 하나의 여름 축제가 바로 '랑데뷰 드 라 무지크 페스티벌'이었다.


스테이지원이 주최·주관하는 한여름의 실내악 축제 ‘랑데뷰 드 라 무지크 페스티벌 2025’는 2025년 8월 19일부터 22일까지 예술의전당과 거암아트홀에서 열렸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이한 이번 축제의 주제는 'Boundless Harmony: 무한한 어울림'이다. 작년 포스터는 물빛의 색이었는데, 올해는 녹빛과 노란빛이 엮인 결이어서 눈에 확 들어왔다.


2024년의 랑데뷰 레퍼토리는 무엇이었더라? 다시 찾아보니 베드리흐 스메타나, 윌리엄 그랜트 스틸, 찰스 아이브스… 지금 봐도 생소한 이름들이 한가득이다. 그때의 나는 곡도, 작곡가도 전혀 모르면서 그냥 “재밌겠다!”라는 마음 하나로 예습을 했었다. 생각해보면, 그런 레퍼토리 덕분에 그동안의 외젠 이자이, 바르톡, 쉬니트케까지 버텨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클래식 전공자를 제외하고, 이 작곡가들의 이름을 들어본 비전공자 혹은 일반인이 얼마나 될까? 솔직히 거의 없다고 본다. 교과서에서도, 클래식 입문서에서도 잘 다루지 않는다. 보통은 라흐마니노프, 차이코프스키, 말러, 드뷔시, 베토벤… 이런 이름들이 전부 아니던가. 나도 슈만으로 현악기에 입문했지만, 그다음 코스가 다름 아닌 스메타나 피아노 트리오였다. (허허) 어디, 2024년의 내가 뭘 느꼈는지 살짝 되짚어볼까?


 

스메타나 — 피아노 삼중주 g단조, Op.15

 

처음 이 곡을 예습했을 때, 자식을 잃은 부모의 눈물과 절규, 회상이 메인 테마라는 사실을 알고 들었다. 사실 도입부에서는 연주자들을 구경하느라 바빴고, 곡을 ‘듣느라’ 정신이 없었다.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떠올리는 건 사치였고, 사무치는 감정이 쏟아진 음표들에 빨려 들어가듯 ‘듣느라’ 바빴다.

 

그들의 삼중주는 정말 딥블루였다. 하얀 모래알이 흩뿌려진 짙은 네이비빛 세 갈래가 악보의 진행 방향을 따라 오른쪽으로 빠르고 강하게 달렸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모두 검붉은 눈물보다는 시리도록 차가운 슬픔을 담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공연장 안의 에어컨 바람과 함께 더 춥게 느껴졌다. (소… 손 시렸다) 3악장에 도달했을 때는 너무 아쉬워 다시 듣고 싶을 정도였다.

 

 

원래 뭘 모를수록 용감하지 않다 했던가. 클래식 이론 지식 수준이 아주 낮으니 이 곡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의미 있는지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흥미로움’에만 시선이 꽂혀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거다. 사람이면 사람, 소리면 소리, 흐름이면 흐름. 좋아하는 색깔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다.


작곡 배경이나 작곡가의 의도는 연주자들이 챙겨줄 테니 우리는 편하게 듣기만 하면서 머릿속에 도화지 한 장을 깔아두면 충분하다. 물론 관련 정보를 미리 알아두면 공연장 안에서 추측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으니 유익하다. 하지만 그걸 꼼꼼히 챙겨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차피 클래식 음악 자체가 대체로 불친절한 편인데, 우리도 조금쯤 불친절해도 되지 않을까. 음악에 정답은 없다. 내가 좋으면 좋은 거고, 낯설면 낯선 대로 당황하는 재미가 있다. 공연 중 졸리면 몰래 명상 시간을 가져도 뭐 어떠랴.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 거의 하지 않던 SNS를 일상의 일부로 쓰기 시작하니 좋은 점이 있다. 언제부터 어떤 공연에 기대를 쌓아왔는지 기록이 남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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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작년 8월 22일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니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 1열이 그렇게 무대와 가까운 줄 모르고 턱 앉았다가 무대와 한참 낯을 가리고 있었다. 24일 리사이틀홀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그때까지는 모든 클래식 공연장이 엄청 클 줄 알았다. 그런데 여러 장소를 경험해보니, 의외로 아늑한 공연장이 더 많았다. 멀게만 느끼고 우러르기만 했던 클래식이 뭐야, 이렇게 가까워? 뭐 이리 친절하고, 다 보여주잖아?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턱시도나 드레스 차림으로 나를 내려다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레드카펫을 쫙 깔아놓고 그 위에 의자를 놓아둔다. 멀리 떨어져 있을 줄 알았던 ‘고전’이 막상 문 안으로 들어오니 내 바로 옆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처음엔 얼마나 당황했던지. (일찍 가면 퍼스널 스페이스 확보 불가능)


그것도 이제는 예전일이라는 게 웃기다. 줄라이 페스티벌만 해도 어떤가. 맨날 낯가리면서도 결국 맨 앞 정중앙에 앉는다. 아, 어쩔 수 없다. 소리의 한가운데서 직방으로 맞으려면 그럴 수밖에…


가끔 친구들이 나와 공연에 동행해주는데, 아무 생각 없이 맨 앞자리에 자리를 잡은 나 때문에 친구들이 반강제로 무대와 아주 가까운 상석에서 공연을 보게 될 때가 있다. 지난 7월에는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본 뒤 재미삼아 서로 교환 편지를 썼는데, 친구가 써준 편지를 읽다가 너무 웃겨서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너의 클래식 사랑 응원할게. 

때로는 옆에서… 

어쩔 땐 뒤에서(뒷좌석)…”


작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다. 공연장 로비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시간 참 빠르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났다.


그때는 “내가 뭘 느낄까? 뭘 보게 될까?” 하는 생각조차 없이 어깨를 으쓱이며 문을 열었는데, 이제는 “아, 큰일 났다. 공연이 밀려든다!”라는 생각뿐이다. (배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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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다시 2025년으로 돌아오자. 8월 20일에는 어떤 이들의 연주였던가? 바로 요즘 가장 관심 있는 연주자들의 무대였다. '경이로운 환상'을 주제로 이든 콰르텟과 피아니스트 김송현이 무대에 올랐다. 이든 콰르텟은 바이올린 정주은·이소영, 비올라 임지환, 첼로 정우찬으로 구성된 현악 4중주 팀이다.


올해 새롭게 합류한 이소영 바이올리니스트의 공식 첫 이든 데뷔 무대이기도 했고, 얼마 전 줄라이 페스티벌에서 좋은 앙상블을 보여준 김송현 피아니스트도 함께한다니 드보르자크가 더욱 기대됐다.


프로그램은 네 작품으로 구성됐다. 1부는 쿠르탁의 〈12개의 마이크로루드〉, 라흐마니노프 현악 사중주 제1번 중 2·3악장, 베토벤의 〈대푸가〉로 이어졌다. 첫 곡은 1분 안팎의 극도로 짧은 12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현악 사중주 1번은 그가 열일곱 무렵에 쓴 초기작으로, II·III악장만 전해졌다.

 

베토벤의 〈대푸가〉는 원래 현악 사중주 Op.130의 마지막 악장이었지만 난해하다는 이유로 이후 독립 작품(Op.133)으로 출판됐다. 2부에서는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5중주 제2번이 연주되었는데, 체코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선율이 무대를 채웠다. 

 

그날 나는 평소보다 조금 여유롭게 남부터미널역에 도착해 근처 카페에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예술의전당으로 들어섰다. 작년만 해도 “난 지금 ‘예술’의 ‘전당’에 왔다!”라는 설렘이 있었는데, 이제는 한 달에도 몇 번씩 드나들다 보니 옆집 안방처럼 돌아다니는 스스로가 웃겼다. 그래도 인춘아트홀은 1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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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예술의전당 음악당에 들어서면 가장 중앙에 콘서트홀이 있고, 양옆으로 리사이틀홀과 IBK챔버홀이 보인다. 그중 로비 중간쯤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 인춘아트홀이 있다. 어린 시절 책상 밑에 담요를 두르고 만든 비밀 아지트 같은 느낌이랄까. 계단을 내려가 살짝 좁은 복도를 지나면 길쭉한 로비 끝에 공연장이 있다.


티켓과 함께 받은 프로그램북에는 이번 축제 예술감독이자 피아니스트 김혜진의 인삿말이 담겨 있었다. ‘무한’이라는 개념을 단순한 수치나 크기를 넘어, 춤추듯 흐르는 아름다움 속에서 서로의 목소리가 경계를 넘어 어우러지는 예술적 이상으로 풀어냈다고 했다. 세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연주자들이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무대를 함께 만들어가고자 한다는 설명이었다.


공연 30분 전. 오늘의 추억을 담을 카메라 하나와, 쿠르탁의 12개 키워드를 적은 메모지를 무릎 위 가방에 올려놓고 무대 위 조명을 멍하니 바라보며 기다렸다. 오랜만에 다시 맞이하는 나의 ‘시작점’ 아니던가.


이제 공연 관람에 제법 익숙해진 나는, 새로워진 이든 콰르텟이 오늘 어떤 추억을 선사해줄지 기대하며 그 순간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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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2. 열두 개의 조각, 하나의 숨


 

죄르지 쿠르탁 — 현악 사중주를 위한 12개의 마이크로루드, O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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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이 곡은 짧은 토막들로 구성되어 있고, 선율보다는 짧은 제스처나 소리의 표정을 들어보라는 조언이 있어서 공연장 출발 직전에 인터넷에서 키워드를 하나씩 적어갔다. 확실히 이런 1분도 안 되는 곡들은 가이드 단어가 있으면 몰입이 훨씬 빨리 된다.


곡이 바뀔 때마다 미리 적어둔 메모장을 들어 확인했는데, 나는 아직 12번째 단어에 닿지 않았는데 연주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관객에게 인사해서 웃음이 났다. (어, 난 아직 안 끝났는데?)


어디 Newburyport Chamber Music Festival에서 이 곡을 위해 작성된 해설을 힌트 삼아 적어둔 단어들로 쿠르탁을 마주해보자. 정답은 없으니 자유롭게 상상하면 된다. 이든 콰르텟은 과연 어떤 해석으로 쿠르탁의 조각들을 그려냈을까.


1) 대륙의 이동

가장 선명히 기억에 남는 첫 장면이 있다. 소리로 이미지를 불러오기 위해 세 연주자가 가만히 첫 타자를 기다리고 있었고, 정우찬 첼리스트가 독특하게 활을 현에 얹었다.


보통 첫 시작은 끝쪽에서 현을 타고 올라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는 팔을 들어올린 그 자리에서 곧장 직선으로 내려왔다. 마치 나비가 현 위에 내려앉듯 첫 음을 그었다. 그 독특한 방향감이 신기했다. 긴 고요 위로 첼로의 바닥선이 한 줄 그어지고, 그 위로 대지가 드러난다. 얇게 진동하다가 금세 사라진,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흐름이었다.


2) 새벽의 나방

곧장 앞에서 진동하기보다는, 멀찍이 창가 근처로 다가오는 나방이었다. 부딪히기보다 미끄러지는 기색이 강했다. 흘러내리다 사라져버린 20초였다.


3) 초조한 전화기

시작 음의 파급력이 초조한 수준을 넘어 ‘광기’에 가까웠다. 유리잔을 바닥에 떨어뜨려 파편이 튀는 걸 목격한 사람의 놀란 심경 같았다. 전화기가 두 번이나 놀라 울린다. 마감 기한이 10초 남았다는 걸 방금 알게 된 것이 틀림없다!


4) 개구리의 수다

일반 개구리는 아닌 것 같고, 황소개구리가 분명하다. 딸꾹질을 두어 번 하고 나니 끝났다. (너무 짧아)


5) 미지행성 탐사

무슨 행성을 탐사하고 있었을까. 금성 같기도 하고, 일단 화성은 아닌 듯하다. 기다란 이명 같은 파동들이 한두 줄기로 숨이 멎을 듯 진동친다.


살짝 흐느끼는 것 같기도 한데, 고독감에 몸부림치던 이가 남긴 마지막 숨자국을 애달프게 그려낸 듯했다.

 

6) 수족관의 먹이시간

물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물안경과 수영모를 쓴 여자가 수심 깊은 수영장 안에서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그려졌다. 공기방울 몇 개가 수면 위로 둥—둥— 떠올랐던 것 같은데, 상상을 잇기도 전에 곡이 금세 끝나버렸다.


7) 얼음판의 미끄러짐

어우, 굉장히 미끄러운가 보다. 약간 재난 상황인가 싶을 정도로 아득한 기색이 절벽 끝에 가득했던 파트였다. 이제 곧 죽게 될 사람의 가느다란 숨소리 같은 긴장감. 절체절명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묘사했다.


8) 관공서의 대기

이런 곡에서 관공서를 떠올린 사람의 상상력이 대단하다. (깔깔) 하지만 절대 우리나라 공공기관은 아니다.


저런 느긋함과 불만족스러움이 공존하는 풍경은 상상하기 힘들다. 최소한 “빨리빨리” 해줘도 더 “빨리” 해주길 바라는 게 보통인데, 이렇게 조근거릴 수는 없지 않은가.


9) 일몰의 수영

아마 이쯤부터 헷갈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게 ‘수영’인가 싶은 묘사들이 많아서 그랬을지도. 사실 헤엄침이라는 테마가 내게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내 상상으로 풀어보자면, 귀찮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앞둔 사람의 작고 짜증 섞인 발걸음 소리 같았다. 흐느적거리기도 하고, 투닥거리기도 하고, 무거운 걸음이 그대로 스며 있다.


10) 바닷속 새우의 춤

이건 진짜 새우 같았다. 아주 작은 아기 새우들이 길을 잃고 이리저리 쏘다니는 모습이 떠올랐다.


11) 안개 속 스파이

스파이 치고 꽤 우아하다. 사방에 스모그가 낀 흰 안개 속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는 모양새가 딱이었다.


12) 꼬마악마의 놀이

뭐 하면서 노는 소악마일까. 딱히 나쁜 짓을 하는 건 아닌데, 앞으로 저지를 고약한 장난들을 상상하며 사악한 표정을 짓는 얼굴이 떠오른다. 너도 적잖이 속 썩이겠구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 현악 사중주 제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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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II. Romance. Andante espressivo (로망스, 느리고 표정을 담아)

나보다 아래에서 부드럽게 올라오는 듯한 차분한 기색으로 곡이 시작된다. 기다란 애수를 듣고 있자니 문득 궁금해졌다.


열일곱 살의 라흐마니노프는 어떤 창가 앞에 서 있었기에 이런 기다란 서정성을 일찍이 품을 수 있었을까.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이들을 떠올리면, 보통은 나이가 예순은 넘어야 깨달을 수 있는 문장을 앞서 ‘음’으로 그려내는 것 같다.

 

내가 이제야 겨우 얄팍하게 깨달으려는 것을, 그 사람은 일찍이 알고 있었구나. 그가 내 곁에 있었다면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게 됐을까. 대단하다고 우러러보면서도, 이른 나이에 많은 것을 알아버린 사람이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제1바이올린이 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길게 노래한다. 그 뒷자락에 세 대의 악기가 부드럽게 따라붙는다. 라흐마니노프의 계절에도 이런 봄날이 있었구나 싶다. 마냥 위로도 아니고, 조언도 아니고, 그저 봄의 정경을 응시하는 시선 자체를 묘사하는 음색이다.


치닫을 필요도, 내세울 것도 없다. 나무 아래 떨어진 꽃잎을 따라가도 좋고, 흐름을 따라 두 걸음씩 내딛으면 된다. 제1바이올린의 첫선이 바람결을 닮아 있다. 

 

바람? 그것이 무엇이던가. 외부 요인에 의해 생기는 공기의 움직임, 혹은 기분 전환을 위해 바깥이나 다른 곳을 거닐 때 쓰는 말이다. 네 개의 현악기가 서로 다른 결을 지닌 채 “산책 가자”고 나를 유혹한다. 못 이기는 척 손목을 붙들린 채 이끌려가는 재미가 있다. 뭐 어때, 그 또한 나의 ‘바람’ 아니던가?


한순간, 기색이 짙어지는 기운을 첼로가 확 잡아챈다. 나뭇잎의 흔들림을 나머지 세 악기가 묘사한다. 한없이 가볍게 둥—둥— 떠오르기만 하면 재미없지 않은가. 바이올린이 위를 바라보면 첼로는 아래를 응시한다.


그 눈짓을 따라가다 보면 가느다란 실선으로 모아진 뒤, 몇 번의 도닥임과 함께 조용히 사그라든다.


III. Scherzo. Allegro (스케르초, 빠르고 활기차게)

이제 조금 기운을 차릴 때다. 나도 모르게 어떤 주택가의 아침 정경이 떠올랐다. 일단 동양은 아니고, 주식이 파스타나 빵인 나라겠다.


아침 식사를 분주히 준비하는 허기진 한 사람이 신이 나서 계란프라이를 굽고, 오렌지주스를 따르고, 수도꼭지를 열어 싱그럽게 여문 토마토를 씻어낸다. 제1바이올린이 새침하게 콧노래를 부르고, 그 광경을 흥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모든 식사가 준비되자, 아직은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첼로의 부드러운 소리로 식탁 예절을 일러준다. 이쯤 되면 노릇하게 익은 계란프라이를 바라만 봐야 하는 아이들의 애잔함이 느껴진다.


“지금 안 먹으면 저 노른자가 익어버릴 텐데!”


통통— 통통—, 귀여운 피치카토가 손가락을 입에 넣고 멍하니 어머니의 목소리를 흘려보내는 아이들의 마음을 묘사하는 것 같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네 명의 연주자가 현을 두드리고 일시 정지한다. 오, 훈육이 끝났다!


어머니의 다정한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아이는 들뜬 마음으로 바삐 움직인다. 손으로 집어 먹고 싶은 충동을 꾹 눌러 참으며, 겉이 바삭하게 익은 소시지를 나이프로 잘라 입에 쏙 넣는다. 긴 공복과 인내 끝에 얻어낸 짭짤한 맛에 눈이 절로 감긴다.


엄마가 입에 넣어주는 브로콜리도 함께 먹고는 양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신나한다. 어머니는 “참 못 말린다”는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다가, 입가를 닦아주며 이마에 조그만 입맞춤을 내려놓는다.

 

 

루트비히 반 베토벤 — 대푸가 B♭장조, O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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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이 곡을 처음 예습했을 때는, 솔직히 “이게 그렇게 난해한가?” 싶었다. 그냥 골드베르크 변주곡처럼, 혹은 얼마 전 가이스터 듀오가 연주했던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서주, 오리지널 주제에 의한 네 개의 변주곡과 피날레’를 듣듯, 하나의 주제가 끊임없이 변주되는 양상을 따라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너무 낯설고 지끈거릴 만큼 어려워서 미간을 부여잡았다. 아, 그래서 당시 청중들이 그토록 당황스러워했구나.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베토벤이라도 이건 좀…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든 콰르텟은 이 대혼란을 어떻게 묘사해냈을까.


일단 시작은 거의 노을빛처럼 쨍하고 눈부셨다. 하늘 위 구름에 가리지 못한 태양의 직사광선이 대지 위로 곧게 꽂히는 순간 있지 않은가.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강한 빛. 바로 그 기세를 닮은 첫음으로 곡이 단번에 내려앉았다.


그다음은 도입부 같은 구간이라, 마치 준비운동을 하듯 가볍게 흐른다. 이날의 이든은 전체적으로 소리가 담담한 편이었다. “우리가 이런 소리를 보여주겠다”는 강한 인상보다는, 각 악기의 나직한 소리를 틈틈이 음미할 수 있는 여백을 열어주는 해석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꽤 다정한 품에 있지 않았던가. 그러다 갑자기 서로 다른 삐걱거림이 겹쳐지는 발걸음 속으로 들어와 당황스러웠다. 프로코피예프나 쇼스타코비치의 불협화음에는 익숙한데, 베토벤이 이렇게 규칙적으로, 그것도 아주 체계적으로 삐딱선을 그으니 도리어 적응이 안 된다.


모범적인 소리, 요상한 규칙성,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 위—아래, 아래—위, 저 위까지, 중간 지대를 가르며 네 음색이 곡예 같은 춤을 춘다. 그런데도 음악은 미묘하게 체계적이다. 아, 뭔데…?


그러다 문득, 조용히 사그라들어 다 같이 조근거리는 타이밍이 있다. 그래, 이렇게 모여 화음을 낼 수도 있으면서 나를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다니.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서서히 빛을 들여오는 파동. 들이치는 게 아니라 아주 조금씩 상승하며 소리의 길을 햇빛 아래로 드러낸다. 끝에서는 각자의 위치에서 넓고 깊게 파동치다가, 멀찍이서 두드리듯 울린다.


그런데 갑자기, 흐름이 신나진다. 한참 당황스러운 와중에 갑자기 익숙하고 듣기 좋은 음색이 들려와 반가웠는데, 서서히 이것마저 양방향으로 변질되고 있음을 눈치챘다. 아까는 위아래로 펜을 높게, 낮게 휘두르더니 이제는 조금 더 자유로운 곡선을 그리며 노닌다.


네 악기가 한데 모여 서로 다른 크기의 원을 겹겹이 그리는 것 같기도 했다.


문득, “무념무상으로 들을 곡이 필요하다면 이 곡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스쳤다. 잡념이 고운 춤을 추면, 아마 이 곡과 닮았을 것이다. 우아함을 놓치지 않고, 소리의 다채로운 결을 잃지 않으면서, 깊은 파동과 얇은 선율을 번갈아 불러오는 이 곱상한 광기.


끝자락에선 한 번씩 큰 원형을 그려내듯 웅장한 동심원을 몇 번 그리다가 듣기 좋은 간드러짐을 남긴다. 사라질 듯 내려앉았다가, 멀리서 유려한 놀이를 찾다가, 첫 눈부심보다 두 톤 낮은 갈색빛 정도의 쨍한 내딛음 몇 번을 끝으로 남긴다.


그리고 마지막. 여긴 또 무슨 파동의 형상이었을까. 갑자기 네 악기가 중간 지대에 몰려들어 응집됐다가, 넓게 퍼졌다가, 다시 모였다가, 무언가를 시작할 것처럼 보이더니, 어느새 사라진다.

 

 

알다가도 모를 매력. 뭐지, 이건?

베토벤, 대체 누구세요?

 

 

안토닌 드보르자크 — 피아노 5중주 제2번 A장조, O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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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그냥, 듣자마자 이건 ‘좋은 곡’이라는 예감이 드는 순간들이 있지 않은가? 이 5중주도 그러하다. 게다가 지난 줄라이 이후로 오랜만에 김송현 피아니스트가 이든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니, 나에겐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일전에 7월 30일 줄라이 페스티벌에서 페이지터너로 무대를 함께하셨던 김시유 선생님도 계셔서 괜히 혼자 속으로 반가웠다. 자, 이제 오늘의 2부가 모두 준비되었다. 멀리 갈 필요 있나. 그날의 드보르자크의 5중주를 회상해보자.

 

I. Allegro, ma non tanto (활기차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왼손을 들어 손가락을 ‘하나, 둘, 셋, 넷’ 느리지 않게 접어본다. 그 속도감으로 피아노가 무대 앞에 밑선을 깔아주면 첼로의 긴 마음이 나긋하게 자리를 잡고, 그 위로 현악들이 차례차례 얹히며 무언가를 향해 뭉쳐 달려나간다. 

 

그 광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이 1악장은 구태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귀에 담기면 충분하다. 묘사하는 순간 퇴색될까 두려워질 정도의 서사다.


그럼에도 굳이 말을 얹어야 한다면, 그날 까만 저녁 안에서 문득 스며든 생각 한 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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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사람들… 진짜 ‘오늘’을 사는구나.”


소리가 무대와 마음 안에 차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생명력의 정중앙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소리다. 음악과 서로 투명하게 맞닿아 있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런 표현 자체가 발현될 수 없었으리라. 매 활을 켤 때마다 숨을 죽이고, 힘을 들이며, 합을 맞춰나간다.

 

비올라와 피아노가 빠르게 발을 맞춘다. 그러면 바이올린이 공을 이어받고, 피아노는 한 박자 늦춰 숨을 고른다. 이 모든 흐름은 결국 다시 하나로 모여들기 위함일 테지.


끝에 무엇이 기다릴지 모르면서도 과감히 내딛는 그 거침없는 발걸음 속에서, 낮은 길을 걷듯 마음을 다독이는 소리들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들은 특징이 있다. 늘 내 자리가 있다. 무작정 내질러버린 몰입이 아니라, 첫 선과 끝 선 사이에 관객이 마음을 담아낼 자리가 있다.

 

익숙한 고즈넉함이 다시 되돌아온다. 처음보다 더 타오른 서정성이, 시원한 소리결 위에 따뜻한 숨결을 얹는다. 아— 너무 시원하고 정말 따뜻하다.


더 나아갈 수 있으면서도 꼭 기다렸다 흐름을 잡아채는 이 긴 호흡, 이러니 내가 무엇 하나 놓칠 수 있겠는가. 첼로와 비올라, 피아노, 그리고 두 대의 바이올린이 무대를 가득 뒤덮는 순간이 찾아온다.


아, 이렇게 피아노를 칠 수 있는가. 소리 하나하나가 그저 “예쁘다”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김송현 피아니스트의 건반에는 한 음씩 아낌이 서려 있다. 피아노를 이토록 사랑하는 마음이, 소리의 결 안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느낌을 설명하자면,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금명이의 시어머니가 애순이에게 곶감을 보내며 함께 동봉했던 편지를 떠올리면 된다.


“가을에 친정집에 가 제일 좋은 감을 따다가 드릴 생각을 하며 한 계절 내내 공을 들였습니다. 예쁜 금명이를 보듯 매일 보고 또 보며 만들었습니다. 저는 금명이가 그렇게도 예쁩니다.”


그날의 김송현은 이렇게 동봉했다.


“여름에 제일 좋은 마음을 따다가 드릴 생각을 하며 한 계절 내내 공을 들였습니다. 예쁜 피아노를 보듯 매일 보고 또 보며 만들었습니다. 저는 피아노가 그렇게도 예쁩니다.”


이러니, 어떻게 내가 “예쁘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네 대의 현악은 또 어떤가. 이토록 파랗고 분명한 색감을 지닐 수 있나. 내가 좋아하는 ‘서늘함’을 모조리 활끝으로 데려온 듯하다. 나는 따뜻하고 온화한 소리를 자주 듣지만, 마음이 가는 건 늘 조금 더 날카롭고 시원한 기색이다. 그 음색이 아니었다면, 현악기를 좋아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희한할 정도로 이든은 내가 원하는 ‘바람’을 각자의 결 안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품고 있었다. 이렇게 네 명이 모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신기한데, 그걸 딱 잡아채 시선 안에 두고 있는 나도 신기하다. (운이 좋다) 바늘을 닮은 한 대의 바이올린이 몇 겹의 선율을 내게 가져다 놓은 거지? 헛웃음이 난다.


다정하지만 울먹이지 않고, 웃어주되 과장하지 않는다. 나아가되 지체하지 않으며, 토닥여주되 쉽게 안아주진 않는다. 높이 날아오를 때는 끝없이 높게, 내려올 때는 한없이 낮게 내려올 줄 아는 사람들의 소리다. 싱그럽다. 지금을 호흡하며 그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전해진다.


연주자들은 자신들의 손끝에서 도출된 소리가 ‘살아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모른다면 그건 참 곤란하다.


때로는 손을 들고 악장마다 박수 치게 해줬으면 좋겠다. 잘했는데 칭찬을 삼켜야 하는 이 고난길이라니. 박수치고 욕 한 번 먹어봐?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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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Dumka. Andante con moto (둠카, 느리면서도 움직임 있게)

악장 제목을 보자. 둠카? 단어 자체가 귀엽다. 둠—카! 하는 소리가 나는 듯, 느리면서도 적당히 내려앉은 모양새로 흘러간다. “느리면서 움직임 있게”라는 해석을 보고 나니 연주자들이 얼마나 정확히 그 지시를 따랐는지 알겠다.


소리를 먼저 듣고 나중에 악보를 보면, 내가 감각적으로만 바라봤던 흐름이 사실은 치밀한 계산과 의도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알게 되어 신기하다. 미학적으로 완벽한 음의 구조가 사실은 수학적 바탕 위에 세워져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셈이다.


나긋나긋 다정하게 다가오는 소리들이 이렇게도 다채롭게 그려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작곡가들은 도대체 무슨 사람들일까. 먹고살겠다고 이런 음악을 창작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아름다운데, 어느 순간엔 외로워지고, 또 애잔해지고, 불현듯 고독해지는 세부 감정들이 모두 그 안에 녹아 있다.


악보는 사실 하나의 소설집과 다르지 않다. 인간의 감정에서 출발한 복잡다단한 마음길이 선율 위에 세밀히 새겨져 있으니, 그 안에는 사람이 매순간마다 녹아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책 한 권에도 쉽게 마음이 안 간다. 귀로 듣는 이 오디오북 같은 음악들이 너무 말이 많고, 동시에 너무 듣기 좋다.


마지막은 또 어떠했던가? 울지 말라 다독이다가, 피아노와 현악들이 왈츠를 추듯 가볍게 앞서 나가기도 하고, 재잘거리며 웃다가 아이러니한 선율로 돌아와 노래를 부른다. 몇 분 단위로 감정선이 급격히 변하고, 초침 같은 ‘째깍’거림을 닮은 구간들이 스쳐간 자리엔 내려앉은 고요가 형성된다. 다가오고 있지만 한참 멀리 있는 가을의 체온을 닮았다.


III. Scherzo (Furiant). Molto vivace — Poco tranquillo (푸리안트 형식, 매우 활발하게 — 조금 차분하게)

마냥 신나는 시간이다. 공간 가득 깔린 현악의 선율 위로 바람이 노니는 광경을 바라보는 기분이다. 천장 아래에서 공기와 소리가 섞이고, 그 안에 맺힌 피아노의 맑은 방울들이 목끝 언저리에서 흘러내리듯 퍼져 나간다. 이 모든 게 예쁘다고 말하기조차 아까울 만큼 생생하다.


그러다 불현듯 잠시 평화가 내려앉는다. 작곡가들은 참 신기하다. 언제나 이런 숨 쉴 틈을 남겨두고 간다. 혹여나 벅차오르기만 할까 봐, 적절히 쉬어갈 공간을 마련해둔 것이다. 길지는 않지만, 있다는 게 어디인가. 그 짧은 틈 사이 피아노는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르고, 현악기는 그 위를 부드럽게 타고 흐른다.


이 광경을 아직 목격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정도다. 연주자들은 때때로 장난스레 소리를 주고받기도 하고, 내가 웃음 지은 자리에선 함께 입꼬리를 올려주기도 한다. 이 음악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장난기’를 느껴본 적 있으신가? 없다고? 그거 조금 곤란한데. 

 

IV. Finale. Allegro (마지막 악장, 빠르고 힘차게)

마지막 악장은 말 그대로 빠르고, 정말 힘차게 내달린다. 달리기를 시작한 듯 거침없이 뻗어 나가지만, 그 속엔 유연한 결이 숨어 있다. 두 대의 바이올린이 선명하고 또렷하게 울려 퍼진다. 꽤나 짙은 색을 가진 소리인데, 어느 한 음도 흐리지 않고 똑— 떨어진다.


비올라는 묘하게 가을 냄새를 머금은 듯 서늘한 기운을 담고 있고, 첼로는 그보다 한결 연둣빛을 띤다. 피아노는 그 사이에서 순백에 가까운 빛을 내뿜는다. 옥구슬에 색을 칠할 필요가 있을까. 투명하게 굴러다니는 소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숙련된 이들이 펼쳐내는 이 자연스러운 세계를 바라보며, 나는 스스로를 문득 돌아본다. ‘나도 나를 참 곱게 키우고 있구나.’ 지금 이렇게 공연을 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몇 계절을 공들여 빚은 ‘소리’를 선물받는 일 아니던가.

 

저 악기들이 보이지 않는 시선 속에서 선을 그었다 멈추고, 다시 내딛기를 반복한다. 계절처럼 이어지는 그 시간을 고작 몇 걸음 안에서 훔쳐 듣는다. 피아노는 얇고 수직으로 춤을 추듯 선율을 뻗고, 현악은 길게 눌러 단단한 소리를 남긴다. 끝이 가까워진다.


순식간에 이별의 순간이 왔다. 앞좌석에서 터져 나온 ‘브라보’가 불현듯 기억난다. 그 한마디를 따라 나도 마음으로 외쳤다!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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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ore

 

오늘의 앙코르는 방금 연주한 드보르자크 피아노 5중주의 3악장이었다. 다시 그 악장을 마주하니, 오늘의 끝과 공연의 활기를 정리하기에 이보다 좋은 곡이 있을까 싶었다. 마치 에필로그 같았다.


게다가 아까보다 조금 더 생기가 얹힌 듯한 기분이다. 마지막을 앞둔 연주자들의 손끝에서 날아오름이 한층 가벼워졌고, 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더 밝게 빛났다. 언제 들어도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음악은 다시 돌아올 때마다 반가움이 배가된다. 게다가 연주자들의 손이 풀려서인지 합까지 더욱 또렷이 맞아떨어진다.


이러면 보내기가 참 아쉽다. 하지만 이별을 이렇게 활기차게 손 흔들며 맞이한다면, 결국 나도 웃을 수밖에 없다. 활짝!

 

 


3. 무한한 어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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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삼오오 빠져나가는 인파를 어느 정도 내보낸 뒤, 뒤늦게 공연장을 빠져나오니 이미 밖은 연주가들을 축하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축하? 그럼 나도 해야지! 가방 속에 준비해두었던 작은 엽서 한 장을 손에 들고 사람들 사이로 쏙— 들어갔다. 일전에 80주년 광복절 기념 음악회에서 사두었던 정사각형 편지지였다. ‘언젠가 쓸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 사둔 건데, 이렇게 요긴할 줄이야.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 편지를 쓸 일이 부쩍 많아졌다. 사실 나는 원래 이렇게 낭만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클래식’을 좋아하니, 사람이 덩달아 ‘클래식’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또 한 가지 좋은 점은, 인사성이 밝아진다는 거다. 반가운 얼굴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직진하고 있다. ‘어머, 당장 달려가서 칭찬해.’


공연이 끝나고 오늘의 주역들이 로비 밖으로 등장하자, 다들 와— 하고 박수를 치며 그들을 반겼다. 나도 그 사이를 파고들어 쫄래쫄래 다가가 “잘 들었다”는 마음을 전하며, 작은 네모 위에 오늘의 소감을 한 자씩 받기 시작했다. 사인은 물론이고 오늘의 ‘소감’까지 하나씩 받아내고야 말았다. (욕심쟁이)


줄라이 페스티벌 때 공연이 끝나면 연주자들에게 소감을 받아가는 걸 본 적이 있었는데, 오늘은 내가 여기서 몰래 ‘어거스트 페스티벌’을 한 셈이다. (음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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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게 한마디씩 나누는 사이, 로비에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둘 눈에 띄었다. 일전에 ‘면사랑 신진 유망 연주자 수상자 연주회’ 무대에서 뵈었던 이유빈 첼리스트도 계셨고, 오늘 주역들의 가족분들도 가득했다. (어떻게 알았냐고? 멤버들과 가족분들이 하나같이 닮으셨다, 하하)


좋은 공연을 보고 나면 내향성이 온데간데 없어진다. 저번 공연은 어땠는지, 오늘은 어떤 소리가 좋았는지, 연주자들은 무엇을 느꼈는지— 짧지만 이리저리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참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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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오늘의 공연 주제가 뭐였는지 떠올렸다. ‘무한한 어울림’이었다.

 

왜 이 주제였더라? ‘무한’이라는 말 속에는 단순한 크기나 수치를 넘어, 춤추듯 흐르는 아름다움 속에서 서로의 목소리가 겹치고 어우러지는 예술적 이상이 담겨 있다. 세대와 장르를 가로지르는 연주자들이 고전과 현대를 오가며, 레퍼토리를 자유롭게 품고, 유연하고 생동감 있는 무대를 그려내겠다는 의미였다.


그래, 그럼 오늘의 공연은 주제에 걸맞았던가? 함께 '응시'해보자. 

 

그들은 쿠르탁의 12가지 미지의 조각을 지나 라흐마니노프의 서정성 아래 봄날의 정경을 펼쳐냈고, 베토벤의 대푸가로 노을빛 아래 유려한 춤을 추었으며, 드보르자크의 선율 위에서는 자신들의 생명력을 활짝 피워냈다.


어떤가. 그들은 과연 무한히 어울렸던가. 4열 중블럭에 앉아 있던 나의 입장에서는 ‘그리하였다’라고 답을 내릴 수 있는데, 한 명의 의견만으로 멋대로 단정 지어도 되겠는가? 이럴 땐 나 말고 같은 공연을 관람한 또 다른 관객에게 여쭤보는 수밖에 없겠다.


누구에게 여쭤보면 좋을까? 약간—조건이 까다롭다. 이든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 객관적이되 듣는 내가 기분 좋은 주관을 함께 섞어줄 수 있어야 하고, 나보다 훨씬 전문적인 지식도 있어야 하며, 이왕이면 현악을 전공한 ‘연주자’면 좋겠다.


마침 로비에 내가 내건 조건에 딱 맞는 분이 한 분 계셨다. 누구냐고? 안경을 쓰신 데다, 이든 콰르텟의 가장 최근 졸업생이자, 날렵한 바이올린 소리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다. 냉큼 다가가 오늘 무대가 어땠는지, 사인을 받으며 조심스레 여쭤봤다.


어머! 나와 똑같은 답을 들었다.

뭐라고 답하셨냐고? 답은 이렇다.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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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올여름은

무한히도 초록초록하게,

이 소리들과 어울리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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