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대학의 어느 교양 수업에서 프리다 칼로에 대해 어렴풋이 들어본 적이 있다. 남편 디에고 리베라를 너무나도 사랑한, 그래서 결국 용서해 버린 비운의 여성. 부끄럽지만 그 시절 나의 뇌리에서 프리다 칼로는 그런 인물로 남아 있었다.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나는 우연히 뮤지컬 ‘프리다’를 마주하게 되었다. 어딘가 익숙한 이름에 고개를 갸웃대며 예매 창으로 향했고, 우리는 그렇게 다시금 조우했다.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의 화가이자 혁명가이다. 6살에는 소아마비를 겪었고, 18살에는 교통사고로 인해 수 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한 이후 남편은 불륜을 저질렀고, 수 차례의 유산은 그의 삶을 비극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을 단지 비극이라 칭하기엔 프리다는 강인했다. 프리다는 때때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절망을, 그럼에도 몇 번이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뮤지컬 ‘프리다’는 이러한 이야기를 묵묵히 현대의 군중에게 건넨다.
결코 고개 숙이지 않았던 한 여성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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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쇼 Last Night Show에 출연하게 된 프리다. 극은 그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쇼를 진행하는 현재와 지난 과거가 교차하며 한편의 이야기를 완성해 내는 것이다.
작품에는 총 4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첫째는 ‘프리다’ 자신이며, 그다음은 쇼의 MC이자 프리다의 남편 디에고 리베라 역을 맡은 ‘레플레하’이다. 쇼의 크루원 중 한 명이자 프리다의 곁을 맴도는 죽음, 동시에 전 애인 알렉스 역을 소화한 ‘데스티노’와 쇼의 크루원이면서 프리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한 또 다른 프리다를 재현하는 ‘메모리아’까지. 이들은 각기 다른 자아를 넘나들어 관객에게 다가선다.
앞서 언급하였듯, 극의 줄거리는 실존 인물 프리다 칼로를 기반으로 한다. 실제로 그의 인생에는 몇 번의 절망이 드리우는데, 작품은 그런 순간마다 사이렌 소리를 삽입해 그 절망을 관객에게 선명하게 전달한다. 첫 번째 사이렌은 프리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직후 울려 퍼진다. 철근이 허리를 관통하는 고통, 서른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수술. 사고 이후 프리다는 침대에서 매일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유일하게 자유로웠던 오른손으로 그림을 그린다. 몇 번이고, 또 몇 번이고. 아버지가 준 유일한 세상인 거울을 바라보며 묵묵히 자신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렇게 미술의 세계로 발을 들인 프리다. 자신의 그림에 대한 평가를 받고자 디에고를 찾아가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아이는 골반 기형으로 인해 유산되고, 남편은 불륜을 저지르며 그는 또다시 사이렌 소리에 가두어진다. 하지만 프리다에게 사랑이란 종교였고, 고통마저 사랑이었다. 그렇기에 프리다는 결코 고개 숙이지 않았다. 어떠한 고통도 자신을 주저앉게 할 수 없다는 듯이, 기어코 다시 일어나 자유를 외친다.
멋진 인생 따윈 없어도 돼
화려한 조명도 필요 없어
하지만 조그만 숨이 남아 있다면
다시 날 수 없다 해도
다시 뛸 수 없다 해도
아직 사랑할 힘이 남아 있다면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어
포기하지 마
나 프리다 칼로
- 넘버 <코르셋>
프리다 칼로를 단 하나의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면 단연코 ‘그럼에도’이다. 수차례 위태로웠던 그의 인생을 내일로 이어준 단어이자 다시금 살아가게 했던 그 말. 연신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 사이에서도 프리다는 그저 주저앉지 않는다. 눈물 흘리고 소리치다가도 그럼에도 꼿꼿이 일어서 살아낸다. 프리다가 고통 속에 머무르는 순간, 무대는 그저 비극적 장소에 그치지 않고 그가 당시 그린 그림을 화면에 함께 띄운다. 절망과 고통 속에서 프리다가 그렸던 그림을 말이다. 프리다는 자신의 매 순간을 예술로 남겼다. 그것이 비록 어둠의 한 지점일지라도 프리다는 하얀 캔버스를 부표 삼아 나아간다. 생전 프리다는 자신의 그림이 초현실주의라 불리자 “나는 꿈을 그린 적 없다. 나는 나의 현실을 그렸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이 새삼 사무치게 와닿는다. 프리다는 꿈을 그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현실을 그려냄으로써 살아가는 사람이었으니까.
특히 후반부 프리다의 독무는 공연이 끝난 이후에도 나의 마음속에 오래 잔류했다. 천장에서 쏟아져 흩날리는 붉은 종이, 흘러 나오는 프리다의 독백, 자유롭게 춤을 추는 그의 몸. 이 모든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진 무대는 마치 그가 한폭의 그림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오른손으로 하얀 캔버스를 채워 나가던 프리다 자체가 작품이 되는 순간, 그 순간을 관객은 목도한다. 현실을 그리는 화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춤을 추는 프리다는 곧바로 한폭의 그림이 되어 우리에게 닿았다. 캔버스를 넘어 무대로, 붓을 넘어 신체로. 현대에 탄생한 관극이므로 과거의 인물은 마음껏 경계를 허문다. 이 지점에서 오늘날 공연예술의 의의를 다시금 되새겨 보기도 하였다.
“내 마지막은 핏빛을 닮은 수박에 담길게요. 인생이여, 영원하라.”
프리다의 마지막 유언. 인생이여, 영원하라. 그는 자신의 끝을 수박에 담아냈다. 숱한 씨가 박혀 있지만, 그럼에도 생동하는 선홍색. 고통을 겪으면서도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프리다와 꼭 닮아 있다. 그는 비운의 여성이 아니다. 어떠한 절망을 떠안고도 또 다른 희망을 살폈던 프리다, 그는 강인하다.
공연 당시 넘버 <코르셋>의 가사 중 일부는 나에게 조금 다르게 들렸다. ‘아직 살아갈 힘이 남아 있다면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어.’ (원곡 가사는 ‘아직 사랑할 힘이 남아 있다면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어’이다.)
살아갈 힘이 있다면. 그 실낱같은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일어설 수 있다. 죽음의 곁에서 프리다가 읊조린 가사는 오늘의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니 또 한 번 살아보려.
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