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P였는데 ENTJ가 됐습니다
“혹시 엠비티아이가 뭐예요?”
“저는 INPF입니다”
이전 회사에서 면접 때 엠비티아이 질문을 받았다. 2년이 지난 지금 질문을 했던 동료와 밥을 먹었다. 얼마 전 회사 사람들 네 명과 횟집에서 저녁 모임을 가졌다. 그땐 그랬지, 부족하고 낯설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근황 토크를 했다. 성격 이야기가 나오다 MBTI 이야기가 나왔다. 한 명씩 돌아가며 어떤 성향일지를 추측했다. 내 차례가 됐는데 자세한 건 아니지만 이 년 전엔 INFP라는 걸 밝히자 믿질 않는다. 어떻게 내가 INFP라고 되묻는다.
회사에서 가벼운 농담을 잘했던 나는 유쾌한 편이었다. 일도 일이지만 상대방과 가벼운 장난을 치며 친밀감을 쌓으면 업무가 훨씬 잘 됐다. 불편한 것보다는 편할 때 샘솟는 아이디어와 자유로움이라고할까. 2년 전 MBTI가 유행할 때 나는 분명 INFP였다. 계획보다는 흐름에 맡기는 편이고 머릿속에서 늘 새로운 이야기가 자라났다. 사람 많은 곳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에 집중했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계산보다 마음의 울림을 따랐다. 성격의 척도가 엠비티아이는 아니지만 내 성격과 맞았기에 누가 물으면 난 INFP(인프피)라고 대답했다.
ENTJ(엔트제)가 된 이유를 찾는 여정
모임에서 회자된 엠비티아이 이야기를 들으며 지적 호기심이 생겼다. 정확히는 지금 내 엠비티아이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전 회사 동료는 유료 검사가 정확하다고 유료 MBTI를 추천했다. 다시 해보니 앞 글자는 그대로인데 뒤에 가 바뀌었다. INFP(인프피)에서 ENTJ(엔트제)로. 그러니까 최근의 나는 계획형, 도전적, 직설형 인간으로 변해있었다. 리더형이라고 하는데 그건 아닌것 같고 ……. 곱씹어 보니 지난 이 년 동안 나를 비롯한 환경, 마음, 생활 모든 게 변해있었다. 크게 아프면서 두 가지 병을 안고 가야 되는 나는 생활습관을 꼼꼼히 관리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다시 일을 하게 되며 계획표를 쓰게 됐다.
무언가를 시작하는 게 어려워 준비하고 핑계만 되다가 일도하고 취미생활도 하고 있다. 중요한 건 결과물이 아니라 꾸준히 하는 마음가짐이다. 매일 조깅을 하고 운동을 하면 당장은 큰 변화는 없지만 나중에 봤을 때 체중이나 몸의 라인이 변해있을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면서 주어지는 분량과 마감기한에 맞춰 제출해야 될 원고가 있다.
예전의 나라면 마감 직전에 밤을 새워서 느낌 가는 대로 한 방에 했을 텐데 지금은 아니다. 매일 일정시간만큼 똑같이 한다.
시간까지는 자세히 안 적지만 작은 노트에 해야 할 일들을 쓰고 끝날 때마다 체크한다. 처음 무언가 계획을 세울 때 목표를 너무 높게 세우면 금방 지친다.
내가 그동안 뭔가를 계획할 때 중도 포기했던 이유가 그거다. 예를 들면 한 달에 10kg 빼기. 정말 이뤄지면 드라마틱한 계획들. 물리적으로 한 달에 10kg은 불가다. 5kg 감량도 대단한 건데. 나는 지금껏 무식하게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달려들었다. 그래서 매일 루틴처럼 할 수 있는 소소한 계획들을 세운다. 하루에 한 장 분량의 글쓰기, 강아지랑 산책 30분하기 등 내가 지킬 수 있는 내용들을 적는다. 흐름에 맡기던 나는 조금씩 계획을 짜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던 거다.
MBTI가 절대적 이름표는 아니니까
나는 필요에 따라 I도 되고 E도 된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장난을 칠 수 없으니 최대한 조용한 느낌으로 필요한 말만 한다. 정말 관계의 모양이 커지고 깊어지면 장난부터 친다. 정확히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I 같다는 사람도 있고 E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MBTI는 절대적인 정체성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삶이 변하면 거울 속 내 모습도 변하는 것처럼. 환경과 경험이 성향을 조금씩 깎고 덧칠하며 새로운 나로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남의 말을 잘 경청하고 혼자 감성에 젖는다. 여행 계획은 잘 세우지 않는 편이지만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는 힘이 생겼다. 아마 내 엠비티아이는 계속 바뀔 것이다. 변화하는 나도 나쁘지 않다. 이것이 내가 계속 살아가고 있는 증거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