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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사람은 결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수많은 욕구를 가지고 있고, 그 욕구들의 일부는 타인과의 관계 맺음을 통해서만 충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랑을 주고받고자 하는 마음, 보호받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등이 그렇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집단을 이루어 살아가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집단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하나를 꼽으라면, 아마 대부분이 ‘가족’이라는 단어를 대답할 것이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보호해 주고 믿어 줄 수 있는, 나의 단단한 기반. 가족이란 내가 성장하는 데에 가장 중요하고 필연적인 존재가 된다.

 

그런데 여기, 그 당연한 단어, ‘가족’을 가지지 못하고 떠도는 열세 살과 일곱 살의 아이가 있다.

 

영화 <수연의 선율>의 두 주인공, 수연과 선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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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열세 살 수연의 유일한 보호자였던 할머니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남겨진 아이인 수연은 이제 보육원에 가야 할 처지다. 우리나라의 법에 따르면, 법정후견인이나 보호자가 없는 미성년자는 홀로 거주하고 생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연은 보육원에 가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돌봐줄 수 있는 ‘가족’을 스스로 찾아 나선다.

 

처음 가족을 찾아 나섰을 때만 해도, 수연은 절망하지 않는다. 자신과 친하게 지냈던 친구 가영이의 집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여기고, 다니던 교회 사람들이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 여긴다. 과연 어른들은 말한다.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도와주겠다, 하룻밤 자고 가도 된다... 하지만 수연은 서서히 깨닫게 된다. 그들 중에서는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보호자 없는 여자아이는 언제 어느 방식으로든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잔인한 현실로 알게 되어 버린다.

 

그러다가 수연은 한 유튜브 채널을 발견하게 된다. 젊은 부부가 표현성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는 일곱 살 여자아이 ‘선율’을 입양해 키우는 일상 브이로그다. 유튜브 영상 속의 부부는 다정하고, 따뜻해 보이며, 입양한 아이에게 관심이 많아 보인다. 선율이가 우리에게 온 것을 축복으로 여긴다는 말과 함께 다른 아이를 한 명 더 입양할 생각도 있다고 말한다.

 

물러날 곳이 없는 수연은 자연스럽게 그들 부부에게 접근할 계획을 세운다. 선율이 다니는 어린이집으로 찾아가 길을 잃은 척 말을 걸고, 선율과 함께 있다가 자연스럽게 엄마 ‘유리’를 마주한다. 유리에게 자신이 밥도 잘 하고, 선율이도 잘 돌볼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한다. 나중에는 선율의 일로 할 이야기가 있다며, 자연스럽게 그들 가족 사이에 끼어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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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열세 살 아이치고 영악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모습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족’이 간절하게 필요한 수연의 사정을 알다 보니까, 영악하게 느껴지기보다는 마음이 아프다. 특히 유리가 갈치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집에서 갈치조림을 만들어 가져가는 장면은 쓴웃음이 나온다. 그렇게까지 해서 ‘가족’이 되고 싶은 그 아이의 마음을 전부 헤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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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은 자신이 원하던 대로 유리와 태호, 선율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진다. 기뻐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지만, 관객들은 쉽사리 기뻐하지 못한다. 우리는 유리와 태호 부부에게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일곱 살의 선율이는 수연의 앞에서만 똑똑하게 할 말을 다한다. 통 안에 다친 아이들을 넣고 돌봐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부부의 앞에서는 입을 꾹 다문다. 바보인 척, 언어장애가 있는 척 행동한다. 모두 ‘그렇게 해야 엄마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부부의 입양 브이로그에 등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가 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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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유리와 태호는 어느 날 말없이 아이들을 버리고 떠난다. 어른들에게 이용 가치가 떨어진 아이들은 당연하다는 듯 버려진다. 수연과 선율에게 한마디 말도 남기지 않은 그 모습을 보면, 그들에게 이 아이들은 어떤 존재였고 어떤 책임이었는지 의문이 남는다.

 

어른들에게 아이들이란 어떤 존재일까.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할 것이고, 움직일 것이며,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그래서 쉽게 다루어도 되고 쉽게 선택해도 되는 사람일까. 우리는 어쩌면, 아이들에게도 가족을 선택할 권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사회적 지지’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사회적 지지란, 친밀한 사람으로부터 실제로 돌봄을 받는 것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돌봄을 받고 있다고 ‘자신이 자각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수연과 선율은 ‘가족’, 즉 자신을 사회적으로 지지해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 한 사람이 아이들에게 부재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가족이 되고자 했을 뿐인데, 어째서 그게 불가능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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