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은 영화의 형식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 「라쇼몽」과 「덤불 속」을 적절하게 각색하는 과정에서 다층적 서사 구조를 사용한다. 이는 액자식 구조로 라쇼몽 성문에서 비를 피하는 인물들이 과거 숲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이야기하는 형식이다. 과거의 사건을 현재에서 인물의 증언과 과거 회상으로 보여주면서 영화의 표현을 다채롭게 만든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숲에서 일어난 한 사건을 탸죠마루와 사무라이, 그의 부인, 그리고 나무꾼의 시점으로 각기 다른 증언을 하도록 구성했다. 이로써 영화에서 다중 시점을 보여주었고 관객에게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모호함을 심어주었다.


*


영화 《라쇼몽》에서 ‘라쇼몽 효과’가 만들어졌는데, 이 효과는 같은 사건을 두고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사실을 다르게 해석하거나 왜곡하는 현상을 말한다. 숲속에서 일어난 일은 과거이자 여러 증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라쇼몽 아래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나무꾼조차 자기 이익을 위해서 여자의 단검을 훔친 사실을 숨겼다. 그렇기에 관객은 나무꾼의 말조차 믿을 수 없게 된다.

 

 

20250725215706_yhekzrca.jpg


 

또한, 영화는 대비되는 카메라 모션을 보여준다. 바로 관아 장면 구도와 숲속 구도이다. 관아에서 나름의 거짓을 섞여서 증언하는 이들의 모습은 마치 연극을 보는 관객들의 시선처럼 한쪽 벽면에 고정된 채 유지된다.

 

즉, 고정된 카메라와 한곳만을 바라보는 등장인물들이 나온다. 카메라 렌즈 너머에는 누군가가 있다고 그저 상상할 뿐이다. 감독은 그 누군가의 자리에 관객들을 앉혀놓는다. 관객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판단하고 결정하게 만드는, 유도하는 구도라고 생각한다.

 

 

20250725215932_kmgrlale.jpg


 

하지만 숲속의 살인 사건을 보여줄 때는 핸드헬드 기법을 사용해서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장면적으로 드러낸다. 흔들리는 인물들이 있는 숲이라는 공간을 극적인 빛과 그림자를 의도적으로 배치하면서 시청각적 기법을 보여주었다.

 

이는 영화 장면 대부분이 흑백 영화임에도 유독 빛이 도드라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독이 시각적으로 인물-더 나아가서는 관객까지-의 혼란스러움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카메라 효과는 사소한 디테일에서도 드러난다. 사실 숲속 사건은 같은 이야기의 반복처럼 느껴지고 누군가는 지루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영화에서 동일한 사건임에도 인물이 가진 시점에 따라 카메라의 구도를 다르게 잡는다. 이로써 영화에는 한정된 공간을 여러 각도와 시선으로 꼼꼼하게 보도록 해준다. 마치 사건을 목격한 나무꾼이 숨어서 지켜보던 시선을 관객이 체험할 수 있게 하는 듯하다.


그리고 영화 《라쇼몽》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라쇼몽’ 성문을 상징적인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곳은 인간 세상의 도덕이 붕괴되었고 희망은 없어 보인다. 성문이 무너져있고 영화 후반에서 승려와 나무꾼, 그리고 한 사내는 성문의 나무를 뜯어내기도 한다. 공간의 거대한 상징이 인상적이다.

 

 

라쇼몽 성문, 비 장면.jpg

 

 

덧붙여서 영화는 폭우가 내리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때 카메라는 인물에게 포커스를 두기보다 ‘비’에 렌즈의 초점을 맞춘다. 이러한 포커스가 약 2분 30초 정도 이어진다.

 

이 장면을 보고서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자연을 거대한 상징물로 사용해서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인간상을 보여주는 영화로 자연물을 상징적으로 사용해서 인간의 선함과 악함을 조명했다는 면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처럼 영화 《라쇼몽》은 형식적인 시도뿐만 아니라 주제적으로도 다양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주제로 인간의 본성은 무엇에 기반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욕망과 이익에 따라서 의도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유리한 기억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나름의 방식으로 행동을 합리화하는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면서 잘못된 자기합리화를 말한다. 결국 나무꾼조차 자기를 미화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는 진실을 알 수 없는 모호함에서 오는 ‘진실이란 무엇인가’의 질문을 던진다. 불완전한 인간에게 진실은 주관적이다. 나에게 진실이 누군가에겐 거짓일 수도 있다. 영화 순서상 나무꾼의 증언, 탸죠마루를 잡은 행인의 증언, 탸죠마루의 증언, 사무라이 부인의 증언, 마지막으로 무녀에게 빙의된 채 증언하는 사무라이가 있다.

 

관객은 한 사람, 한 사람 증언을 들으면서 처음에는 누군가의 증언을 믿었다가 모두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아무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관객의 기억조차 불완전한 것이다.


같은 이유로 영화에서 끊임없이 내리는 비는 거대한 자연물이 되며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이 된다. 영화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이기심, 자기중심적 사고와 같은 욕망은 과거 회상에서 인물들이 끊임없이 땀을 흘리고 있음과 이어진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도록 행동하고자 할 때, 긴장감의 순간-예를 들어 싸우거나 누군가에게 진술할 때-에 인물들에게는 흑백 영화임에도 선명한 땀방울이 보인다. 이 역시 이기심의 상징, 영화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영화는 도덕적인 측면에서 시사점을 보여준다. 사회를 지탱하는 도덕이 붕괴하면서 전쟁, 가뭄 등 편안한 일상 대신 생존만이 삶이 목적이 된 세상을 보여준다.

 

 

[포맷변환]라쇼몽 글자.jpg

 

 

‘라쇼몽’은 한자로 ‘羅生門’이다. 나생문은 이 세상에 펼쳐진 인생을 담고 있는 문이라는 의미로 번역되고 과거 수도의 정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 아래에서 붕괴된 나생문과 거짓뿐인 사람들의 모습을 대비시켜 보여준다. 하지만 끝내 감독은 희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완전하게 될 가능성을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영화 마지막에서 거짓 증언을 한 나무꾼이 버려진 아기를 데려간다. 이 장면은 원작으로 삼고 있는 작품들에는 없는 결말이다. 그렇기에 각색 과정에서 추가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독창적인 해석이고 어떤 면에서는 영화가 열린 결말이라고 할 수도 있다.


결국 영화와 구로사와 아키라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나무꾼의 선함일지, 아이의 옷을 가지고 간 그 사람처럼 악함일지는 모른다.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인 이기심을 보여주면서, 마지막에는 아이를 안고 웃음 짓는 나무꾼을 통해 끝내 이타적인 인간을 말한다. 하지만 나무꾼은 믿을 수 없는 화자이다. 그렇기에 정말 그가 아이를 데려간 목적은 알 수 없다.


그저 시작부터 거세게 쏟아지던 비가 마지막에 잠시 그쳤고 이젠 해가 뜨길 바랄 뿐이다.


*


앞에서 영화 《라쇼몽》이 소설 「라쇼몽」과 「덤불 속」을 각색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언급했다. 소설 「라쇼몽」은 “어느 날 해 질 녁이었다. 하인 하나가 라쇼몬 아래서 비를 긋고 있었다.”(46쪽)라며 시작한다.


중심인물은 혼란스러운 교토에서 일자리를 잃고 갈 곳 없이 라쇼몬 아래에서 절망하고 있는 상황이고 한 노파를 만난다. 노파는 라쇼몬에 쌓여 있는 시체에서 머리카락을 뽑아 가발을 만드는 인물로 하인에게 위협당하지만, 자신이 살기 위함과 함께 마땅히 그래도 될 시체들이라고 말하며 얼핏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이에 하인 역시 노파의 이야기에 “문 아래 서 있을 때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용기”(55쪽)를 느껴 노파의 옷을 빼앗고 라쇼몬을 나선다. 이러한 과정은 영화에서 라쇼몽이라는 공간의 상징과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각색되었다.


독특하게도 중간에 “작가는 조금 전 ‘하인이 비를 긋고 있었다.’라고 썼다.”(47쪽)라는 문장에서 작가가 소설에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가 소설을 쓰는 과정 전체를 소설 안에 넣어낸 시도이다.


그리고 소설 「덤불 속」은 문체가 심문 형식인 독특한 소설이다. 소설은 각 문단을 ‘검비위사에게 대답한 나무꾼의 이야기’와 ‘검비위사에게 대답한 유랑 승려의 이야기’, ‘기요미즈데라에 온 여자의 참회’ 등으로 구성하면서 그들의 자백 내용을 1인칭 서술로 보여준다. 내용은 영화에서 숲속 싸움과 거의 유사하다. 사무라이가 숲에서 죽었고, 그의 아내가 겁탈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각기 다른 증언을 하는 인물들 사이에서 진실이란 무엇인가, 라는 고민이 생긴다.


두 작품 속에서 영화는 원작을 가져오고 나름의 각색을 시도했다. 먼저, 라쇼몽이라는 성문 배경은 영화에서 도입과 결말 장면의 배경으로 사용된다. 소설에서도 비가 쏟아지면서 인물들을 한 자리로 모은다. 나무꾼과 승려, 한 남자가 모여서 이야기하는 내용은 소설 「덤불 속」의 이야기로 영화는 두 소설의 내용을 액자식 구성으로 재배치 하면서 하나의 이야기 흐름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시도가 영화 《라쇼몽》의 주제를 관객에게 몰입감 있게 보여주는 좋은 결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관아에서 증언하는 이들이 모두 각자의 시점에서 말하기에 정확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 영화와 소설 모두에서 동일하게 유지되었다.


다만, 영화로 각색하면서 새로운 효과를 만들어낸 지점이 있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으로 시각적인 장면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덤불 속」에서는 인물의 증언 대사만 존재하지만, 영화에서는 플래시백을 통해서 관객이 직접 숲속 싸움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로써 과장된 빛과 그림자의 대비, 의도적으로 흔들리는 카메라의 효과를 얻었다. 결국 눈부신 햇빛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환하게 보일 것만 같지만, 숲속 사건에 대해서 아무도 이것이 진실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가장 어둡고 숨겨진 공간인 것이다.


*


결국 《라쇼몽》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절대적인 진실이 아니라, 각자가 손에 쥐고 싶어 하는 기억과 해석이다. 비가 그친 라쇼몽 성문 아래에 홀로 드러난 어린아이의 모습처럼, 영화는 한편으로는 절망과 혼란을, 다른 한편으로는 희망과 가능성을 동시에 비춘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원작 소설이 지닌 모호함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마지막에 나무꾼이 아기를 안는 장면을 통해 새로운 의미의 문을 열어 놓았다. 이 열린 결말은 관객에게 ‘나는 어떤 진실을 믿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각자의 양심과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완성하도록 초대한다.


그렇게 영화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자 애쓴다. 성문의 나무가 무너지고 빗줄기가 멈춘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인간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온몸으로 마주치며, 진실 너머에 숨겨진 가능성까지도 함께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