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PRESS] 100년의 세월, 여전히 먼 예술과 사랑 - 연극 사의 찬미 [공연]

사랑, 비극, 그리고 예술과 현실의 이야기, 연극 <사의 찬미>

by 김한솔 에디터
2025.07.18 14:43

 

 

IMG_4351.jpg

 

 

*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형태로 ‘사의 찬미’를 기억한다. 어렸을 적 유난히 음악 시간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한국 최초의 대중가요인 ‘사의 찬미’를 떠올렸을 테지만,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은 서사극의 모습을 띤 ‘사의 찬미’에 익숙할 것이다. 상대적으로 최신작인 이종석 배우 주연의 드라마와 10주년을 돌파한 뮤지컬 버전 모두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아 성공한 덕분이기도 하다.


이처럼 ‘사의 찬미’ 시리즈는 요즘에 접어들면서 드라마와 뮤지컬로 유명하지만, ‘사의 찬미’를 소재로 한 예술 작품의 세계는 이보다 훨씬 방대하다. 시계를 많이 되감아 보면, 드라마와 뮤지컬 이전에 영화와 연극판이 먼저 존재했다. 김우진과 윤심덕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윤심덕>이라는 제목으로 1969년에 최초의 영화화가 이루어졌고, 1988년에는 극작가 윤대성이 집필한 희곡 <사의 찬미>로 연극화되어 극단 실험극장의 창립 30주년 기념작으로 초연되었다. 1991년에는 영화 <사의 찬미>가 새롭게 제작되었는데, 당시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김우진과 윤심덕의 비극적인 사랑을 많은 관객의 가슴 속에 깊게 새겨 넣었다.


이처럼 ‘사의 찬미’ 시리즈, 김우진과 윤심덕의 사랑 이야기는 책, 영화, 연극, 드라마, 뮤지컬. 이 외에도 다채로운 옷을 입은 채 현재까지 내려져 오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사의 찬미’ 시리즈는 대한민국 최초의 대중가요인 ‘사의 찬미’가 발표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무려 100년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이어져 왔다.


시간을 더 거슬러,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가보자. 1926년, 대한민국 최초의 소프라노인 윤심덕은 대중가요 ‘사의 찬미’를 발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일본에서 부산으로 돌아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그 부관연락선에서 윤심덕은 망망한 대한해협에 몸을 던졌다. 외로운 마지막은 아니었다. 당대에 유명한 극작가로 이름을 날리던 김우진도 윤심덕과 같은 배에 타 함께 거품처럼 사라졌으니까.


밝혀진 진실은 아쉽게도 여기까지가 전부다. 김우진과 윤심덕이 정말 연인 사이였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색언론들이 부추긴 염문설은 사람들의 상상력과 입을 타고 널리 퍼져나갔다. 이야기는 점점 살이 붙었고, 다양한 관점과 철학이 더해지며 단순한 스캔들이 아닌 예술 작품으로서 활짝 꽃피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두 사람이 대한해협에 몸을 던진 그날로부터 약 100년이 지났다. 그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팩션*을 통해 100년 후의 미래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사의 찬미’ 시리즈에서 다루는 김우진과 윤심덕의 열애는 소문만 무성한 가십일 수 있다. 그러나 당시 험난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던 지식인의 삶과 예술인으로서의 고충은 그들 안에 분명히 존재했고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두 예술인의 비극적이고 가련한 이야기에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다시금 찾아왔다. 2025년 여름, 올해 초 작고한 극작가 윤대성의 희곡 ‘사의 찬미’를 원작으로 한 연극 <사의 찬미>가 연일 매진 행진을 이어가며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100년의 세월을 건넌 이야기, 잘 숙성된 명품 와인과 같은 연극 <사의 찬미>에는 어떤 매력이 담겨 있을까.

 

*팩션(Faction):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합성한 한국식 신조어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새로운 시나리오를 재창조하는 문화예술 장르를 가리킨다.

 


IMG_4356.jpg

 

 

 

새로운 얼굴, 참신한 전개. 나혜석과 요시다의 등장


 

연극 <사의 찬미>에서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나혜석과 요시다라는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1세대 여성 운동가인 나혜석은 방송에서도 수차례 다뤄졌기에 현대인들에게도 익숙한 인물이다. 그는 화가로 활동하며 여성 해방을 위해 기득권층과 맹렬히 다툰, 여성 계몽에 앞장섰던 당대의 지식인이다.


실존 인물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나혜석과 달리, 요시다는 극의 진행을 위해 창작된 오리지널 캐릭터다. 요시다는 조선에서 근무하는 일본의 순사로 김우진과 윤심덕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김우진과 윤심덕의 친구인 홍난파를 찾아간다는 설정을 지녔다.


나혜석과 요시다는 각각 사건의 중심인물인 윤심덕, 홍난파와 조우하며 그들에게서 이야기의 진실을 전해 듣게 된다. 나혜석은 남편에게 불륜을 발각당하여 자살을 기도하던 중, 심윤덕에게 저지당하여 인연을 맺게 되고, 요시다는 은퇴 후 김우진과 심윤덕의 숨겨진 이야기로 소설을 쓰기 위해 두 사람의 친구인 홍난파를 찾아가게 된다.


윤심덕은 나혜석에게, 홍난파는 요시다에게 사건의 진실을 조심스레 풀어 놓는다. <사의 찬미>는 이러한 액자식 구성 아래에서 서사가 전개된다.


이야기의 수신자인, 두 인물. 나혜석과 요시다는 작품의 서사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각색 과정에서 여러 미디어를 통해 이미 완성도 높은 서사가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새로운 인물을 투입하는 것은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러나 극의 형식을 이루고, 관객에게 서사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인물들은 독특하고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그들은 관객의 귀가 되어 보다 흥미롭게 서사를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이야기의 수신자인 나혜석과 요시다의 존재 덕분에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서사의 진행을 수동적으로 지켜보는 것 대신, 마치 친구가 속삭이는 비밀 연애 이야기를 엿듣는 방식으로 숨겨진 진실을 조금씩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연출적 장치로 인해 연극 <사의 찬미>의 서사 전달 방식은 ‘관람’보다 ‘엿듣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관객은 더욱 극에 몰입할 수 있다. 연극 <사의 찬미>는 고전적인 서사 전개 방식에서 과감하게 탈피했고, 이는 다른 연극과 차별화된 매력 포인트가 되었다.


이뿐만 아니다. 나혜석과 요시다는 극의 참신함을 더하는 감초로만 소비되지 않았다. 관객들이 이들의 귀를 통해 내용을 전해 듣는다는 면에서 나혜석과 요시다의 역할은 관객의 역할과 대응한다. 이들의 특성은 관객의 특성과 일치하는 모습을 보인다. 관객들은 같은 작품을 관람하더라도 자신의 만족도에 따라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엄지를 치켜세우며 추천하는 이가 있다면, 분노하며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최하점의 평점을 매기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관객은 작품과 접한 자신의 감정을 기반으로 다양한 행동을 수행한다. 극 중의 나혜석과 요시다도 마찬가지다. 같은 이야기, 김우진과 윤심덕의 사랑 이야기를 접한 이들이지만,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의 행동은 현저히 상반된다.


김우진과 윤심덕의 이야기로 소설을 쓰기 위해 홍난파의 집을 찾은 요시다는 본래의 목적을 이루자, 덤덤한 말투로 ‘소설이 나오면 가장 먼저 보내주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퇴장한다. 이는 윤심덕의 실종에 고통스러워하는 홍난파와 대비되어 더욱 비참하고 차갑게 느껴지고, 조선을 수단으로 여긴 일제의 본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혜석의 경우는 어떨까. 극 초반, 김우진과 같이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윤심덕을 알아본 나혜석은 급전을 목적으로 기자에게 제보하게 된다. 그러나 윤심덕의 가련한 이야기를 들은 나혜석은 그에게 감화되어 윤심덕의 생존 사실을 숨기기로 결심한다. 대화를 통해 여성 사이의 연대를 느끼고 금전 대신, 정의를 택한 것이다.


이처럼 같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를 재미난 이야기 소재로 삼으려는 요시다와 하룻밤의 친구를 지키기 위해 함구한 나혜석의 행동은 판이하다. 이는 연극 <사의 찬미>의 관객과 김우진과 윤심덕의 이야기를 접했던 당시 사람들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이색적인 장치라 할 수 있다. 연극 <사의 찬미>가 숨겨 놓은 보석 같은 매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IMG_4373.jpg

 

 

 

100년이 지나도 좁혀지지 않는 간극, 현실과 예술 사이


 

앞서 설명한 대로, 김우진과 윤심덕의 이야기는 이들의 친구인 홍난파와 사건의 당사자 중 한 명인 윤심덕의 입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이를 통해 연극 <사의 찬미>는 사건의 주요 인물인 3명 중, 2명이 발화자로 나서는 독특한 구조를 취하게 된다.


이야기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화자에게 이야기 전개를 맡긴 탓에 홍난파와 윤심덕은 극의 초반부터 후반까지 일관된 태도를 유지한다. 여러 사건을 겪으며 혼란스러워하는 대목이 나오기도 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


표현 방식과 달리, 홍난파와 윤심덕의 캐릭터성만을 따져 보았을 때도 이들은 결코 입체적인 인물이라 할 수 없다. 홍난파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윤심덕이 행복하길 바란 사람이고, 윤심덕도 한결같이 김우진을 사랑했으며 그와 달리 예술을 포기한 적이 없었던 인물이다.


반면 김우진은 심층적이고 복잡한 내면을 지닌, 이들과 대비되는 인물이다. 연극에 심취한 예술가인 그는 연극을 단순한 대중오락이 아닌, 일제 치하에 놓인 조선 사람들을 계몽시킬 수 있는 도구로 여겼다. 실제로 김우진은 총연출을 맡아 국내 순회공연을 열기도 하였으며 이 사실은 연극 <사의 찬미>에서도 잘 묘사되었다.


이렇게 꿈을 펼쳐나가던 김우진의 발걸음은 현실의 장벽과 마주하게 되었다. 자신의 영농사업을 물려받길 바랐던 아버지의 뜻이 점점 완강해졌기 때문이다. 예술과 현실 사이의 고민이 그의 머리를 어지럽게 헤집었다. 이와 함께 가슴을 뒤흔든 일도 함께 닥쳐왔다. 함께 연극을 만들어간 동료, 윤심덕이 적극적으로 김우진에게 호감을 표하고 사랑을 고백하게 되었다.


윤심덕은 김우진에게 연극과 같은 존재였다. 한순간에 그의 깊은 마음속에 들어차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두 존재는 그에게 강렬한 운명처럼 다가왔다. 이 지점에서 김우진 역을 맡은 윤시윤 배우의 연기가 돋보였다. 자신도 마찬가지로 호감을 느끼지만, 상대가 알아채서는 안 되는 난감한 상황과 안타까운 마음을 눈빛과 떨리는 목소리로 잘 표현했다.


다시 돌아와, 김우진은 철저히 자신의 마음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일찍이 중매로 결혼 한 유부남이었고, 조선에 두고 온 아내를 저버릴 수 없었던 탓이었다. 연극과 윤심덕이 행복한 이상이라면, 가업과 가정은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리고 모두 취한다는 선택지는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갈등 상황으로 인해 김우진의 내면에서는 이상과 현실이 계속 충돌하는 폭풍이 일었다.


가업과 극작 활동을 병행하며 이상과 현실을 모두 챙길 수도 있었으나, -실제로 김우진은 가업을 이으면서 시, 평론, 희곡 등 여러 문학작품을 발표했다.-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는 윤심덕의 존재로 인해 이상과 현실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극 중반부까지는 연극과 윤심덕을 뒤로 하고 귀향하며 현실을 택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김우진은 먼 곳에서 한달음에 자신을 찾아온 윤심덕을 마주한 뒤 마음을 바꾸게 된다. 한때 자신을 뒤흔들었던 가치, 사랑과 예술로 대표되는 이상을 택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러한 심경의 변화를 표현하는 장면은 근거가 다소 빈약해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사랑과 예술이라는 이상을 좇는 일에 합당한 이유를 찾는 것은 너무한 처사일지도 모른다.


김우진의 불안하고 복잡한 심리는 극 중 다양한 배경과 연출 요소를 통해 효과적으로 나타났다. 앞서 언급한, 이상과 현실의 대립과 일제강점기의 강압적인 사회 분위기는 꿈을 좇았던 평범한 청년이자 예술인 김우진의 목을 옥죄어왔다. 김우진 본인이 아닌, 주변인들인 윤심덕과 홍난파가 그의 애처로운 행적을 설명하는 연출 방식도 위태로운 그를 표현하는 유효한 장치가 되었다.


앞서 서술한, 연극 <사의 찬미>의 서사는 김우진과 윤심덕의 염문설을 사실처럼 확장한 허구의 이야기다. 그러나 극 중의 김우진과 실존 인물 김우진은 모두 예술이라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큰 내적 갈등을 겪었고,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팩트와 픽션을 넘나드는 대전제이며, ‘사의 찬미’를 소재로 한 문화 콘텐츠가 꾸준히 사랑 받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김우진과 윤심덕이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들과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마음껏 꿈을 펼치라는 사탕발림을 여러 곳에서 들을 수 있지만, 세상은 그리 쉽게 자아실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의 발전을 통해 보다 넓은 세계를 접하게 되니 이상과 현실이 부딪히는 일이 더욱 잦아지게 되었다.


사람마다 좇는 이상은 각기 다를 것이다. 김우진과 윤심덕처럼 사랑과 예술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평화, 혹자는 정의일 수도 있다. 연극 <사의 찬미>는 극의 주인공들처럼 이상을 추구하는 동지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의도는 실제 사건의 결말과 극의 결말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그림1.jpg

 

 

윤심덕이 나혜석에게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서 유추할 수 있듯, 윤심덕은 자살한 것처럼 위장한 채 유럽 대륙을 유랑하며 자신의 꿈을 펼치게 된다. 윤심덕이 대한해협에서 실종된 후 그를 보았다는 소문조차 없었던 현실과는 대조적인 결말이다. 그러나 김우진의 운명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는 윤심덕과 함께하지 못한 채 폐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이러한 결말도 이상에 한 걸음이나마 가까워졌다는 차원에서는 충분히 매력적인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대한해협에서 세상을 등진 두 청년, 두 예술인이 조금이나마 이상을 좇으며 희망을 키워나갔고, 마음에 불꽃을 피워 행동으로 나서는 결말. 이처럼 연극 <사의 찬미>는 모두가 이상에 닿을 수는 없지만, 이를 외면하지 않는 과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관객들의 가슴을 포근하게 안아주었다고 생각한다.


이와 더불어, 매체와 연극을 넘나드는 배우들의 연기 실력과 소소하지만, 확실한 유머 코드를 챙긴 극본도 <사의 찬미>의 재미를 한껏 더했다. 이처럼 가벼운 재미와 진중한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연극 <사의 찬미>는 현재 절찬리 공연되고 있다.


연극 <사의 찬미>는 7월 11일, 금요일부터 8월 17일, 일요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예매는 NOL티켓에서 가능하다.


매력적인 연극인 <사의 찬미>의 흥행과 다채로운 옷을 입은 ‘사의 찬미’의 새로운 시리즈를 기대해본다.

 

 

 

프레스 김한솔.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