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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도서, 전시, 공연 등 여러 문화초대를 경험해 왔지만, 여전히 내게 가장 익숙한 언어는 ‘텍스트’다. 음악 콘서트는 듣는 순간에는 명료함에 갇히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로움을 주지만, 그 감각이 추상적이라 종종 글로 옮기기엔 다소 어려웠던 문화초대 중 하나였다. 무엇에 집중해 감상해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리뷰를 쓸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는 탓에, 음악 공연 초대에 응할 땐 설렘에 약간의 긴장감과 두려움이 따라붙는다.
이번에 다녀온 문화초대는 <신아람 After Bium> 공연이다. ‘재즈 공연, 안 본 지 꽤 된 것 같다’는 생각에 별다른 망설임없이 신청했지만, 돌이켜보면 공연의 주제인 ‘비움’이라는 단어에 끌렸던 것 같다. 왜인지 ‘비움’이라는 말은 퍽 오랫동안 마음 한켠에 머물던 화두였다.
비움프로젝트 II - 신아람 After Bium
[1] 비움; 작별로부터 시작하는 것 - 곡 The Farewell
비움프로젝트는 곡 The Farewell을
감사와 안녕을 담아 나를 스쳐간 누군가의 앞날을 조용히 응원하는 곡
음악을 감상하며 눈을 감고 지금은 곁에 없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기억을 일부러 떠올렸다. 여전히 떠오르는 얼굴은 있었지만, 그들은 예전과 달리 더 이상 괴로운감정으로 나를 끌어들일 수 없었다. 그제서야 그들과 진정으로 작별했음을 나는 새삼스레 깨달았다.
“비움을 통해 마주한 첫 번째 과제는 작별이었다.
사람뿐 아니라 시간과, 그 안에 깃든 기억과도 이별해야 했다.
내게 머문 모든 곳에 전하는 작별과 감사의 손짓”
[2] 비움; 과거를 인식하면서 미래를 희망하는 낙관 – 곡 Hometown Reverie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어린 시절을 보낸 본가와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살아온 이 동네엔, 따뜻한 장면들 속에 아프고 불편했던 풍경도 겹쳐 있다. 독립을 하게 되어 한때는 집값이 저렴하며 애인이 살던 2호선 라인 자취촌으로 이사를 갔었지만, 동네의 정취가 그리워 결국 작년에 다시 이 동네로 돌아오게 됐다.
익숙한 것들이 하나둘 사라져가는 동네에 대한 아쉬움에서 비롯된 곡 Hometown Reverie
곡이 이어질수록 세 악기가 뒤섞여 오묘한 슬픔의 분위기가 연출되어 향수의 애틋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렇다고 마냥 풀이 죽은 축 처진 곡은 아니라는 게 특징이다. 명랑한 드럼이 끝까지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 곡은 기쁨과 슬픔이 어우러진 오래된 동네에서 과거를 인식하면서도, 미래를 희망하려는 나와 그녀의 잔잔한 낙관과 닮아있다.
“전에는 알지 못했다. 내가 살아온 동네가 주는 안정감,
그리고 이곳에서의 추억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녹음을 마치고, 테마 뒤에 이어지는 피아노 소리에 나의 정체성이 담겨 있음을 깨달았다.”
[3] 비움; 타인에게 다정할 수 있는 여유 - 곡 May All Be Peaceful
삶이 진공상태인 것처럼 꽉 막혀있을 땐, 남들을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타인은 귀찮음이, 배려는 사치가 되고 만다. 인색함을 예방하기 위해선 삶에 반드시 여백이나 구멍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 틈으로 오래된 감정은 빠져나가고, 새로운 인연과 낯선 가능성이 스며들며 다시 순환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말이다.
들릴 듯 말 듯한 엷은 드럼 소리를 배경으로 조심스럽게 시작되는 피아노의 선율은 약 1분 30초간 홀로 곡을 이끈다. 화려한 색소폰마저도 수채화처럼 은은하게 퍼지며 곡 제목에서 드러나는 주제인 ‘평화’를 감각적으로 공명하게 한다. 복잡한 꾸밈을 과감히 덜어낸 바로 그 자리에 비로소 타인을 위하는 다정함이 들어선다.
비움은 나를 넘어 타인의 평화까지 소망할 수 있는 여유이기도 했다. 이 곡 덕분에 주변 사람들의 평안을 바라주는 마음을 오랜만에 꺼내보게 되었다.
“나의 평화뿐만 아니라 모두의 평화를 바라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어쩌면 그것이 비움의 선한 영향력인지도 모르겠다.
도입부의 오른손이 의미하는 비움의 여백,
그리고 점차 모든 악기가 어우러져 엮어내는 평화의 하모니.”
마치며
비우고 싶다는 건, 그만큼 품고 있는 게 많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작곡가 신아람이 ‘비움’에 집중했던 건, 삶의 작은 조각들조차 쉽게 흘려보내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난 그녀의 말과 곡을 통해 내가 왜 ‘비움’이라는 말에 관심을 두어왔는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신아람 After Bium>은 기존의 음악 공연들과 달리, 연주와 작곡가의 내레이션이 유기적으로 엮여 있다. 음악 사이사이 이어지는 신아람의 설명이 곡에 담긴 비하인드를 짚어준 덕에, 문학적인 음악을 즐길 수 있던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녀의 설명을 따라가며 비움을 온몸으로 감상했듯, 이 글 또한 누군가에게는 음악을 감각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