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요한 하리의 베스트셀러 『도둑맞은 집중력』을 읽으며 현대 사회의 집중력 위기 실태와 그 다층적 원인, 해결 방안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도야마 시게히코의 『생각의 도약』에서는 생각의 씨앗을 뿌린 후 시간적 여유를 두고 천천히 숙성시켜야 한다는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 그러던 중 이번에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의 표지에 적힌 "지적 행복은 오직 생각의 빈틈에서 나온다"는 문구를 보았을 때, 나는 이 책이 천천히 사유할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 느림과 비움의 미학을 이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의 페이지를 하나둘씩 넘기며 가장 먼저 받은 첫인상은 저자의 글 자체가 '산만하다'는 것이었다. 소설가 김중혁 작가가 추천사에서 저자의 글쓰기 스타일이 산만하다고 지적한 데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전체 분량이 150여 쪽으로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목차에서부터 본문의 장 구분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점은 논리정연하고 체계적인 글 읽기에 길들여진 나에게 적잖이 당황스러운 구성이었다. 마음이 끌리는 장부터 먼저 읽어보는 독서 습관을 가진 나로서는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이러한 구성에 대한 반감은 몽테뉴의 산만한 글에 대한 버지니아 울프와 니체, 그리고 저자의 예찬이 나오는 대목에서 이내 사그라들었다. 명확한 청사진이나 목적지 없이 여기저기 표류하듯 전개되는 저자의 글쓰기는 오히려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듯하면서도 수많은 이야기를 엮어내며 다채롭게 논지를 심화시키는 필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저자의 의식 흐름을 따라 깊은 사유에 잠기는 경험은 꽤나 흥미로웠으며, 어쩌면 이 책의 구성 자체가 '산만함'이라는 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는 역설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이 책은 '산만함을 유익하게 활용하는 방법'이나 '산만함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자기계발서처럼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대신, 인문학계의 대가인 저자의 깊이 있는 통찰력과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산만함'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재고하도록 이끈다. 칸트의 목적 없는 '합목적성', 니체가 중시한 ‘반추’, 바르트의 '비어 있는 상태', 몽테뉴의 산만해 보이는 저서 속 숨겨진 사유, 흄의 ‘관조적 집중’, 하이데거의 '깊은 권태', 그리고 호수를 산책하며 몽상 속에서 깊은 자아를 발견한 루소의 이야기까지, 수많은 철학가와 예술가,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발견하고 숙고한 산만함, 주의력, 집중력에 대한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넘나들며 '산만함'의 가치와 효용을 강력히 주창한다.
이러한 지성들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더 이상 '산만함'이 부정적인 의미를 상실한다. 그 개념에 대한 제각각의 정의와 주장에 전례 없는 '주의력'을 기울여 깊은 사유에 잠기게 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그러한 위대한 인물들도 스마트폰 앞에서 무력화되는 우리들과 같이 산만함에 대해 고민했다는 사실이 작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이는 현대 사회의 생산성 강박에 대한 강력한 반론이자, 사유의 진정한 깊이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되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다만 한국어판 제목에 대해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원 제목은 『The Plenitude of Distraction』으로, 직역하자면 '산만함에 담긴 풍요로움'이다.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라는 제목과 '천천히 사유할 때 얻는 진정한 통찰의 기쁨'이라는 부제에는 저자가 주창하는 유익함으로서의 ‘산만함’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듯하다. 아마도 저자가 서두에 언급했듯 '산만함'이라는 단어가 대부분의 사람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주지 않기 때문이리라 짐작해 본다.
필자처럼 과도한 성과 지향적 태도와 목표 설정 및 달성으로부터 얻는 도파민에 중독된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도파민 중독이 스마트폰이나 숏폼 콘텐츠 중독보다도 더 중증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는 우리에게 익숙한 집중과 효율의 틀을 깨뜨리고, 사유의 빈틈에서 피어나는 지적 행복과 진정한 통찰의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