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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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은 내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네다.

 

높은 빌딩과 복잡한 도로들로 가득한 서울 도심 속에서, 서촌은 조선 시대의 고즈넉한 숨결을 품고 있다.

 

고층 건물의 그림자 아래 마주하는 궁궐의 담벼락, 좁은 골목에 조용히 자리한 한옥들, 오래된 가게의 낡은 간판들까지—이곳을 걷다 보면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일까, 서촌에서는 발걸음 하나에도 마음이 느려지고, 시선 하나에도 이야기가 머문다.


이번에 서촌에서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국립민속박물관.

 

지금 이곳에서 <오늘도 기념: 우리가 기념품을 간직하는 이유>와 <사진관 전성시대>, 두 개의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다.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진 전시지만, 모두 ‘기억을 남기는 방식’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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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기념>은 사람들이 왜 기념품을 모으고, 간직하고, 누군가에게 전하려 하는지를 보여주는 전시였다.

 

유년 시절 받은 엽서, 영화관에서 챙긴 포스터, 세계 잼버리에서 교환한 뱃지, 좋아하는 스포츠 팀의 씰 스티커와 유니폼, 그리고 여행지에서 산 작은 키링과 컵들. 이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는 단순한 물건일지 모르지만, 누군가의 손에 들려 있던 시간만큼은 소중하고 또렷했다.

 

무심히 지나쳤을 뻔한 사소한 물건들이, 그것을 간직했던 사람의 마음과 시선을 통해 특별한 기억의 조각으로 탈바꿈한다. 그 전시장을 걷는 내내, 나 또한 나만의 기념품들을 떠올리게 됐다.

 

그리고 이어진 <사진관 전성시대>는 또 다른 방식의 ‘기억’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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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라는 건, 순간을 붙잡는 행위다. 지금은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셔터를 누르고, 실시간으로 편집하고 공유하지만, 한때 사진은 매우 의식적인 행위였다.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빛을 기다리고, 찍은 사진을 인화하기까지 며칠을 기다려야 했던 그 시절. 가족이 함께 사진관을 찾아 단정한 복장을 하고 포즈를 취하던 모습, 졸업식 날 마지막 교복을 입고 친구들과 나란히 선 장면, 주민등록증을 만들기 위해 처음 찍은 증명사진—그 시절의 사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의식이었고, 다정한 통과의례였다.

 

전시장 안에는 그러한 기록들이 차곡차곡 전시되어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서 있었다. 사진의 프레임 안에는 인물뿐 아니라, 그들의 표정과 옷차림, 배경의 색감과 공기의 결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두 전시는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간직하나요?’ 그 물음에 나는 조용히 마음속 상자를 열었다.

 

영화를 보고 받은 한정 포스터, 여행지에서 산 자그마한 마그넷, 고등학교 시절부터 해마다 써온 다이어리들, 그리고 친구들과 웃으며 찍은 필름 사진들. 그 모든 것들이 어쩌면 지금의 나를 설명해주는 작고 단단한 조각들이 아닐까.

 

전시장을 나서니,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릴 만큼 더운 날씨가 나를 맞이했다.

 

양산을 펼치고 손풍기를 켠 채 도착한 다음 장소는 대오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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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넘는 세월 동안 자리를 지킨 이 오래된 책방은, 지금은 카페로 운영되고 있지만 여전히 ‘책방’이라는 이름을 품고 있었다.

 

대오서점은 책을 좋아하던 한 부부가 함께 만들어간 공간이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기억하기 위해, 책방의 이름을 두 사람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 ‘대오’라 지었다고 한다.

 

책방 깊숙이 자리한 작은 마당과 골방들, 바닥을 가득 채운 낡은 책장들은 단순한 상업 공간이 아니라, 한 가족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집 같았다. 복작복작한 어린 시절, 가족들이 책을 고르고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눴을 풍경이 그려졌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청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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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개방 이후, 내부 관람이 가능했던 이곳은 올해 8월부터 다시 관람이 제한되었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예약을 서둘러 다녀왔다.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린 공간은 묘하게 차가운 공기를 머금고 있었고, 한국식 단청 문양과 서양식 건축 양식이 혼재된 내부는 어쩐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권력과 일상이 교차하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바로 옆에 경복궁이 자리한 것도 그 인상을 더 짙게 만들었다. 하나는 과거의 권위가 머물던 궁궐이고, 하나는 현재의 권력이 지켜온 집무 공간. 시간은 다르지만,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 역사를 풍미한 권력의 공간이 나란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날 나는 그렇게 서촌을 걸으며 시간과 기억을 함께 걸었다. 모든 장소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나 역시 나만의 기억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고 있었다.

 

기억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작은 기념품에, 오래된 사진에, 이름을 붙인 책방에, 그리고 조용히 닫힌 공간 속에도 남아 있다.

 

그런 기억들이 우리를 단단하게 하고, 오늘의 나를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기록하고, 간직하고, 누군가에게 전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촌은 그렇게, 기억을 걸어가는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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