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기병과 마법사 표1.jpg



 

바로 여기가 원본인 판타지


 

『기병과 마법사』는 마치 동양풍 마블 영화를 한 편 본 듯한 기분을 남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머릿속에서 장면이 실감나게 재생된다. 배우들이 어떤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시나리오만 읽었는데 어떻게 그려질지 보이더라”고 말하는 걸 종종 보곤 했는데, 이 책을 통해 저렇게 답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이 책은 총 3부로 나뉘어 있으며, 각각이 분명한 서사적 구조를 갖는다. 1부는 칼을 숨기고 살아가던 영윤해가 대영솔이 되어가는 과정, 2부는 대영솔로서 반역과 전장의 수싸움을 펼치는 이야기, 그리고 3부는 마법사로서의 존재와 감정이 중심이 된다. 두 존재가 만나 서로에게 안식처, 위안, 그리고 응원이 되어주는 과정이 자연스럽고도 인상 깊다.

 

‘기병’과 ‘마법사’라는 말은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지만,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그 세계관에 스며든다. 특히 소설의 배경은 한반도를 연상시키며 생생함을 더한다. 작가는 “이 이야기의 숨겨진 지향점은 ‘바로 여기가 원본인 판타지’”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기병과 보병, 마군 등의 전술이 묘사될 때마다 익숙한 사극 장면을 떠올리며 몰입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지점이 바로 전장의 수싸움과 병법이다. 병법이나 전술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기병과 보병, 좌기대와 중앙병 등 각 부대의 구조와 전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사람 키보다 긴 창으로 이루어진 창병의 진형, 그것을 돌파하는 중장기병의 대열, 수가 적을 때도 심리와 환경을 이용해 전세를 뒤집는 묘사들이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머릿속에서는 마치 드라마나 사극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듯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아마 이렇게 상황을 자세히 그리며 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작가가 ‘여기가 원본인 판타지’로 설계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신발이 말해주는 다르나킨의 갈등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다르나킨의 심적 변화를 표현한 방식이었다. 마목인과 경작인 사이에서 태어난 다르나킨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그의 감정은 ‘신발’이라는 상징을 통해 표현된다.

 

영윤해를 만나기 전까지 다르나킨은 좌기대대감으로 전장을 누비는 마목인의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 처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신발을 벗은 채 따뜻한 바닥에 발을 디딘다. 이는 곧 경작인의 삶에 발을 디딘 순간이기도 하다.

 

 

“안으로 모시게.” 영윤해의 목소리가 객사 안에서 들려왔다. / ‘안으로?’ 다르나킨은 당황스러웠다. 보고를 하러 온 적은 수없이 많았지만, 객사나 동헌 안으로 들라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다. (p.87)

 

 

하지만 따뜻한 바닥의 온기는 그를 생각으로 가득 채우고 혼란에 빠지게 만든다. 이런 모습을 눈치 챈 상인 하살루타는 다르나킨에게 “생각이 너무 많다”며 바닥이 두꺼운 신발을 건네준다. 생각이 달아나도록.

 

 

“가만 보니 대감은 생각을 발로 하더군요. 그런데 대감은 궁리하는 데는 재주가 없어 보여서 말이지. 말을 모는 재주에 비하면 말이오. 그래서 말인데, 바닥이 두꺼운 신발을 신으면 생각이 좀 달아나지 않겠소?” (p.313~314)

 

 

그 후, 다르나킨은 하랄루타가 준 신발을 신고 겨울 초원에 나선다. 그는 비로소 마음속 갈등에 종지부를 찍는다. 결국, 자신의 방향은 영윤해였기에.


 

“다르나킨은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어쩌면 하살루타가 준 신발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면 폭설에 말을 몰고 찾아와 눈앞에 마법을 펼쳐 보인 다음 자기 품에 안겨 속삭이는 사람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 사람이 다름 아닌 영윤해였으므로.” (p.325)

 

 

이런 묘사는 다르나킨의 혼란스러운 감정, 정체성의 경계, 그리고 영윤해를 향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전달되도록 한다. 드러내지 않고 은은하게 감정을 쌓아가는 서술이 인상적이었다.

 

 

 

마법이 펼쳐지는 계절에



KakaoTalk_20250617_015820247.jpg

 

 

『기병과 마법사』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다. 전쟁과 마법, 정체성과 감정, 전술과 사랑이 섬세하게 엮여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머무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보였던 작가의 서명. "마법이 펼쳐지는 계절에." 이 말의 의미가 처음엔 궁금했다. 어떤 계절이 마법이 펼쳐지는 계절일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이렇게 답하고 싶다. “이 책을 읽고 있는 그 때의 계절이 곧 마법이 펼쳐지는 계절이라고.” 여름이면 여름, 겨울이면 겨울.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현실의 계절이 멀어지고, 머릿속에는 오직 책 속 세계만이 펼쳐진다. 그때가 바로, 마법이 펼쳐지는 계절이 된다.

 

약 4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은 책을 잘 읽지 않던 나에게 다소 부담이었지만, 막상 첫 장을 넘기고 나니 몰입할 수 있었다. 주말 내내 시간을 잊고 읽게 만든, 오랜만에 만난 재밌는 소설이었다. 만약 조금 특별한 계절을 보내고 싶다면, 한번 이 책을 읽어 보길 추천한다.

 

 

 

곽미란.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