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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포스트록에 빠져있던 어느 날, 우연히 잠비나이의 '그들은 말이 없다'를 듣게 되었다. 분노가 해일처럼 몰려오는 강렬함에 매료되었다. 해금이라는 전통 악기가 만들어내는 날카롭고도 깊은 울림은 알고 있었던 어떤 포스트록과도 달랐다. 그 독특한 음악 세계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누구일까, 어떤 생각과 철학으로 이런 음악을 하는 걸까. 그런 호기심이 나를 김보미의 『음악을 한다는 것은』을 읽게 했다.

 

 

<그들은 말이 없다>

 


저자 김보미는 해금이라는 가장 오래된 악기로 가장 낯선 음악을 만든다. 전통의 영역에서 출발한 해금이, 잠비나이라는 이름 아래 록과 만나 장르를 뛰어넘는 실험의 도구가 되기까지, 저자는 줄곧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간다. 이 책은 하나의 악기로 세상과 연결되고, 전통과 미래 사이를 넘나드는 한 연주자의 고백이기도 하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두 줄의 마법


 

책의 1부는 ‘해금’ 이라는 미지의 악기에 대한 탐색으로 가득하다. 지판이 없어 정확한 음을 짚어내기 어려운 해금의 구조와 그 모호함 속에서 스스로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음악가의 치열한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저자가 해금 산조에 서사를 부여하며 감정의 흐름을 짚어낸 방식은, 음악을 단순한 기술이 아닌 이야기로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그림처럼 연주해보자”라는 교수님의 말에 처음으로 충격을 받았다는 고백처럼, 저자의 음악 여정은 ‘형상 없는 것을 소리로 그리는 일’에 다름 아니다.

 

저자가 해금 산조를 "풀어헤치기" 시작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한 장단 한 장단이 그러해야 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납득할 수 있는 서사를 부여”하며, “어떤 음이 울면 다음 음이 토닥여주는 선율의 인과”를 찾아가는 과정은 단순한 연습을 넘어선, 깊은 철학적 사유로 다가왔다.

 

 

 

경계를 허무는 음악의 힘


 

2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잠비나이의 세계를 다룬다. 한국 전통악기를 기반으로 록과의 공존을 시도한 이 밴드는 SXSW, 코첼라, 프리마베라 등 세계 유수의 무대에 오르며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허물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여정보다 더 눈에 들어왔던 건, ‘음악은 장벽을 넘고 사람을 연결한다’는 저자의 확고한 믿음이었다.

 

"전통의 생김새를 그대로 유지하거나, 그 탈을 아예 벗어버리거나" 하는 기존의 이분법적 접근을 넘어서, “모두가 자신의 고유성을 지키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교집합”을 찾아나간 여정은 매우 흥미롭다. 이 실험은 단지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낸 것만이 아니라, 음악이 지닌 가능성 자체를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

 

특히 몽골 초원에서 「커넥션」을 연주하던 기억을 떠올리는 저자의 문장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거대한 대자연 속에 먼지 같은 존재이지만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연결된 것 같은 느낌.” 음악이 개인의 감정에서 시작해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되는 순간이자, 음악가로서 존재의 의미를 새기는 시간이었다.

 

 

 

음악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다


 

무엇보다 이 책이 감동적인 이유는, 음악이라는 추상적인 세계를 ‘살아가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삶을 산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문장은 이 책의 정수를 관통한다. 무대에서 혼신을 다해 연주하는 순간들, 낯선 땅에서 울려 퍼지는 해금의 음색, 감정을 소리로 번역하는 실험들—이 모든 것이 저자에게는 ‘음악’이자 ‘삶’의 여정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음악가의 시선에서 음악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언제나 듣는 사람의 위치에서 음악을 경험해 왔지만, 이 책을 통해 ‘만드는 사람’의 고민과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음악 앞에서는 모든 경계와 편견을 내려놓고, 그 순간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감각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낯섦을 끌어안는 용기



『음악을 한다는 것은』은 "익숙한 것을 부수고 낯선 것을 끌어안는" 한 뮤지션의 용기 있는 실험 기록이다. 국악과 록이라는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장르를 연결한 저자의 시도는,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모든 예술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줄 것이다.

 

이 책은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 특히 창작의 고민을 안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해금이라는 단 두 줄의 악기로 무한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그려내는 김보미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만의 고유한 목소리가 있고, 그 목소리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해준다.

 

잠비나이의 음악이 그랬듯이, 이 책 또한 강렬하면서도 조용히, 우리 내면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나는 다시 묻게 된다.

 

나에게 ‘음악을 한다는 것’은,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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