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사랑스러운 작화에 리얼리티를 부여한 모션과 성우의 연기를 보면서 마냥 잔잔한 일상물일 것이라 시사하는 듯했다. <고스트캣 앙주>의 첫 시퀀스를 보면서 파악한 영화의 인상이다.
이러한 인상을 가지고 시작한 탓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잔잔하게 흘러가는 분위기 속 희석된 감동을 굳이 찾으려 애쓰지 않았다. 다만 정(情)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나의 마음을 재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었음을 느꼈다.
<고스트캣 앙주>는 미야자키 하야오나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이 인간이 겪는 아픔과 부조리한 세상의 이면을 들추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위로한다.
<고스트캣 앙주>는 단순히 어린 아이가 어른이 되기 위한 조건을 갖춰가는 성장 서사로만 읽히기에는 부족하다. 이 작품은 아직 어린 소녀가 요괴 고양이 '앙주'와 시골 마을에서 함께하는 일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려내면서 상실을 차차 변화로 바꾸어가는 삶의 자세를 가르쳐준다.
주인공 '카린'에게 자신이 선택한 것도 아닌, 일상에 갑자기 들어앉은 존재가 뜻밖의 위로가 되어주면서 현실은 부정하고 싶은 무언가가 아니게 된다. 생김새는 귀여워도 행동거지나 말투가 철부지 같은 아빠를 연상케 하는 요괴 고양이라니. 카린에게 앙주는 그리 반갑지 않은 존재였을 것이다.
앙주의 이미지가 카린의 아빠와 평행선에 놓였음을 이해하면 이 37세의 거대한 고양이가 그저 조력자의 역할에 머무르지는 않을 것임을 곧 알게 된다. 앙주는 카린의 인생에서 용병이 아닌 아군이 되어주는, 카린이 선택하지 않은 것 중 최고의 행운이었다.
영화에서는 앙주 뿐만 아니라 어느 캐릭터도 완벽하고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은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팀원보다는 정신적으로 위로가 되어주는 친구의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재밌는 것은 카린의 인생에 어느 순간 이들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모습은 거리를 두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마주하고 자신도 모르는 새 고운 정 미운 정 다 든 동네 이웃의 모습과도 닮았다.
도쿄를 떠나 시골에 내려온 카린이 그곳에 정을 붙일 수 있었던 이유에는 이런 이웃들이 있다. <고스트캣 앙주>에서는 이를 통해 더 나아가 집이 장소가 아닌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가 피상적인 가치에 몰두하면서 포기했던 마음의 안식과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심술과 고집을 부리는 전형적인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주인공 캐릭터를 철없다 타박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린이 느끼는 외로움과 불안에는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중후반부에 가서는 앙주와 스릴 넘치는 모험을 함께하기도 하지만, 우리를 일으켜 주는 것은 지루한 현실에서 꺼내줄 구원자가 아니라 집이라는 것을 주지시킨다.
잘 생각해보면 주변에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오히려 도전을 꺼리게 된다. 언제든 돌아갈 곳이 되어주는 집의 존재는 그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가 더 많은 모험에 서슴없이 도전하게 해준다. 자신과 계속 함께하며 언제까지나 자신의 편에 서줄 아군을 만들고 싶어하는 것은 대부분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다. 필요에 의해 잠깐의 시간을 함께하는 동료 등의 용병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마음을 열어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아군이 있을 때 인생이 비로소 풍요로워질 수 있다.
<고스트캣 앙주>는 왠지 보는 내내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어떻게든 잘 될 거라고 기묘한 확신을 불어넣는다. 몸만 큰 어른들과 곧 일을 칠 것 같은 어린아이들이 한 데 있는데도 이들 사이에 모종의 신뢰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그들을 개별적 존재가 아닌 하나로 만들어준다. 이들의 가족과도 같은 관계는 영화 속에서는 무척 자연스러운 설정으로 녹아들어 있지만, 지금 한국 현실에 대입해보면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요괴라는 설정보다도 이러한 관계성이 영화의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끌어올려주는 듯했다.
영화는 잘 기억나지 않는 다정한 이웃에 대한 기억을 조작하듯 이제는 많이 사라진 정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로써 우리는 카린이 느꼈던 외로움과 비슷한, 내면의 정에 대한 그리움을 발견하게 된다.
일상적이기 때문에 소박하지만 중요한 가치를 망각한 것은 아닐지, 카린의 인생에 들어온 요괴 고양이 앙주처럼 엉뚱하지만 그만큼 감사한 인연을 우리가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