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뭔가 특별한 일을 하며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멀리 떠나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오랜만에 전시회를 가기로 한다.
장소는 예술의전당. 오며 가며 보았던 서예박물관을 드디어 방문하였다. 예술의전당 내부 공간을 도장 깨기 하는 즐거움도, 전시회 자체만큼이나 꽤 쏠쏠하다.
<그림책이 참 좋아展>의 전시관 내부에는 국내 그림책 작가들의 그림책 삽화를 작품화하여 전시되어 있다. 작품 하단에 간략한 그림책 소개문이 있었고, 이를 통해 각 그림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소재가 소재인 만큼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많았는데, 그 부분을 예견했듯 전시회장 중간중간 체험 프로그램들이 배치되어 있다.
안면이 있는 작품은 1작품 정도. 나머지는 초면이었다. 따라서 깨알처럼 적혀 있는 소개문을 가이드 삼아 그림들을 둘러보았다.

꽁꽁꽁 댕댕 ⓒ 윤정주, 책읽는곰
위 그림은 윤정주 작가의 작품 <꽁꽁꽁 댕댕>의 한 장면이다. 내용은 바쁜 엄마가 휴대폰을 냉장고에 두고 나갔는데, 딸이 아프다는 전화가 걸려오고, 그 전화를 받은 냉장고 친구들이, 집의 반려견을 타고(?) 엄마에게 그 소식을 전해 주러 가는 모험 이야기이다.
우선 그림이 너무 귀여웠다. 다음으로는 냉장고 속 식료품 친구들이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한다는 상상력이 무척 흥미로웠다.
일상 속에서 음식을 꺼내기 위해 자주 여닫는 냉장고이지만, 냉장고 속 음식 재료들도 마치 토이스토리처럼 살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킥킥 웃음이 나는 이러한 상상력이야말로, 아이들의 눈높이로 세상을 본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슈퍼 거북 ⓒ 유설화, 책읽는곰
책 <슈퍼 거북>은 이번 그림책 전에서 유일하게 알고 있던 작품이었다. 우연히 토끼와의 달리기 경주에서 우승을 하게 되며, 세상에서 가장 빠른 거북이로 살아가게 된 거북이의 경주 이후의 삶을 그리고 있다.
책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명료하다. '어떤 순간에도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잃지 말자'는 것. 결국 거북이는 거북이로서, 거북이처럼 살았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삶의 진리를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 동화의 플롯을 빌려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슈퍼 거북>이라는 작품을 통해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어른에게도 큰 공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아이들은 빠른 삶을 살아가려 발버둥 치는 거북이가 다소 우스꽝스럽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른인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을 수 없었다.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거북이가 무척 짠하고 안타까웠으며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 두 작품을 비롯하여 다양한, 귀엽고 흥미로우며 교훈을 주는 작품들이 <그림책이 참 좋아展>에 전시되고 있는 중이다.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자석을 이용해 냉장고를 꾸며 보기와 포토존에서 사진 찍기 및 영상 관람, 동화책 읽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고 자신이 그린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체험도 준비되어 있다. 해외에서 온 작품들의 삽화도 관람 가능하다.
이처럼 다채로운 구성의 전시는 어른이 보기에도 유치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 점이 장점이자 단점이었다고 생각한다. 포장지는 아이들을 위한 선물처럼 보이지만, 막상 열어 보니 어른을 위한 선물 같았다고나 할까? 한 마디로 아이들이 느끼기에는 다소 어려워 보였다.
우선 각 동화의 소개문이 너무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고 작품들의 사이즈가 작은 편이었다. 아이들의 이목을 잡아 끌 정도의 무엇이 없었다는 의미다. 어쨌든 전시의 가장 메인이 되는 부분은 작품인데, 아이들과 함께 감상하기에는 매력도가 다소 떨어지는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만일 아이들과 함께 전시 방문을 계획 중이라면, 사전에 이런 정보를 숙지하여 부모님께서 작품에 대한 많은 설명을 해 주시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혹은 도슨트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 전시 작품의 수준과 내용은 우수하다. 다만 구성이 조금 아쉽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전시를 감상하는 동안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작품에 잘 빠져들 수 있도록 주변의 서포트가 더해진다면, 온 가족이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그림책이 참 좋아展>. 내년 3월 2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