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는 즐겨보지 않는다. 그저 옆방에 사는 친구가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할 뿐이고, 저녁에 종종 영화를 함께 볼 뿐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친구는 가장 좋아하는 영화 "Holiday"를 들고 내 방에 찾아왔다. 한국 제목은 "로맨틱 홀리데이", 단순히 "홀리데이"라고 번역했을 때 느끼기 어려운 로맨틱함 때문인지 원제에 '로맨틱'이 추가되었다. 친구의 남자 친구가 구워주었다는 바나나 케이크와 호두 케이크를 먹으니 135분은 더 달달하게 느껴졌다.

뻔한 사랑 영화. 그러나 그 뻔함이 사랑스러운 영화. 애인의 외도 사실을 알고 크게 상처받은 아만다와 아이리스는 일상에서 벗어나 본인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크리스마스 휴가를 계획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집 교환 사이트에서 우연히 만나 2주간 집을 바꾸기로 하고.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아온 그들은 서로에게 새로운 세상을 제공해 주는데... 그들 앞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나타난 그레이엄과 마일스! 그런데 그레이엄 등장하는 순간 무언가가 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건 바로 얼마 전 보았던 2006년 영화, "클로저". 그레이엄을 맡은 주드 로 배우가 이 영화의 주연으로도 등장했던 것이다. 그 덕분일지 때문일지, 나는 홀리데이를 시청하는 내내 따라붙는 "클로저"의 잔상을 완벽히 떨쳐낼 수 없었다.

"Hello stranger"로 시작하는 두 남녀의 만남, 그리고 더 나아가 두 남자와 두 여자의 이야기로 발전하는 이 영화 "클로저"는. 언뜻 보면 "로맨틱 홀리데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설정이지만. 너무나 다른 방식으로 사랑의 본질을 묻는다. 으레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어지는 연인 관계 속에서. 밥 먹듯 외도를 일삼는, 서로를 믿을 수 없는 네 명의 관계. 사랑한다고 붙잡는 남자의 말에,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하는 여자. 사랑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다며 그저 사랑한다는 몇몇 허상의 말만 들릴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 맞아, 사실 사랑은 보이지도 않고.. 어쩌면 인간이 멸종하지 않기 위해 지어낸 거짓말일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 때면 "로맨틱 홀리데이"의 아만다의 눈물의 축축함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는 그레이엄은 아만다와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것을 쉬이 결정할 수 없다. 자신의 상황을 진솔하게 알릴 의무가 있기에. 그리고 아만다는 그런 그레이엄의 솔직함에 응하듯 그 자체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여러 현실적인 요인들을 극복하지 못하리라 예상하고 떠나려 했으나. 떠나는 택시 안에서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눈물을 되찾고는 그레이엄에게 뛰어 돌아가는 아만다를 보면. 사랑은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또다시 아랫배 어딘가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방해꾼이 있다. 과연 그들은 계속 해피엔딩일까. 어쩌면 그레이엄은 저 영화 너머에서 댄("클로저"의 바람둥이)이 되어 살아가고 있을지 어찌 아냔 말이다. 크리스마스 휴가, 새로운 나라 그리고 낯선 남자. 이 세 박자가 완벽히 맞아떨어졌기에 이루어진 그저 어떤 환상의 작용일지도 모르잖냐. "낯섦"은 새롭고 신비로운 감각이니 말이다.

스트리퍼로 일하는 앨리스에게 진짜 이름을 물어보지만, 그녀는 거듭하여 '제인'이라고 대답한다. 래리는 가명을 알려준다고생각하여 믿지 않았으나. 사실 앨리스의 진짜 이름은 '제인'이고, '앨리스'가 가명이다. 이 사실을 알아낸 것은 closer (애인 댄)가 아닌 stranger (래리).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이 장면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가장 멀고, 멀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가까이 있음을 깨달은 경험은 모두 있을 것이다.
왜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순간 멀어지고, 멀다고 생각했으나 가까워져 있는 걸까. 왜 우리는 closer에게 strangeness를 바라고, stranger에게 closeness를 바라는가. 진실을 원한다고 이야기하나, 진실을 알게 되면 떠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 영원히 합의되지 않을 욕망의 엇갈림을 바라본다. 상대의 신뢰를 저버리는 사람 그리고 그런 상대를 눈감아주는 사람을 보며 탄식하고 애착 관계 형성에서의 결핍 그 속에서의 안쓰러움만을 느껴왔던 나는. 다른 감정을 느낀다. 이제는 헷갈릴 지경에 다다른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사랑의 본질, 이 엉키고 설킨 집착과 욕망이 사랑의 알맹이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다.

복잡한 마음은 의외의 장면에서 풀어졌다. "로맨틱 홀리데이"의 아이리스가 옆집 어르신과 즐겁게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진정 내가 생각하는 '사랑'스러운 장면이었던 것이다. 물론 나이의 장벽을 넘고 진실한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을 수 없으며 순수하게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소중하지 않을 수 없으나. 나는 이들이 지키고 있는 적당한 거리감, "옆집"의 상징성에 집중한다.
무한의 포용을 사랑의 동의어라 여겨왔던 때가 있었다. 타인을 정말로 전부 알게 되더라도, 정확히는 타인을 전부 안 뒤에도 그럼에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사랑. 그러나 그렇다면 사랑은 어쩌면 매우 폭력적일지도 모른다. 절대적인 용서와 포용은 가히 폭력적이고 피해자는 다양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나'를 없애고 그저 받아들일 수 있음의 기준을 넓히는 자, 끝없는 관용을 생각 없이 배불리 향유한 자, 포용을 베푸는 스스로를 우월시하는 자. 또 어쩌면 그 포용의 과정에 개입된 모든 이에게도... 그러니 어쩌면 사랑은 closer와 stranger 그사이 적절한 어딘가. 마치 "로맨틱 홀리데이"의 아이리스와 옆집 어르신처럼 말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시청하기 시작한 "로맨틱 홀리데이"에서 마주친 그레이엄은 "클로저"의 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불청객 댄의 방문이 혼란스럽기도 했으나 비슷한 설정 그러나 완전히 다른 분위기와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마치 두 개의 영화를 동시에 본 것처럼 새로운 경험이었다.